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romenad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Dec 17. 2016

글루미 부다페스트

“당신을 잃느니 당신의 반쪽이라도 갖겠소.”




날씨가 맵다.

빈에 머무는 동안 부다페스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빈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떨어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그곳은 빈과 너무 달랐다.

십 수년 전, 빈에서 프라하로 넘어갈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작고 남루해 보이는 사람들,

낡고 지저분한 건물들,

어두침침한 켈레티 역에 내렸을 때 흑백 영화 분위기가 감돌았다

역사적인 이유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한 것이 1918년,

그러나 1949년부터 50년 간 공산 체제의 인민공화국으로 지냈다.

2차 대전 때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고 그들 또한 세월을 이겨내고 있는 중이다.

이 침침한 느낌은 아마도 그런 배경을 지내온 사람들의 뒷모습 같은 것이리라 생각했다.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왕궁이 있는 높은 지역 '부다'와 국회의사당 및 상업 지역인 '페스트'가 합해져 만들어진 도시 부다페스트.

'부더(Buda)'는 헝가리어로 높다, '페슈트(Pest)'는 낮다는 뜻이다.

1일 교통권을 구입했다.

어디부터 갈까?

높은 곳부터 가는 게 순서일 듯하다.

부다 왕궁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시가지가 온통 공사 중이다.

버스터미널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행색은 대부분 시골에서 갓 상경한 듯 차림새가 옹색하다.


버스 창을 통해 사진에서 익히 봐왔던 마차시 성당과 고깔콘 같은 뾰족한 탑을 가진 어부의 요새가 보였다.

파란 물감을 쏟아놓은 듯 청명한 하늘, 그러나 바람은 옷깃을 바늘처럼 파고든다.

화려한 컬러가 돋보이는 모자이크 지붕이 마차시 성당이다.

이곳에서 헝가리 왕으로 즉위한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그때 리스트는 ‘헝가리 대관 미사곡’을 작곡하여 직접 지휘했다.

로마엔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이 있고 바르샤바엔 쇼팽 공항이 있듯, 부다페스트 공항 이름은 프란츠 리스트이다.

교향시를 창시한 피아노의 달인이자  <헝가리 랩소디>를 작곡한 리스트뿐 아니라 ‘벨라 바르톡’과 헝가리 음악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졸탄 코다이’ 등이 헝가리의 음악가들이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세밀하게 채색된 기둥과 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차시 교회로 가는 넓은 골목은 기념품 가게를 비롯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야외 카페가 눈길을 끈다.

점심으로 헝가리 전통음식인 굴라쉬와 그릴드 치킨을 먹었다.

깍둑썰기 두툼한 쇠고기와 감자들이 들어간 얼큰한 수프로 육개장 맛과 비슷한데 좀 더 고소하다.

빵과 잘 어울리는 맛이다.

프라하에서 먹었던 가정식 굴라쉬보다 좀 더 짭짜름한 맛이라 담백한 치킨과도 잘 어울렸다.

근처에 오래된 약 박물관이 있어 잠깐 들어가 보았다.

오래된 약병들이 고풍스럽데 진열되어 있는데 탈린의 600년 된 약국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마차시와 붙어 있는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는 건축물,.

헝가리풍의 고깔 지붕을 얹은 7개의 탑과 독특한 회랑이 이채롭다.

어부의 요새라는 특이한 이름은 옛날에 이 언덕에 있던 어부 조합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요새 한쪽에 거리 악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그 애잔한 멜로디가 익숙하다.



‘글루미 선데이’

gloomy 의 뜻을 알고 있어서일까?

단어의 어감에서 어둡고 음울한 느낌이 든다.

                                                            

헝가리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1933년 쓴 “Szomoru Vasarnap”에는 많은 스토리가 있다.

그는 실연당한 사람에 대한 구슬픈 가사에 끈끈한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듯한 멜로디를 붙였다.

이 곡은 곧 “Gloomy Sunday”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1936년, 할 켐프 앤 히스 오케스트라가 녹음을 했다.
1941년에 빌리 홀리데이가 영어로 번안하여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때때로 요염하지만 애처로운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는 가사에 담긴 좌절감을 호소력 있게 표현한다.

