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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14. 2016

Museum hours

KUNST HISTORISCHES  WIEN





자주 쓰는 말의 어원이 궁금할 때가 있어요.

뮤지엄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무사이(Mousai)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대에는 뮤즈를 무사(Musa)라 불렀는데, 이는 ‘생각에 잠기다, 상상하다, 명상하다’라는 뜻인데요.

보통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자매 여신들로 나타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무사이(Musai)라 불린 것이죠.

뮤지엄은 현대적 의미에서 예술작품(회화, 판화, 조각, 공예) 등의 문화유산을 수집, 전시, 보존하며 또한 연구를 위한 전시공간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예술품과 17세기 중엽 레오폴드 빌헬름이 수집한 보물들을 모아 1891년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뜻에 따라 빈 미술사 박물관이 공식 개관되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
 KUNST HISTORISCHES  WIEN
Naturhistorisches Museum Wien


이 미술관은 고트프리드 젬퍼가 설계했어요.

독일 드레스덴의 젬퍼 오페라를 만든 바로 그 사람이죠.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중간에 놓고 자연사 박물관과 마주 보고 있어요.

마치 쌍둥이 건물 같아요.


유럽의 건축물이 대개 그렇지만 이곳은 겉과 속이 달라도 너무 달라요.

물론 건물 외벽에 황금칠을 하거나 번쩍번쩍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무겁고 어두운 돌로 만들어진 건물은 체격이 아주 육중한 남자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속옷을 입은 여인처럼 분위기가 싹 바뀌니까요.


중앙 돔


중앙 돔 아래로 세 개의 아치가 2층 회랑 중심에 있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지는 계단의 중앙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하얀 대리석 조각이 있는데요.

안토니오 카노바의 <켄타로우스를 이긴 데 세우스>입니다.

아테네의 영웅이라 불리는 데 세우스가 친구의 결혼식을 망친 반인반마(반은 사람이고 반은 말의 모습) 켄타우르스를 죽이는 장면이에요.


<켄타로우스를 이긴 데 세우스>


흰색 마블링이 들어있는 검은 대리석 기둥 위로 저절로 눈이 가는 건 그것이 클림트의 벽화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붉은색 튜닉을 입은 여신과 나신의 여신이 중앙을 향해 한쪽 팔을 뻗고 있어요.

2층에 있는 세 개의 아치 위에 각각 그려져 있는 클림트의 그림은 각각 다른 의미로 보였습니다.

벽과 천장, 바닥, 도무지 어느 한 곳도 소홀하지 않은 화려함으로 인해 시선이 자꾸만 흩어지게 되더군요.


클림트의 벽화



2층 중앙에 자리 잡은 카페는 7성급 호텔도 명함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건물의 돔과 정확히 같은 위치에 빨간 벨벳 의자가 동그랗게 배치되어 있어요.

그 아름다운 공간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커피를 마셨습니다.

검은색 보 타이와 검정 베스트를 입은 웨이터들의 손놀림마저 격식 있는 집사 같아요.

한 시간쯤 앉았다가 그림을 보러 갑니다.



이곳은 3층 구조인데 회화는 2층에 있어요.

전시실 각각의 방은 미술품에 적합한 컬러, 그리고 작품의 배치도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크고 푹신한 카우치가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어서 얼마든지 맘껏 앉아있을 수 있어서 편안한 느낌을 안겨주어요.

연보라나 청회색, 짙은 청색 의자들이 어느 귀족의 응접실 느낌이 들어요.

게다가 루브르나 프라도 미술관처럼 사람들이 많지 않고 한가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중앙 홀을 중심으로 양쪽이 ㅁ자의 구조로 되어 있어요. 

한쪽은 루벤스, 렘브란트, 크라나흐 등의 작품을 전시한 네덜란드‧플랑드르‧독일 회화관이고, 

나머지 한쪽은 라파엘로, 브론치노, 카라바조 등의 작품을 전시한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회화관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정말 맞습니다.

다른 여러 미술관에서도 수 없이 보아왔던 살로메와 유디트의 그림들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카라바조가 그린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은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골리앗을 들고 있는 다윗은 젊은 시절의 카라바조 모습이고, 

골리앗은 나이가 든 후 화가의 자화상이라니 그 발상이 재미있지요?


카라바조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



맨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이던 아르침 볼도,

루브르에 그의 그림 사계절이 있어요.

어떻게 1500년대에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실로 창의성이 놀라운 그림이었습니다.

21세기 화가가 그린 작품이라고 해도 놀라울 텐데요.

채소와 과일, 나무뿌리나 나뭇가지, 생선 뼈나 파충류들을 배치하여 사람으로 표현했는데 흉측하다 싶기도 하지만 놀랍기만 합니다.

그림의 오른쪽 어깨에 1563이라는 숫자가 보이네요.

아르침 볼도는 밀라노에서 태어났어요.

화가인 아버지를 따라 그림 공부했는데 밀라노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화공으로도 일했다고 합니다.


아르침 볼도 


어린 공주가 넓은 드레스 자락 위로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그림들이 죽 걸려 있는 곳은 벨라스케스의 방입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스페인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의 그 공주예요.

공주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녀의 신랑감은 정해져 있었지요.

그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1세입니다.

스페인 왕실의 초상화 전속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장래 공주의 남편에게 보내질 어린 공주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공주가 커 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들은 그때그때 오스트리아로 보내졌고 어린 공주의 초상화가 빈에 많이 남아있는 것이지요.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는 5세 때, <푸른 옷의 마르가리타>은 8세 때라고 합니다 

당시 스페인 왕가에서는 권력관계를 위해 근친혼이 아주 보편적이었다고 해요.

