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romenad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Nov 08. 2016

오슬로에 물들다

설레는 이름 스칸디나비아  (3. 오슬로)






SAS는 우리나라에는 아직 취항하지 않은 항공사입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세 나라가 공동 출자하여 운항하는 스칸디나비아 항공 SAS를 타고 노르웨이로 날아갔어요.

노르웨이(Norway)는 ‘북쪽의 길’이라는 뜻이고, 오슬로(Oslo)는 ‘하나님의 초원’이라는 의미라고 해요. 

스톡홀름을 출발한 지 55분 만에 오슬로 가르데모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대부분 그렇듯 공항 철도를 이용해서 중앙역에 도착했지요. 


노르웨이 크로네로 환전을 합니다. 

화폐 속에는 그 나라의 문화, 역사,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유로화로 통용하기 전에 유럽의 화폐에는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많이 볼 수 있었어요.

물론 유로화를 쓰지 않는 나라는 아직도 예술가들의 얼굴을 볼 수 있지요.

프랑스의 생떽쥐베리(작가), 베를리오즈(작곡가),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음악가), 

독일의 클라라 슈만(슈만의 부인으로 피아니스트며 작곡가),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화가), 

덴마크의 화폐에는 연극배우 하이베르, 

루마니아의 화폐는 브랑쿠시(조각가)와 에네스쿠(바이올리니스트), 

벨기에 르네 마그리트(화가), 

스위스는 조각가이자 화가인 자코메티, 

핀란드는 작곡가 시벨리우스,

그리고 노르웨이의 500 크로네에는 그리그(작곡가)의 초상이 들어있습니다.     



노르웨이 500 크로네 - 그리그



오슬로의 가장 핫한 중심로는 칼 요한 거리입니다.      

우리가 오슬로에서 묵을 호텔은 베스트 웨스트 칼 요한이니 당연히 그 거리에 있겠죠? 

칼 요한 거리는 중앙역에서 왕궁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보행자 전용 거리더군요. 

불과 500-600m 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걷는 동안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핑크 화분을 보고는 ‘저거 찍어야 해’ 하며 사진을 찍는 열정을 보였죠. 


그랜드 센트럴 호텔 앞의 핑크 화분


호텔 현관 머리에 1899년생이라는 글씨가 새겨있어요. 

100세가 넘은 집이네요. 

에어컨이 없는 건 이해하겠어요. 

그런데 손바닥 만한 선풍기마저 고장이 나서 돌아가지 않아요.

돌지 않는 선풍기 대신 우리가 돌 뻔했지요. 

그래도 침대 머리와 맞은편 벽에는 ‘여기는 뭉크의 고향 노르웨이입니다.’ 하듯

뭉크의 그림이 걸려 있어요.      

리셉션에 선풍기를 교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대답은 이랬어요.

우리 나라는 1년 동안 더운 날이 일주일도 안 된다.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사용할 일이 없다.

그러므로 냉방기를 살 수 있는 곳도 아주 드물다.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죠. 

하지만 하루도 아니고 3박을 할 건데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다 싶대요. 

청소하는 메이드에게 팁을 좀 쥐어주고 선수를 치는 꼼수를 써보기로 했어요.

체크 아웃하는 다른 방에 혹시 선풍기가 있으면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죠.     


오슬로 칼 요한 호텔



책을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카를 요한의 주요 위치에 중심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랜드 호텔은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들이 회합 연회 하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호텔은 매년 노벨 평화상 연회를 개최하고, 노벨상 수상자는 이 호텔 스위트룸에 머문다. 수상자들은 호텔 2층 발코니에 나와 카메라 플래시와 축하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시작한다.'

그런데요, 

우리 방의 발코니 창을 열고는 깜짝 놀랐지 뭐예요?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머문다는 그랜드 호텔의 발코니가 손에 닿을 듯 바로 옆인 거 에요. 

그런데 그게 뭐 대수라고 괜히 뿌듯했는지 지금 생각하니 우습네요.     



노벨 평화상 수상자 숙소 그랜드 호텔


시원한 레스토랑을 찾아서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토요일이라 그런지 오슬로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모두 몰려든 듯 그야말로 북적북적했어요.

칼 요한 거리의 노천카페와 레스토랑마다 사람들이 빼곡했습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시원한 레스토랑은 꿈이더군요. 

레스토랑의 실내는 바깥보다 더 찜통 수준이에요.

게다가 바깥이 너무 환하니까 실내는 상대적으로 컴컴하고 앉아 있는 사람도 없어요. 

파라솔 아래 겨우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지요. 

샐러드 바가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지만 그 샐러드라는 게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은 맞아요.

양상추와 방울토마토가 전부인 샐러드와 피자를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분수대엔 노란 고수머리의 꼬맹이들이 물보라와 숨바꼭질하듯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가 유쾌한 음악처럼 들렸어요.

액세서리와 기념품을 팔고 있는 노점상과 그것들을 구경하는 노부부,

마네킹이나 로봇처럼 꼼짝 않고 서서 행위 예술을 하던 젊은이들도 더위에 지치는지 잔디에 앉아 담배를 피웁니다. 