세상과 작별하려는 스스로의 선택이 오히려 묘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혼으로 노래하는 불세출의 흑인 재즈 가수가 불렀으니만큼 히트곡이 된 것은 어쩜 당연한 수순인지 모르겠다.




레조 세레스(Rezso Seress)는 그 곡을 작곡하기 전까지는 무명이었다.

그는 헬렌이라는 여인을 사랑했다.

그의 사랑은 집착으로 이어지고 사랑하는 여인은 그를 떠났다.

실연의 슬픔에 젖어 완성한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이 곡이 발표되자마자 그는 스타가 되었지만 자신의 노래가 가진 불길한 평판과 사라들이 죽어감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1968년 자살했다.

이 곡이 첫 방송되던 날, 다섯 명의 청년이 자살한 것을 비롯하여 방송된 지 8주 만에 187명의 자살자가 생겨났다.

그뿐 아이라 레이 벤츄라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에서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던 단원 중 드럼 연주자의 권총 자살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단원들이 자살했다.

'글루미 선데이'의 살벌한 기록은 넘쳐난다.

노래를 소재로 한 영화와 소설이 나왔다.

논문도 있다.

헝가리에서 이 곡을 듣고 죽은 사람만 187명,  



베를린에서 젊은 여성이 목을 매 숨졌는데, 그녀의 발 밑에 ‘글루미 선데이’의 음반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뉴욕에서는 가스를 마시고 자살한 여성의 유서에 장례식 때 ‘글루미 선데이’를 들려달라고 적혀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자동차를 몰고 강으로 뛰어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부랑자 앞에서 차를 멈춘 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주고는 곧장 부근에 있는 강에 몸을 던졌다.

경찰은 부랑자가 ‘글루미 선데이’를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세계 각지에서 ‘글루미 선데이’를 들은 사람들이 자살하면서 이 노래에는 자살의 송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경찰은 자살한 구둣방 주인 조셉 켈러의 사인을 조사하던 중 유서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유서에는 ‘글루미 선데이’의 노래 가사가 적혀 있었다.

경찰은 당시 꼬리를 물 듯 자살한 17명이 모두 이 노래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잔뜩 긴장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부다페스트 일대에서 일어난 이 기묘한 연쇄자살의 진상은 이랬다.

바에서 홀로 술을 마시던 노신사가 일어나 밴드에게 다가가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해 달라고 요청한 뒤 홀연히 바깥으로 나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쐈다.

음악이 연주되자 돌연 남자 2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역시 권총으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한 소녀는 ‘글루미 선데이’ 음반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도나우 강에 투신했다.

그러므로 당시 영국의 BBC를 비롯한 여러 방송국에서는 이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였고, 뉴욕타임스에서는 ‘수백 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며 특집 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결국 ‘글루미 선데이’는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고 원곡은 폐기 처분되었다.

원곡을 연구한 전문가들이 분석해본 결과, 이 노래의 음파가 여인의 울음소리와 같으며 이 곡을 들었을 때 뇌파가 강한 우울증을 유발하여 자살충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곡이 발표되었던 당시 헝가리의 시대적 상황이 매우 암울했던 시기였으므로 그런 배경과 맞물려서 자살한 사람이 그리도 많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30년대의 어두운 시기가 부다페스트를 음울하고, 우울한 도시로 각색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살은 예술가들의 삶과 남겨진 작품들에 비장미를 더해주는 좋은 요소이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작중 주인공인 베르테르의 자살이 당시 독일 청년들의 모방 자살을 유도하며 사회적 문제가 됨에 따라 이젠 ‘모방 자살’이란 의미 자체가 ‘베르테르 효과’라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의 자살이 그랬고, 락밴드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도 그랬다. <인간 실격>의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도 그랬고, 화가 고흐의 자살도 그랬다.

이처럼 유명인이나 아티스트 그리고 작가들의 자살은 살아생전 그들이 말하고자 한 정념에 시위성을 더해 대중에게 전해진다.

그것이 반드시 자살 당사자들의 실존적 고민에 연유한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자살도 싶음이라 생각하면 그들의 뜻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다.



“당신을 잃느니 당신의 반쪽이라도 갖겠소.”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가운데 두고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대사다.

1999년에 발표된 롤프 슈벨 감독의 ‘글루미 선데이’는 사랑은 소유해야 한다는 통념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공유 사랑’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 그리고 여주인공 일로나의 통쾌한 복수를 그리고 있다.
 


