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태어나 처음으로 러닝 클래스를 수강했다. 수많은 수업 중에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고른 것은 아니었고, 같이 뛰고 있는 러닝크루에서 여성 멤버들만을 대상으로 연 수업이었다. 수강 후 모든 수강생들이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 나만 제외하고.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듣고, 내주는 숙제를 90% 이상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10km 대회에서 전보다도 못한 기록을 내고 말았다. 같이 클래스를 수강한 모든 사람들이 아쉬워했지만, 가장 속상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나였다. 5km를 지나면서 무거워진 다리가 뒤에서 나를 계속 붙잡았다, 가지 말라고. 그렇게 목표했던 대회에서 처절한 패배를 하고 달리기라는 것에 질려버렸다. 그 후로 얼마간 러닝과 멀어졌다. 재미가 있어서 달리는 사람이었는데, 재미를 잃어버리니 달려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반년이 넘도록 적당히 느리게, 그래도 가끔 달리고는 있잖아 하던 나를 각성시킨 건 결국 마라톤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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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회를 달리고 난 후 전에 수강했던 러닝클래스의 러닝벙을 참가한 후 나는 어느새 겨울 러닝클래스 신청멤버가 되어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아마 내년 가을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출전할 것이다. 결론이 정해져 있으면 과정이 심플해진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겨울수업을 신청했다. 누구보다 추위에 약한 수족냉증 보유자인 나는 이마저 없으면 치열하게 달리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대신 욕심을 많이 내려놓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저번 수업과 같은 결과를 굳이 한 번 더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교대근무 특성상 정해져 있는 수업을 항상 들을 수는 없다. 근무시간과 중복되는 수업일마다 모두 휴가를 쓸 수도 없는 일이다.(게다가 연말이라 더 쓸 휴가도 없다) 수업을 갈 수 있는 날에는 최대한 약속을 잡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나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비가 와서 수업장소가 바뀌거나, 일찍 오기로 되어있던 남편에게 갑자기 저녁약속이 생기거나, 내 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지기도 했다. 그런 이유들로 지난 수업을 듣지 못했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몇 번째 빠지는 거야. 속상해.
이틀 후 아이들을 등교시키면서 같이 나가 바로 헬스장에 갔다. 그 시간에 나가는 건 정말 기필코 운동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맘먹고 갔으면 숙제까지 다 해야지. 1시간 알차게 근력운동으로 한 후 4층으로 가 러닝머신에 올랐다. 조깅 숙제는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12.25km를 뛰어야지 마음먹고 러닝머신을 돌렸다.
요즘 나의 러닝메이트는 '피지컬 100'. 땀을 뚝뚝 흘리는 출연자들을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뛸만하다.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12.25km는 한 시간을 좀 더 달려 마쳤다. 그러고 나니 저번에 참석을 못한 수업에서 했던 인터벌을 몇 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300m를 4분 후반대의 페이스로 뛰고 난 후 45분 제자리 휴식을 하는 것을 16세트 진행한 것을 보고 5세트만 해봐야지 했다. 이미 12km를 넘게 뛰었으니 무리는 하지 않되 감은 살려보자. AI에게 물으니 무동력 트레드밀보다 그냥 러닝머신을 돌리고 쉬는 건 사이드스텝으로 해보란다. 오. 아주 나이스. 러닝머신으로 할 수 있는 연습방법이 무궁무진하구나 또 하나 배웠다.
5세트, 6세트, 10세트, 16세트. 다 했다. 다 했다. 다 했다!!!
클래스에서 진행했던 분량을 다 채웠다. 이전 남산 수업도 출근과 맞지 않아 가지 못했고, 다음 수업도 휴가를 쓰지 못해 못 갈 예정이라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렇게 혼자서라도 달리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 클래스의 끝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수업을 듣는다고 무조건 나의 실력이 나아진다는 것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기에 어마한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다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하다.(그래도 앞으로 남은 수업은 더 빠지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매일매일을 운동하며 채워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건강한 삶인가.
그리고 말이야, 러닝머신.
난 네게 반했어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