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축제 극장
은발의 노부부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도록 스마트폰을 보는 척하면서 찍은 사진,
바닥이 쓸데없이 많이 찍힌 이유가 바로 그 증거예요.
폰을 내 시선만큼 높게 들면 사진을 찍고 있다는 걸 들켜버릴 테니 그렇게 찍을 수밖에 없었지요.
음악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프로그램을 보는 신사는 버건디 컬러의 보 타이를 매었고,
올 블랙으로 단정하게 입은 부인은 실버 브로치로 포인트를 주었네요.
유럽에서 음악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 노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은퇴한 부부들이 지팡이를 짚고 서로를 의지하며 느린 걸음으로 음악회장을 찾습니다.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차림이 아닙니다.
유행과는 전혀 무관하게 카라 깃이 넓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에서 기품이 있어요.
연륜이 묻어나는 고상한 노인들의 조용한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그런 여유를 갖고 사는 그들이 부러워요.
많은 게 느껴지는 사진 한 장,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잘츠부르크에 갔을 때, 모차르트 주간이었습니다.
여기저기 공연장엔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고 욕심낼 만큼 좋은 연주도 많았지요.
그중 선택한 것은 존 엘리엇 가디너의 모차르트 레퀴엠과 대관식 미사였습니다.
지그문트 광장에서 호프 슈탈 가세를 따라 걷다 보면 축제극장(Festspielhaus)이 보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꽤 소박한 모습인데요.
극장 정면에 라틴어가 쓰여있습니다.
‘SACRA CAMENAE DOMUS / CONCITIS CARMINE PATET / QUO NOS ATTONITOS / NUMEN AD AURAS FERAT’
‘뮤즈 신의 신성한 집은 음악에 의해 감동받은 자를 위해 문을 연다. 신성한 힘은 영감을 얻은 우리를 지탱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영 다른 얼굴이네요.
극장의 뒤쪽은 바위산이에요.
바위를 뚫어 굴을 만든 후 극장을 지었는데 최고의 설비를 갖추고 있어요.
축제극장 대극장 건축의 특징은 잘츠부르크에서 난 재료들을 이용한 점이랍니다.
암벽이 있는 지형 때문에 무대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게 특징이더군요.
이곳의 특징은 오페라와 콘서트 모두 최적의 공연장이라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오페라는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는 콘서트 홀에서 공연되는데 그 두 가지를 공연함에 있어 공연을 하는 사람이나 감상자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지요.
1960년 개관 당시 모차르트와 같이 잘츠부르크 출신인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이 지휘했습니다.
코트를 맡기고 티켓을 찾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지만 움직임이나 말소리가 차분해요.
시끌벅적함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겠지요.
배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로비엔 카라얀의 두상이 있어요.
독일 빵 브뢰첸의 겉면과 속의 색을 닮은 나무들이 벽면 가득 붙어있습니다.
음향 효과를 위해 나무를 조금씩 휘어지게 만들었더군요.
무대 전면 벽에는 금색의 금속판이 붙어있는데 뭔지 잘 모르겠어요.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 1943 - )는 고음악의 부흥을 핵심 과제로 삼은 지휘자입니다.
몬테베르디 합창단(Monteverdi Choir),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English Baroque Soloists), 혁명과 낭만 오케스트라(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 등의 연주단체를 창단했지요.
예술 감독으로 일하면서 바로크 음악의 원전연주로 명성을 떨친 사람입니다.
가디너는 이들과 활동하는 것 외에도 정기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비엔나 필하모닉, 런던 교향악단 등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객연하고 있어요.
그가 이끄는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잉글리시 바로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가히 놀라웠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보컬의 사운드는 이제껏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깔끔함 그 자체였어요.
오리농법으로 키운 쌀밥 같은?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는 모두 원전악기를 사용하더군요.
처음 보는 악기도 있었어요.
오케스트라도 하나의 우주입니다.
좋은 수석을 갖고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가요?
호른 수석과 클라리넷 솔로, 악장과 팀파니스트, 게다가 마에스트로까지...