실제 그녀의 부모님이나 언니 등의 가족관계를 살펴보면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입니다.
15세에 시집 간 마르가리타는 임신과 유산을 거듭하다가 유전병으로 2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요. 

벨라스케스 <시녀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프랑스의 작곡가 라벨이 만든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라는 음악이 있습니다.

라벨은 '옛 스페인의 궁전에서 작은 왕녀가 춤을 추었을 것 같은 파반느에 대한 기억'이라고 했어요.

그러므로 그가 마르가리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곡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라벨,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
대 루카스 크라나흐 <아담과 이브>

        

그의 그림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이에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 헤이츠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의 그림들이 그립습니다.

그의 작품은 총 40여 점쯤 될까요?

루브르에서 한 점 보았고 이곳에 한 작품이 있어요. 

그림의 제목은 <화가의 아틀리에>입니다.

기모노 같은 청색 옷을 걸친 여인은 같은 색의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있어요. 

게다가 그녀는 이질적인 두 가지 물건을 들고 있어요.

연노랑 양장본의 책 한 권, 다른 한 손엔 트롬본을 닮은 나팔이에요.

화가가 신고 있는 붉은 스타킹이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 효과를 줍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화가의 아틀리에>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의 방에 왔습니다.

그 역시 네덜란드의 화가로 작품 수는 많지 않은데요. 

이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가장 많습니다.

브뤼겔이라는 이름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본 따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인 미술관에 가면 저뿐 아니라 공통으로 느끼는 게 있어요.

그림의 내용이 성화, 아니면 그리스 신화, 그리고 왕족이나 정물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의 그림 이전에는 일상을 주제로 한 그림, 더구나 귀족이 아닌 서민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후원자들의 주문에 의해서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에 주문자가 원하는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처럼 당시 선호되던 장르의 그림을 주로 그렸던 이유지요. 

브뤼겔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눈을 돌렸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 같은 의미겠지요? 

그는 단순히 새로운 장르의 개척이라기보다 지금껏 그림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이 거의 없던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부각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의 그림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휙 지나칠 만큼 사람들이 작게 묘사되어 있어요.

그러나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의 그림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어서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맛이 쏠쏠하지요.



그의 걸작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1560년경부터입니다.

1569년에 사망했으니까 작품 활동은 10년 남짓할 뿐이에요.

그의 그림은 주인공이 따로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화폭의 장면 하나하나를 책 읽듯 읽어 나가야 합니다. 

원근법이 없이 그려졌기 때문에 화폭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굴렁쇠 굴리기, 말타기, 팽이치기, 철봉 놀이, 씨름, 물구나무서기 등 시골 마을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습니다. 

브뤼겔 이전에는 그 누구도 그런 정경을 그려볼 생각을 하지 않았지요.


<아이들의 놀이>


누런 흙벽에 볏단이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어느 시골 농가의 헛간인 듯해요.

아마도 잔칫날인가 봅니다.

하객들은 푸짐하게 차려진 잔칫상에 둘러앉아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떠드는 소리, 음식 먹는 소리, 술 따르는 소리, 악기 소리들이 마구 들리는 느낌을 받아요.

나무 문짝을 쟁반 삼아 수프가 담긴 그릇을 두 사내가 나르는 시점에서 대각선 구조로 시선이 따라가네요. 

화면의 중앙에는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악사가 보이고 문 입구 쪽엔 들고나는 동네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빈 술병들이 뒹굴고 있고 그 옆에는 어린아이가 빈 접시를 찍어서 핥아먹고 있어요.

벽에 걸린 초록색 가리개 앞에 두 손을 맞잡은 여인이 아마도 신부인 듯 머리에 화관을 쓰고 옷차림도 남다릅니다. 


농부의 결혼식


한 남자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미동도 없이 서 있습니다.

<바벨탑>이네요.

이 그림은 성경 속의 바벨 탑을 묘사하고 있지만, 주변 배경은 네덜란드의 항구도시로 추정된다고 해요. 

곧 무너지게 될 탑을 부지런히 건설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곧 닥쳐올 멸망을 모르는 바벨탑 속의 거주민들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요.

1500년 그림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미스터리합니다.  


<바벨탑>


사냥개들과 두 사냥꾼이 여우 한 마리를 잡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얼어버린 호수와 하늘색이 똑 같이 옥색이에요.

지붕과 나무들은 하얗게 눈이 덮여있어요.

한 겨울 풍경인데도 따뜻한 느낌이 드는 건 장작을 때는 아낙들의 분주한 손놀림 때문일까요?

                               

<눈 속의 사냥꾼>
The flight between lent and carnival
피터 브뤼겔 <이카루스의 추락> 벨기에 왕립 미술관 소장


수많은 색들이 팔레트 위에서 섞이고 분리되어 만들어졌겠지요.

그림이 완성되기까지의 붓놀림보다 더 많았던 건 화가의 고뇌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예술은 인생을 닮았어요.

삶 또한 무수히 많은 색을 더하고 빼며 살아가니까요.

사람의 삶이 배제된 예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책뿐 아니라, 음악도 그림도 조각도 모두 삶이 기본이지요.

어두웠다가 밝았다가 따뜻하다가 그렇게 오늘도 '나' 또는 '우리'라는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나'는 한 권의 책, 아니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나를 이끌었던 영화 Museum hours처럼 미술관에서 보낸 시간들이 푸르고 맑았어요.

어느새 밖이 캄캄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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