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특례시 하프마라톤
왜 당첨이 되고 난리일까요?
좋기도 하면서 싫기도 했다. 추첨에 뽑히기를 바라며 신청했지만, 막상 당첨이 되고 나니 이걸 또 어떻게 뛰나 싶다. 당장 고양까지 새벽에 갈 일도 걱정이고, 더 일찍 일어날 일도 걱정이고. 그럴 거면 신청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뽑히는 게 안 뽑히는 것보다는 좋으니까. 크루 채팅창이 시끌시끌해졌다. 나처럼 덜컥 당첨되어서 심란한 사람과 떨어져서 심란한 사람들이 모여 떠들어댔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동안 날씨가 풀리는가 싶더니 수능날도 아닌데 대회날 새벽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전날까지 뭘 입고 뛰어야 하나 깊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잘 달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심각했다. (이래서 실력이 안 느는 건가. 아 몰랑.) 장고 끝에 옷을 정하고 상의에 배번도 미리 달아두었다. 오래간만에 레디샷도 찍어서 SNS에 올리고 나니 더욱 실감 난다.
'지지난주에 푹 퍼져버린 32km 대회는 잊자, 하프만 뛰면 되니까 덜 힘들겠지.' 하며 열심히 마인드컨트롤 했다. 남편이 대회장까지 30분 남짓 걸린다며 새벽같이 태워준 덕분에 좋은 컨디션으로 대회장에 도착했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하프 마라톤 대회들은 몇 번 나가봤지만 고양까지 간 건 처음이었다. 작년에 이 대회를 나가본 크루원들은 사람도 많고 정신없었다고 했지만 나는 되려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을 받았다. 종합운동장에 대회장이 마련되어 있어 자동차들을 피해 다닐 필요도 없었고, 제반시설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같이 참가한 크루원들과 간단히 몸을 푼 다음 출발 그룹으로 향했다. 체온 유지를 위해 입은 일회용 우비가 몸을 기분 좋게 덥혀주었다.
A조가 출발했다. 뒤이어 우리 조도 출발선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목표로 하는 페이스를 부디 끝까지 유지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계속 '할 수 있다!'를 되뇌며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시계를 다시 정비하고, 함께 뛰어줄 노래도 다시 세팅했다. 겨우내 러닝클래스에서 열심히 훈련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늘 이 대회를 위해서 나는 그렇게 열심히 달렸으니까 조금 힘들다고 쉽게 퍼지지만 말자.
5, 4, 3, 2, 1 출발
고양하프마라톤의 코스는 뛰기에 좋은 코스였다. 초반에 길지 않은 3개의 지하차도가 업힐과 다운힐을 만들었지만 어렵다고는 할 수 없는 정도. 음수대와 간식도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생각보다 응원을 해주는 시민들도 많았다.
응원의 힘은 실로 어마했다. 8km 정도 지점쯤 우리 러닝크루의 깃발을 보았는데 반갑게 소리치며 달리다 워치를 보니, 아주 잠깐동안이었지만 4분 후반대 페이스가 나왔다. 오버페이스는 금물이었기에 서둘러 속도를 낮췄지만 순간 느껴지는 짜릿함이 새로웠다. 주자들도 힘이 나지만, 응원하는 사람도 힘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해 보았기에 여력이 될 때마다 시민들과 손뼉을 치며 응원의 기운을 받았다. 마라톤 대회가 열리면 응원을 한번 가보시기를 적극 추천한다.
https://brunch.co.kr/@simba/56
결승점은 고양종합운장. 내 생애 가장 긴 트랙이었다. 오늘 이 마지막 400m를 달리기 위해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잖아.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며 달렸다. 무거운 두 다리가 결승선을 통과했다. 드디어 끝났다.
바삐 워치를 멈추고 화면을 보자 너무 기뻤다. PB다!
작년보다 1분 남짓 당겨진 올해 첫 하프의 기록. 작년 봄 이후로 계속 느려지기만 했던 나의 뜀박질이 비로소 심폐소생을 받았다. 세상 가장 소중한 내 1분!!!
남들이 10km를 뛰는 시간에 하프를 뛰시는 엘리트 크루원 한 명을 제외한 우리 크루원 모두 PB를 달성했다. 다 같이 기분 좋게 단체사진도 찍고 기록도 공유하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무려 10년 만에 PB를 갱신한 분도 계셨다. 같이여서 더욱 행복한 대회였다. 수고했어,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