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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Nov 01. 2016

14. 어린 왕자의 고향, 리옹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리옹)





  또 하루를 견뎌냈다는 안도감이 들었을까? 

아니면 슈베르트의 기도처럼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을까? 

기차역 부근에는 노숙자들이 함께 밤을 지새운 술병과 반려견의 눈빛이 휑휑했다. 

보라와 청보라 색이 획일적이지 않게 적절히 배치된 1등석의 의자는 쾌적하고 안락했다.



 



  책 보는 남자, 

컴퓨터 작업을 하는 아가씨, 

뜨개질을 하는 아주머니, 

빨간 색실만으로 십자수를 놓고 있는 여인, 

숫자 맞추기를 하는 할머니, 

따뜻하고 평온한 정경이다. 

크리스털 같은 햇살이 니스와 칸의 푸른 바다 위로 쏟아졌다. 

니스에 오던 날과 떠나는 날 모두 그때 여행 중 가장 밝은 날이었다. 

가을걷이를 마친 듯 누런 들판이 펼쳐졌다. 

야트막한 언덕이 간간히 지나갔다. 

노르망디에서 보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고 슴슴한 풍경이 지나갔다. 

힘든 여행 일정 중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일종의 휴식이다. 

마음이 여유롭고 너그러워지며 평화롭다.      

그 분위기를 즐기는 시간이 좋다.

기차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리옹으로 향하는 기차의 승객들은 음 소거 상태처럼 조용했다. 

그런데 그 고요를 깨트리는 일이 벌어졌다. 

난데없이 취객 한 사람이 우리 객차에 들어왔다.

혼잣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소리로 한바탕 소동을 부렸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승무원이 그를 데리고 나갔다.      


  리옹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지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곳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호텔 주소를 보이며 몇 사람에게 물었다.

그곳은 아주 멀기 때문에 트램을 타고 가야 한다고 했다. 

호텔을 예약할 때 당연히 구글 맵으로 거리를 확인했었다. 

역에서 500m, 그러나 아니었다. 

당황스러웠다. 

리옹 사람들은 친절했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번호의 트램을 타고 물으면 다른 트램을 타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타고 내리길 세 번이나 반복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리옹이란 도시가 우리를 거부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호텔은 페하슈 역 인근인데 우리는 리옹 역에서 내린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2시간을 헤매고나서야 겨우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옹 페하슈 역


  보상이라도 받듯 호텔은 썩 훌륭했다. 

바깥을 보려고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을 때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창문이 프레임처럼 감싸듯 고풍스러운 컬러의 성당이 완벽하게 보였다. 

마치 성당이 방 안으로 쑤욱 들어오는 느낌이다. 

참 예쁜 방이다. 



호텔 창문을 열고 찍은 성당 모습



게다가 간단한 주방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간단한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는 구조가 더더욱 맘에 들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크루아상과 바게트, 과일로 요기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시가지로 나가기 위해 1일 교통권을 구입했다. 

계단을 내려가니 우리가 타야 할 메트로가 서 있었다. 

나는 서둘러 잽싸게 올라탔다. 

문이 닫혔다. 

전동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그런데 친구는 전동차 저 밖에 서있다. 

‘어머 어떡해’ 나도 모르게 혼자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꼴이 되었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전동차내의 사람들의 눈길이 쏟아졌다.  

‘걱정 마, 만날 수 있을 거야’ 하듯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디서 내려야 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터라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전동차는 바로 오니까 곧 만나겠지 하면서 혹시 몰라 문자를 보냈다. 

약 10분 후 친구와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푸니쿨라를 타고 푸르비에르 언덕으로 올라갔다. 

비잔틴 양식의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이 위용을 자랑하듯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늘 리옹을 지켜주시는 성모 마리아 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1884년 리옹 사람들의 기부금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성당 안의 모자이크와 제단, 천장이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사실 성당 안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옳지 않다. 

설사 촬영이 허락된 곳이라 해도 그렇다. 

울림이 좋은 성당은 셔터 소리가 기도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당 안쪽에서 사진을 찍은 것을 대체로 자제하는 편이다. 

그러나 간혹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사진을 찍을 때가 있다. 

나오기 직전에 사진을 찍은 후 바로 밖으로 나온다. 

천장의 프레스코화와 창에 새겨진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곳은 매년 12월 8일이면 1,872개의 양초를 켜는 이벤트가 펼쳐진다고 한다. 

상상으로도 숨이 막힐 정경이다. 





언덕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리옹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론강과 숀강이 흐르는 도심의 풍경은 프랑스 제2의 도시임을 자랑하듯 규모가 컸다. 

도시에 서서히 불이 켜지고 있었다.       







  리옹에서 가장 큰 벨크루 광장에는 루이 14세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광장의 손 강 쪽에는 어린 왕자로 유명한 쌩떽쥐베리의 동상이 있다. 

그의 고향이 리옹이기 때문이다.

리옹의 공항 이름 역시 쌩떽쥐베리이다. 

동상에는 어린 왕자에서 따온 문구 하나가 쓰여있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게 보이지 않는 소중함은 무엇일까?

분명 곁에 있는데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초등학교 때 보았던 어린 왕자

낡았지만 아직도 갖고 있다.

 

빅토르 위고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창으로 가득하게 들어온 성당 불빛을 안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 어린 왕자를 만났다.

그가 내게 이야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르는 거야.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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