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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Nov 01. 2016

15. 오늘이라는 하루는 또 무슨 색깔로…

유레일 4,507Km의 끄적임 <인터라켄>




  오늘이라는 하루는 또 무슨 색깔로 펼쳐질까? 유레일패스를 가졌다 하더라도 고속열차를 탈 때에는 수수료를 주고 예매를 해야 한다. 리옹에 도착해서 헤맨 전적이 있으므로 우리는 역 사무실로 들어가서 물었다. 인터라켄으로 가려면 빠르되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야 한다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무엇을 어디서 타야 하는지, 시간을 촉박하지 않을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친절한 한 아가씨의 도움으로 제네바행 기차를 탑승하여 빠르되 역으로 가서 예정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밀가루 같은 눈발이 날리다 제네바를 지날 때는 해가 반짝했다. 그리고 다시 눈이 내리고 해가 뜨고 눈과 해는 숨바꼭질하듯 론도풍으로 연주를 했다. 초록의 들판과 산이 보였다. 먼 산에는 흰 눈이 보였다. 굳이 여기가 어디라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풍경이 차창으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베른 역에서 인터라켄 가는 기차를 환승할 수 있는 시간은 단 3분, 기차에서 내려서 바꿔 탈 기차의 플랫폼을 확인하고 그쪽으로 넘어가기까지 시간 여유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플랫폼을 확인하기 위해 전광판을 찾아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바로 옆 레인이 우리가 탈 플랫폼이었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옆 통로 계단으로 올라가니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베른에서 인터라켄까지는 무채색의 설원이 펼쳐졌다. 지칠 줄 모르고 바라보았다.






  점심을 먹으러 2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펜네 오일 파스타와 토마토 고르곤졸라 파스타를 먹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영화 같다. 흔들림이 거의 없는 고속 기차지만 사진을 찍기엔 불편했다. 그래도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다. 마치 설국열차를 탄 듯 주위는 온통 눈으로 가득했다.     


 


  인터라켄 웨스트 역에 내려 로에슬리 호텔에 체크인했다.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재 건축인 샬레 스타일의 아담한 호텔이다. 주인 부부의 젊은 시절 사진이 나무 벽면에 가득했다. 남편의 풍모가 산악인 같아 보였다. 샬레이니 엘리베이터는 당연히 없었다. 시종 미소가 떠나질 않는 상냥한 주인아줌마는 남편이 오면 우리의 러기지를 올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므로 우리가 낑낑대며 올렸다. 우리가 묵을 곳은 한쪽 천장이 약간 사선으로 기울어진 다락방 분위기의 3층이었다. 작으나마 주방이 있고 1층 다이닝에서 필요한 만큼 컵이나 접시, 수프 보울 등을 가져다 쓸 수 있어 편리했다. 주인이 준 무료 버스 티켓과 지도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인터라켄에는 웨스트와 오스트 두 개의 역이 있다. 오스트 역에서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천천히 걸어 시가지를 돌아보았다. 오스트 역에서 융프라우 기차 시간을 알아보고 커다란 슈퍼마켓 coop에서 먹거리와 커피, 초콜릿 등 선물 몇 가지를 쇼핑했다. 호텔로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탔다. 쿱에서 사 온 치킨구이에 미역국을 끓이고 양상추 샐러드와 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성당 종소리가 매 시각 정확히 울릴 뿐 사위가 너무도 고요했다.    


  
















coop에서 판매하는 주스 병에 손뜨개로 만든 빵모자가 씌워져 있다.





  다음 날, 눈이 내려있었다. 눈을 쏟아낸 하늘과 호수의 빛이 어우러진 공기가 온통 푸르스름하다. 어차피 공짜로 탈 수 있는 유레일패스가 있으니 기차를 타기로 했다. 인터라켄 웨스트 역에서 오스트까지 10분쯤 걸린 듯했다. 우리는 라우터브루넨- 클라이네 샤이 텍-융프라우-크라이네 샤이 텍-그 린덴 발트 코스의 티켓을 구입했다. 한 여름의 융프라우는 끝없는 초원과 양 떼, 종 모양의 방울을 달고 있는 소, 들꽃, 하이킹하는 사람들과 서있는 집들이 아름다웠었다. 그러나 1월의 융프라우는 온통 하얀 설원에 울긋불긋한 스키어들의 옷과 눈부신 햇살이 눈을 뜨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융프라우까지 가는 사람들보다 중간중간 내리는 스키어들이 열차를 빼곡하게 메웠다. 걸음마를 겨우 시작했을 밥한 아기 스키어부터 호호 할머니까지 다양한 컬러의 옷을 입은 스키어들이 시키와 폴대를 들고 스키 부츠를 신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꼬마열차를 타고 융프라우 정상에 도착했을 때, 바람 한 점 없고 따뜻했다. 전에 융프라우에 올랐을 때에는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가죽점퍼를 챙겨 입었어도 추웠던 곳이다. 우리는 오리털 파카에 목도리와 털실로 짠 빵모자, 장갑까지 중무장을 하고 올라갔다. 그런데 그날 그 시각, 해발 3400미터의 고산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고 온화했다. 무료로 받은 컵 라면 쿠폰으로 신 라면을 먹었다. 고산증세를 느꼈는지 친구 M이 메스껍고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낀다고 했다.      














기차 창틀에 써있는 글씨




융프라우에 철도를 처음 설치한 사람의 흉상(공사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우체통
 


  융프라우에서 내려오는데 산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먹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더니 그쪽엔 눈이 내리는지 시야가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만일 조금 늦게 올라갔더라면 뿌연 운무만 보고 내려왔음이 확실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산 곳곳에 있는 샬레




  융프라우에서 내려와 다시 기차를 타고 스피츠 호수로 갔다. 전 날 인터라켄으로 가던 중 기차 창으로 보았던 스피츠와 튠의 호수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호수를 감싸 안은 작은 마을은 한적하고 인적이 뜸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그대로 놔두었거나 낡은 벤치가 예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호수에서 오리 밥을 주는 노부부를 보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의 느린 걸음을 뒤따르게 될 때가 있다. 갈 길이 바쁘더라도 그들을 지나쳐서 먼저 갈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서였다.












  스피츠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튠에서 내렸다. 튠 역시 기차역 바로 앞이 호수이다. 코스튬을 한 아이들과 엄마 아빠를 만났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카니발에 가는 중이란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들의 행복 바이러스가 전해진 듯 우리도 유쾌해졌다. 예상치 못한, 예정하지 않았던 두 호수 마을 스피츠와 튠을 돌아본 건 일종의 보너스처럼 기분이 좋았다. 유레일 패스를 알차게 사용하고 있는 우리가 대견했다.         










  고산증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친구 M은 호텔로 돌아온 후 부쩍 힘들어했다. 아기 주먹만 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친구는 식사를 못하겠다고 하여 누룽지를 끓여주었다. 혼자 호텔 조식을 먹고 눈 내리는 마을을 산책했다. 발이 푹푹 빠졌다. 산책을 마친 후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떠났다. 역까지의 거리는 600m, 그러나 눈 쌓인 길로 러기지를 끌며 걷는 일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소처럼 매우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배실배실 웃으며 우리가 자처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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