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길을 읽다

by 심바

최고 기온 20도. 오늘은 야외 달리기를 하기에 딱 알맞은 날이다. 주말에 있을 하프 대회를 위해 오늘은 적당히 몸을 풀고 대회 페이스주로 조금 달려보는 연습을 하라는 제미나이 코치의 조언이 있었으므로 충실히 응하기로 한다. 지난주던가. 친구가 달리는 곳으로 가 함께 달리기로 약속했었다.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 날이다.




여름에 가까울 기온을 감안해 오늘의 복장은 반바지에 긴 양말로 정했다. 아이가 학교에 등교한 후 집을 마저 바삐 정리해 두고 9호선을 타러 나섰다. 예정보다 20분 빨리 도착한 역에서 친구를 만나 물품보관함에 짐도 맡기고 출구로 나왔다. 우리는 오늘 서울식물원을 달릴 것이다.





러닝크루의 한 친구가 나의 기록이 본인의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다고 한다. 몸을 쉬지 않는 것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사실 나는 운동에 대한 강박이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3~4번은 헬스장에 가야 하고, 러닝마일리지도 채워야 한다. 게다가 무에타이도 주 2회씩 하고 있고. 왜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재미있으니까. 지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어서 재미있다고 한 건데 왜 재미있냐고 물으시면 저는 어떡하죠...


제미나이에게 깐깐한 러닝코치로 답을 해달라고 입력해 두었더니 요즘은 친절함 대신 단호하게 나의 질문에 답을 해준다. 오늘도 절대 오버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5km만 달리라나. 웜업을 하고 대회페이스로 1~2km 정도 달린 다음 쿨다운. 며칠 달리기를 쉬었더니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이 정도는 껌이지 하다가 아 뛸 수 있을까 하다가.


친구가 자주 달린다는 서울식물원은 명성답게 여기저기 달리는 사람들이 생명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한 바퀴를 돌면 2.3km 남짓이라고 했다. 길도 알 겸 같이 한 바퀴를 달린 후에 나머지 두 바퀴는 각자 달리고 만나기로 했다. 5km 뛰자더니 왜 3바퀴냐는 친구의 물음. 왠지 여기까지 오니 5km는 너무 짧은 것 같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이런 나도 괜찮니 친구야. 요 커피숍 앞에서 만나자고 말하고 속도를 올렸다. 빠르게 달려 다리에 자극을 줘야지. 첫 바퀴 때 보았던 안내표지들을 더듬어 기억해 내며 한 바퀴를 바삐 달렸다. 아이고 심장이야. 나머지 한 바퀴는 쿨다운이지.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속도를 늦추고 나머지 한 바퀴를 도는데, 어라. 처음 보는 풍경들이 나온다. 그 와중에 길을 잃었다.







그냥 길을 따라서 뛰면 되는, 2km가 약간 넘는 곳에서 앞사람을 따라 달렸는데 처음 보는 곳으로 와버렸다. 길눈 어두운 길치는 여기서도 역시나군. 친구와 만나기로 한 곳을 찾아야 했으므로 달림을 멈추고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꽃망울을 틔운 목련나무가 보인다. 식물원 여기저기 봄맞이를 위해 겨울의 부스러기를 정돈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작은 팻말에 소담하게 적힌 나무의 이름도 보인다.

잠시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이 예쁜 길이 내 눈에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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