모차르트 대관식 미사와 그의 유작 레퀴엠이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앙코르 역시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
눈물이 나더군요.
사람들은 기립했고 저 역시도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제대로 된 최고의 음악을 듣고 나니 온 몸의 세포가 열린 느낌이 들어요.
'아름다운 밤이에요'라는 여배우의 말이 딱 어울리는 날이었지요.
좋은 공연장과 훌륭한 마에스트로, 그리고 그가 키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최고의 모차르트를 선사했습니다.
잘츠부르크는 알프스에서 흘러내려온 잘자흐강이 신 시가와 구 시가 사이를 유유히 흐르고 있어요.
오랜 옛날부터 할라인 소금 광산에서 캐낸 소금 때문에 잘츠부르크로 불렸습니다.
잘츠(Salz)가 독일어로 소금이란 뜻이고 부르크(Burg)는 성이라는 뜻이거든요.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고향으로 유명하죠.
모차르트로 인해 먹고사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무엇보다도 이 아름다운 도시를 음악의 도시로 만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매년 7~8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공연예술 축제 중의 하나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때문입니다.
그 기간에는 인근 도시까지 숙박업소가 동이 날 정도니까요.
잘츠부르크는 시가지 곳곳마다 모차르트 음악회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많습니다.
대성당이며 성 피터 교회 등 언제나 온통 모차르트 음악이 넘쳐나는 도시예요.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얘깁니다.
구 시가지의 게트라이데 거리에 노란색 6층 건물이 모차르트 생가가 있지만 별 달리 볼거리는 크게 없어 이번에는 들어가지 않았어요.
대신 게트라이데 거리를 천천히 걸었지요.
그 거리가 맘에 들어요.
문맹인 사람이 많았던 옛날, 물건 모양의 간판을 만들어 걸었던 전통을 이어받아 아직도 쇠붙이로 만들어진 아기자기한 간판들이 눈길을 끌고 있지요.
그리운 게트라이데 거리에 다시 와보니 조그만 흥분이 감돌더군요.
잘츠부르크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를 빼놓을 수 없지요.
1965년 작이니 그때 6살이던 막내 그리틀이 57세가 되었겠네요.
얼마 전 첫째 딸 리즐 역을 맡았던 배우 차미안 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기분 좋아지는 노래들, 잘츠 캄머굿의 아름다운 풍경들, 미라벨 정원...
노래를 들어봐야겠어요.
호엔 잘츠부르크 성으로 올라갈 때 푸니쿨라를 타면 쉽게 오를 수 있어요.
그런데 동절기라 운행을 하지 않더군요.
눈이 얼어붙은 길이 미끄럽기도 하고 전에 가보기도 한 터라 올라가지 않았어요.
레지덴츠 광장에 전에 없던 조형물이 생겼더군요.
원형의 금색 공 모양 위에 한 남자가 서 있는 모양인데 작가 이름이나 작품명은 보이지 않았어요.
성 페터 성당 한쪽에 묘지들이 있어요.
눈 덮인 철재 묘비들이 독특하고 아름다웠어요.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넓은 광장인 레지덴츠 광장은 구시가의 중심에 있는데요.
중앙의 분수를 둘러싸고 동쪽은 레지덴츠 신관(주청사), 서쪽은 레지덴츠(Residenz) 궁전, 남쪽은 대성당(Dom)이 모여있지요.
모차르트가 프라하에 머물 때 프라하 시민들이 선물했던 청동 주물 <얼굴 없는 유령>이 여기도 있어요.
물론 이건 가짜지만요.
모차르트 초상화가 그려진 동그란 초콜릿 미라벨을 샀어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커피 150년 전통의 율리어스 마이늘도 샀고요.
잘자흐 강물에 뿌려진 불빛이 노란 꽃을 뿌려놓은 듯 아름다웠어요.
매년 여름, 호수의 물 위에 설치된 무대에서 오페라가 열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예요.
언젠가 그곳에 가겠지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시즌에도 참여하겠지 싶어요.
원 없이 모차르트의 음악에 빠져 한 달쯤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