그 모습에서 측은지심이 들었어요. 

세상에는 살기 위해 별 별 일을 다 하지만 그들의 어깨가 왠지 더 쓸쓸해 보이더군요.    



호텔 앞 카페
칼 요한 거리
모녀의 외출
휴식중인 인간 마네킹과 레게 머리 노점상


볼 때 마다 이해가 안되는 공중 부양


식사를 하고 산책을 했어요.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지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오슬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최대의 번화가인 칼 요한 거리, 거기서도 가운데쯤 위치한 우리의 호텔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명소를 걸어서 갈 수 있었습니다.

왕궁, 국립극장, 시청, 노벨 평화 센터, 국립 미술관, 대성당, 오슬로 대학이 지척이더군요.

뭉크 박물관과, 아르케르후스 성, 비겔란 조각 공원만 트램이나 버스를 타고 가면 되었어요.

시간도 돈도 많이 절약할 수 있음이니 기분 좋은 일이죠.



칼 요한 거리 끝의 오슬로 왕궁
국립극장
노벨 평화 센터
오슬로 시청
국회의사당
오슬로 대학


태양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지글거리고, 우리는 바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녁이 오기까지 쉬기로 했지요. 

갑자기 소나기가 내립니다. 

열어둔 창을 통해 빗소리가 들려왔죠. 

벽에 걸린 뭉크 그림을 보다가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

심심함도 좋을 넉넉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마음이 더없이 푸근했습니다.


호텔 룸에서 찍은 한 여름 오후의 소나기(보이는 창문이 그랜드 호텔)



칼 요한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노르웨이 왕궁이 있습니다. 

스웨덴 왕인 동시에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칼 요한 왕이 1858년에 완성한 궁입니다. 

현재도 노르웨이 국왕의 공식 관저로 사용한다고 해요. 

궁 앞에 말을 타고 있는 청동 기마상이 칼 요한 거리를 내려다보고 서 있습니다. 

오슬로 왕궁의 정원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더군요. 

그게 맞는 거죠.

왕이 살고 있지만 왕의 것은 아니니까요.

탈린에 갔을 때에도 시민들에게 개방한 궁에 가족 또는 연인들이 함께 흑조가 노니는 호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았어요.

왕궁의 정원 잔디엔 반라의 아가씨가 누워서 일광욕을 하고, 벤치에 앉은 할머니는 책을 봅니다. 

반면 근위병은 미동도 없이 서 있습니다. 

버드나무 아래 연보라 빛 옥잠화가 수줍게 피었습니다. 

 


왕궁으로 산책 나온 가족
왕궁의 근위병
왕궁에서 태닝하는 아가씨
왕궁에서의 독서
왕궁 근처 숲


지척에 항구가 있어요. 

하얀 보트들이 그림처럼 정박되어 있고요. 

그 바다는 빙하가 녹은 물이라고 합니다.  

바다 앞에 두 개의 붉은 건물이 대칭으로 딱딱하게 서 있는데 어찌 보면 무슨 공장 같아 보였어요.

그런데 그게 바로 오슬로 시청사였어요. 

두 개의 갈색 치즈라는 별명이 있다던데 제 느낌에 치즈는 아닌 듯… 

바다 앞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시청이 스톡홀름과 닮은 꼴이죠. 

오슬로 시청에서는 매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됩니다.

시청 안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홀이 나타납니다.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거대한 유화가 한쪽 벽에 떡 하니 걸려 있어요.

2층 방에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뭉크(Munch)의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시청사 2층의 뭉크 그림
생명 <뭉크>
시청사 1층


오슬로에 머무는 내내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해변까지 산책을 하곤 했어요.

피오르드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인적 뜸한 바닷가 풍경을 즐기곤 했지요. 

어느 날인가는 시청 지붕 꼭대기에서 카리용의 연주가 들렸어요. 

카리용은 원래 중세 때 프랑스에서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종이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악기로 변하게 된 것인데 흔하지는 않아요.

고정된 틀에 23개 이상의 청동 종으로, 각각의 종은 반음계의 순서로 조율 제작됩니다. 

오르간과 비슷한 형태의 목재 레벨과 페달이 있는데 주먹이나 발로 누르면 종에 달린 추를 강철선이 잡아당겨 타종하는 구조예요.

성당의 종소리는 조율된 일정한 음 높이가 없으므로 그 느낌과는 사뭇 다르답니다.

카리용은 음 높이가 다른 여러 개의 종으로 연주하는 악기다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편종과 비슷하지만 연주 방식도 소리도 영 다릅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삭 성당 옆에서도 카리용을 본 기억이 나네요.   



시청사 앞 피오르
시청사 지붕 한쪽 꼭대기의 초록색 박스 안에 카리용 종이 달려있다
오슬로 시청의 카리용 연주


시청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슬로 노벨 평화 센터가 있더군요. 

그 두 곳을 모두 아침 산책 중에 우연히 발견했지요. 


노벨 평화 센터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한 건물 벽 유리 게시판 안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Peer Gynt라고 쓰여 있더군요. 