1999년 어느 가을...

성공한 독일 사업가가 헝가리의 한 레스토랑을 찾는다.

작지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그는 추억이 깃든 시선으로 그곳을 살펴본다.

그리고 말한다.

"그 노래를 연주해주게."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 순간, 그는 피아노 위에 놓인 여자의 사진을 발견하곤 돌연 가슴을 쥐어뜯으며 쓰러진다. 놀라는 사람들, 그때 누군가가 외친다.

"이 노래의 저주를 받은 거야, 글루미 선데이의 저주를...

" 60년 전...

오랜 꿈이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자보와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일로나.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온다.

강렬한 눈동자의 안드라스.

그의 연주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자보와 일로나는 안드라스를 고용한다.

일로나의 생일, 안드라스는 자신이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한다.

일로나는 안드라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그날 저녁 손님 한스가 일로나에게 청혼한다.

구혼을 거절하는 일로나.

글루미 선데이의 멜로디를 되뇌며 강물에 몸을 던진 한스를 자보가 구한다.

다음날, 안드라스와 밤을 보내고 온 일로나에게 자보가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자보와 안드라스, 일로나는 특별한 사랑을 시작한다.

한편 우연히 레스토랑을 방문한 빈의 음반 관계자가 글루미 선데이의 음반 제작을 제의한다.

음반은 빅히트를 하게 되고, 레스토랑 역시 나날이 번창한다.

그러나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언론은 안드라스를 취재하려 한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안드라스. 그런 그를 위로하는 일로나와 자보...

하지만 그들도 어느새 불길한 느낌에 빠진다.



도심을 흐르는 도나우강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다리라는 '세체니 다리'는 부다 지구와 세체니 지구를 연결하고 있다.

독일 남서부에서 발원해 10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드는 도나우 강의 길이는 2850㎞.

영어로 다뉴브, 독일어로 도나우, 헝가리어로 두나, 체코어로 두나이로 불리는 유럽의 젖줄은 ‘도나우의 장미’로 불리는 부다페스트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사슬이란 뜻의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다리이다.

명문가 집안의 이스트반 세체니가, 부다 지구에 갔다가 갑자기 집안 어른이 돌아가셔서 급히 페스트 지구로 가야 했다.

그런데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못해 페스트로 돌아갈 수 없었고 다리를 놓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다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다리에는 혀가 없는 사자상이 있다.

조각을 한 사람은 자신의 완벽한 조각 작품에 흠이 있다면 자살을 하겠다고 장담했다.

사자에 혀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자 그는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믿거나 말거나...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옆엔 헝가리의 가장 위대한 시인 조제프 아틸라(1905년 - 1937년)

33세로 요절한 시인의 동상을 도나우 강변에 만들어 놓은 걸 보니 그는 윤동주 격인 사람인가 보다 라고 짐작했다.



성 이슈트반 성당은 한 번에 8,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이다.

50종류 이상의 대리석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내부에는 당대의 저명한 헝가리의 예술가인 모르 탄, 베르탈란 세케이, 쥴러 벤추르 등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이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돔의 스테인트 글라스인데 컬러가 여느 성당의 것과 다르다.

강렬함보다는 온화함이 느껴진달까?



부다페스트 오페라 하우스로 갔다.

음악을 저장하여 듣는 오늘날과 달리 옛날에는 오직 라이브뿐이었다.

극장을 찾아가 오페라를 듣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유럽의 도시에는 오래된 오페라 하우스가 꼭 있다.

그곳 역시 리스트 동상이 있다.


리스트 박물관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우크라이나 1973년생


리스트 헝가리 광시곡 , 랑랑 (郎朗 | Lang Lang) 중국 1982년생


역으로 가기 위해 오페라 앞에서 지하철을 탔다.

오페라 역답게 단아하고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역이다.

게다가 전동차 색깔이 노란색이다.

부다페스트를 떠나는 순간 밝음을 처음 느끼던 순간이 바로 그 노란 전동차였다.

그렇게 글루미 부다페스트의 막이 내려졌다.


오페라 역으로 들어오는 노랑색 전동차
부다페스트 켈레티 역

                  



 



 





매거진의 이전글 Museum hour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