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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17. 2016

그림보다 아름다운 할슈타트

동화 속 호수 마을


                     

흔히 말한다.

그림같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연이나 풍경, 사람은 그림으로 똑 같이 표현할 수 없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게 아니다.

그림보다 아름다운 거다.

 


빈에서 출발하여 아트낭에서 기차를 갈아탔다.

역이랄 것도 없는 간이역에 내려 호숫가로 내려가니 작은 배가 저 멀리 호수를 가로질러 통통거리며 오고 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작은 배의 유리창에 뿌연 수증기가 어려서 할슈타트의 아름다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옛날에는 소금이 매우 비쌌다.

그러므로 할슈타트는 과거에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이 있기 때문이다.

할슈타트라는 이름도 소금에서 연유한다.

'할'은 소금이라는 켈트어이고 '슈타트'는 마을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할슈타트와 가까운 거리의 잘츠부르크 역시 소금이 나는 지역이라 예로부터 부자 도시였다.


할슈타트는 면적이 매우 작은 이유로 매장 공간이 부족했다.

그러므로 10년마다 유골을 발굴해 납골당으로 이장했던 역사가 있다. 

이에 따라 해골들을 정교하게 장식하고 이름, 직업, 사망연도를 배열해 안치해 놓았다.


할슈타트는 연간 60만 명이 찾는 인기 관광지이다.

그런 탓에 비수기인 겨울에도 호텔 숙박비가 만만치 않게 비싸다.

하지만 호수가 보이는 전경에서 물안개를 즐기지 않으려면 그곳에서 굳이 숙박할 이유가 없다.

그뤼너 바움 호텔은 비싼 가치가 있었다.

널따란 전용 발코니로 나가면 호수를 내 것처럼 품을 수 있다.

바깥과 안의 온도 차이가 크다 보니 발코니로 나가는 두 개의 유리 중문에 수증기 물방울이 그림처럼 어려있는 모습이 여간 예쁜 게 아니다. 

폭신하게 쌓인 눈에 푹푹 빠지며 밖으로 나갔다.

그새 눈이 그치고 흰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청아한 얼굴을 내밀었다.

공기가 어찌나 차고 청량한지 몸 속 가득 채우고 싶었다.



언덕을 깎아 만든 지역이라 그런지 나무들이 건물 벽에 팔을 벌린 듯 납작하게 자란 모습이 이채롭다.

작은 아틀리에 나무 간판 위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크리스마스 때 걸어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노란 별, 붉은 등이 거리를 환하게 만들었다.

호수 따라 길을 걷다 보면 호텔과 레스토랑이 죽 이어진다.



창턱의 빨간 초가 앙증맞아 이끌리듯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빨간 테이블보 위에 하얀 레이스가 둘러진 전등갓, 그위엔 빨간 장미 하나.

빨간색 수가 놓인 쿠션, 무척 화려하지만 통일감 있는 컬러의 하모니가 나쁘지 않았다.

빨간 초와 아이비를 곁들인 노란 소국이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장이 섬세하게 신경을 써서 꾸미는 집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낮은 선반엔 전통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선반 아래엔 조그만 액자들이 걸려있는 동유럽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곳이다.



믹스드 그릴 플레이트와 새우 파스타를 주문했는데 간간하면서도 맛이 있었다.

가격은 만만치 않았지만 말이다.




문을 연 마켓은 단 한 곳, 생수와 과일을 살까 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과일은 없었다.

산의 겨드랑이에 따사로운 햇빛이 비치고 있다.

눈이 펑펑 내린 후 해가 반짝 떴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겨울 할슈타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할슈타트는 무엇을 보러 오는 곳이 아니다.

그저 작은 성당 하나가 있을 뿐 호텔과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전부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둥그렇게 원을 그리는 호수를 둘러싼 집들의 풍경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곳,

눈과 귀와 입을 열지 않아도 좋은 그런 곳이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왔다.

달이 떴다.

호수에 비친 불빛이 은색, 금색으로 빛난다.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할슈타트의 밤거리를 하릴없이 느리게 걷고 있었다.

겨울 할슈타트의 밤을 나 혼자 오롯 차지하고 말이다.



다음 날 새벽,

기대했던 물안개는 피어오르지 않았다.

다만 호수 건너편에 달리고 있는 빨간 기차 불빛이 보였다.

몇 시간 후의 나는 저 기차 안에서 이쪽을 바라볼 터였다.


할슈타트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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