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내 기운을 받아랏

관악산이 하는 말

by 심바


만날 때마다 운동은 꼭 하나씩 하기


우리끼리 그렇게 정했다. 물론 늘 반가운 얼굴들이지만 이런 매개체가 있다면 그 시간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E님의 제안에 누구 하나 싫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에 한번 우리는 같이 모여 운동을 하고 달디단 점심을 함께 먹는다. '산책달'의 이번 모임은 등산, 관악산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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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산책달 모임을 앞두고 H님께 가족의 부고소식을 전해 들었다. 2월은 기나긴 겨울방학의 한가운데이기도 해서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강남역 인근에 있는 점핑배틀을 예약했다. 15분만 뛰어도 땀이 비 오듯 한다는 후기에 잘 됐구나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운동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함께 모이지 못하는 거라면, 그것도 부고소식이라면 그럴 수 없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며, 긴 방학 잘 보내고 난 후 모이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쉽지만 곧 만날 거니까.





낮 최고기온 15도. 지난 화요일 두 달 만에 우리는 관악산 등산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나는 워낙 혼자서도 자주 갔던 곳이지만 이번이 첫 방문인 멤버도 있었다. 지난주 일이 많이 바빠 피로한 몸을 이끌고 와준 R님에게 감사를. 모두 함께 쉬엄쉬엄 오르자며(나만 달려가지 않으면 된다.) 건설환경연구소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평일 오전인데 사람이 왠지 많은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지금껏 이렇게 버스가 바글바글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다. H님이 관악산이 기운이 좋은 곳이라고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찾아보니 세상에, 유퀴즈에 나온 게 아닌가.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관악산의 샘솟는 정기를 받으러 온 것이라는 말이다. 저 사람들의 눈에는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일테지.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저 멀리 연주대가 보인다. H님은 이제까지 했던 관악산 등산 중 가장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했다.(미안해요, 제가 그동안 너무 바삐 오르기만 했죠.) 햇살에 봄이 가득 녹아 있는 맑은 날이었는데도 아직 산 중턱에는 미처 녹지 못한 눈과 얼음이 여기저기 마지막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앞 나무에서는 새순이 올망졸망 봄을 맞으러 나오고 있는데. 겨우내 혹독한 추위를 버텨내고는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듯 힘차게 생명력을 뽐낸다. 새로운 계절로 바뀔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자연을 보는 것도 등산이 주는 선물 중의 하나이다.



저 멀리 연주대가 보이면 정상이 거의 코앞이라는 뜻이다. 등산객이 많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상석 사진을 찍으려고 늘어선 줄이 제법 길다. 끽해야 한두 명 기다리면 찍던 사진인데 새삼스럽다.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문제는 그래서 늘어선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니 사진을 50장씩 찍고, 동영상도 찍고, 서서 찍고, 앉아서 찍고. 30분도 넘게 기다린 게 아쉬워서, 관악산의 첫 정상을 밟은 멤버를 위해서 끝까지 기다려서 넷이 후다닥 올라가 다 같이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뒷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길 바라며.




2시간여의 신나는 산행을 마치고 더 신나는 점심을 위해 버스를 탔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삼겹살집 100m 앞에서 내리는 정류장을 찾아놓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버스가 차고지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내리고 나서 찾아보니 그곳으로 가는 길도 애매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찾아볼까 하고 문을 연 식당에 들어가니 세상에 취향저격이다. 안 먹어도 이미 맛있을 것 같은 느낌. 역시는 역시다. 의자가 있는데 왜 앉지를 못하는 건지, 신이 난 우리들은 모두 함박웃음을 짓고 서서 대만찬을 즐길 준비를 한다. 맛깔난 소맥을 만들기 위해 단련한 전완근도 실컷 자랑했다. 내가 이러려고 운동했지. 산에서 마저 다 못 나눈 이야기를 같이 나누며 우리의 시간을 오롯이 즐겨본다.


행복해요, 너무






카톡방 가득 오늘 찍은 사진을 주고받았다. 내 눈에 담았던 산책달의 모습을 자랑하듯 올렸다.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속의 나도 연신 함박웃음을 띄고 있다. 그랬지, 나 오늘 참 행복했지. 관악산 기운 제대로 받았다:)


기쁨과 슬픔과 고민을 나누고 나니 무거운 것은 가벼워지고, 어려웠던 것은 쉬워진다.

혼자서도 잘하는 어른이지만 함께도 잘하는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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