페르귄트는 입센의 희곡을 바탕으로 그리그가 만든 모음곡이에요. 

입센과 그리그 둘 다 노르웨이 사람이죠.  

건물 앞쪽으로 가서 보니 National Theater, 국립 극장이었어요. 

입센의 페르귄트를 위해 지어졌고 초연된 극장이 바로 그곳인 거 에요. 

국립극장이라는 이름 아래 입센, 홀베르그, 비에른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양쪽에 동상이 있는데 왼쪽은 입센, 오른쪽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노르웨이 국가를 작사한 비에른손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2년에 한 번 씩 8월 말에 국제적인 입센 축제를 개최하는데 그 홍보 포스터였지요.   


에드워드 그리그(작곡가)
헨리크 입센(극작가)
페르귄트 포스터
국립극장
입센 동상

  

버스를 탔어요. 시내와 동떨어진 곳에 내리니 약간 시골스런 맛이 풍겨요. 

비겔란 조각 공원에 가는 중입니다. 

원래는 개인 정원이었다고 해요. 

어느 돈 많은 귀족의 것이었겠죠?

20세기 초 비겔란이 제작한 분수대와 작품을 전시하면서부터 공원이 됐다고 해요. 

어마어마하게 넓은 정원에 비겔란의 자식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공원에 있는 작품 주제는 오직 인간이니까요.  

대표적인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 조각품인 모놀리텐(Monolittan),

멀리서 보면 기둥 같지만 121명의 실제 크기 남녀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이에요.

아~ 그런데 뭐랄까, 저는 비겔란의 조각들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아름답다거나 대단하다거나 그 어떤 느낌이 없었죠. 

특히 모놀리텐은 지옥의 단면처럼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던걸요. 

정상으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의 본성을 나타낸 작품이라고 하니 제 느낌이 틀린 건 아니었나 봅니다. 

비겔란 공원이 좋은 이유는 키가 큰 나무들이 도열한 숲길과 둥치가 큰 나무가 많다는 이유 하나였습니다.    



비겔란 공원 가는 길
비겔란 공원 입구에서
공원을 산책하는 가족
모놀리텐
비겔란 동상


시청 앞 해안가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하얀 물체가 보였어요.

물가에 떠밀려와 툭 하고 멈춰 선 거대한 빙하 조각 같아보였어요.

흰색의 화강암과 대리석이 삐죽하게 솟아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는 유리가 벨트를 두른 모양이었죠.

오페라 홀일 거라는 짐작을, 아니 확신을 했지요.  

입구가 어딘지 내부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일단 외부 구조가 너무 독특해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겠더군요.

발레와 연극, 오페라 포스터 배너가 늘어서있는 곳을 지나 비스듬한 평면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계단은 없어요.

한쪽은 피오르드 물이요, 다른 한쪽은 오페라 홀의 유리창입니다.

유리 안쪽으로 음향을 잡기 위한 나무 오크를 촘촘히 덧 대어 만든 내부가 비쳐 보였습니다.

비스듬한 돌길을 걸어 올라가니 건물 꼭대기, 즉 오페라 홀의 지붕에 다다랐습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돌 집 꼭대기에 올랐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오히려 편안함과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멀리 스톡홀름과 헬싱키를 오가는 바이킹이나 실자 라인 같은 크루즈가 보였습니다.

한 마디로 오슬로 오페라 홀은 집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여태껏 본 건축물 중 가장 독특했습니다.

오슬로는 남부 피오르 깊숙한 곳에 들어선 도시의 특징을 살려 디자인 설계를 했나보다 생각했어요. 

유모차를 끌고 올라온 젊은 부부가 있더군요. 

지붕에 누워 하늘을 보았습니다.

기분이 묘했어요.

엘리베이터도 아니고, 계단도 아닌 골목길 산책하듯 편하게 걸었을 뿐인데 거대한 산 같은 지붕에 도달하다니, 그 이상야릇한 기분을 뭐라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밀라노의 두오모에 올라간 사람만이 지붕에 감춰진 그 검은 성인들의 얼굴을 알 수 있듯, 그곳 역시 오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답니다.

우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한 번 더 올라갔습니다.

야경을 보았죠. 

조명이 켜진 밤의 오페라홀은 블랙 다이아몬드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해안가 성벽 아래 의자 조형물
오슬로 오페라 홀



칼 요한 거리 한쪽에 있는 오슬로 대성당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간 하도 큰 성당들을 많이 보아왔던 터라 그럴 테지요. 

독특한 천장화와 파이프 오르간, 소박하고 단아한 유리창과 따뜻해 보이는 전등이 맘에 들었습니다.

성당 주변에는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더군요.

예쁜 게 많아요. 

그게 항상 문제입니다.

맘에 들어도 살 수 없는 게 여행자의 고통이죠.

사고 싶은 대로 모두 사면 어마어마한 수화물 초과 비용을 물어야 하니까요.     

다양한 오슬로의 볼 거리에 물들던 시간이 착하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톡홀름, 색을 여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