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카톡방에 초대된 이유, 멤버 소개
2021년 12월 어느날.
<깁슨님이 심바님, 펜더님, 드럼님, 베이스님, 여컬님, 남컬님 을 초대했습니다.>
깁슨 "아공연하고싶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저 깁슨의 외마디 외침.
농담섞인 말로 우리는 '깁슨 픽'이었다고 말한다. 깁슨은 대학 때 부터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그 시기에도 우리를 항상 카톡방에 옭아매며 "우리는 공연을 할 것이고, 할 생각이 있고, 없으면 무리 안해도 된다, 난 정말 할 것이다" 라는 주문을 외우고 다녔다. 어떻게 보면 그의 세뇌에 우리가 먹혔던 걸까?
2021년 12월 카톡방에 최종 멤버로 초대되기 전, 이미 카톡방은 몇개가 만들어졌었고 또 폭파되었다. 이미 몇번의 새로운 채팅방에서는 "이번엔 진짜다"라며 결의를 다졌지만 며칠 뒤면 각자의 사정으로 애매한 답변만 오가기 일쑤였다. 이 반복되는 과정이 지쳐갈 무렵 펜더와 내가 '뭐가 됐든 일단 얼굴이나 보자'며 첫 만남을 추진했다. (그 전에 멤버 결성까지 펜더와 깁슨이 카톡방을 거쳐간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며 최종 멤버 구성을 추진했다. 여기서 많은 고생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
우리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었다. 서울,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등 각지에서 터를 잡고 있었기에 만나는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평일은 당연히 안되거니와 주말에도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겨우 하루를 정했다.
2022년 8월 어느날, 서울역.
<멤버 소개>
우리는 대학교에서 밴드부 생활을 했다. 11학번부터 15학번까지로 구성되어있는 우리는 거의 한번씩은 겹쳐서 공연을 했던 인연이 있다.
나(심바)는 그저 취미로 피아노 학원을 오래 다녔던 것이 내세울만한 장점이었다. 악보를 보고 성실을 무기로 곡에 잘 어우러질 수 있게 열심히 연습을 해갈 수 있는 그저 '음악 좋아 인간' 이었다. 그런 나는 밴드부 생활이 너무 재미있었다. 한 평생 합주라고는 고등학교때 바이올린과 플룻을 부는 중주반에서 디지털 피아노로 첼로소리를 내며 소리가 비는 부분을 채우는게 다 였기에 밴드부가 너무 환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밴드부 자체에 애정이 커져갔고, 힙합이 주류인 그 시절(2015년)에 밴드는 재미없다며 무시받는 상황이 너무 싫었고 선배들의 부재로 인해 중심을 잃어가던 밴드부 자체를 정상화(?)시키려 많은 노력을 했었다.
깁슨은 열정적인 기타맨이었다. 밴드부라면 응당 갖춰야하는 '주량' 덕목에서도 빠지지 않았고 기타에 대한 열정,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히 대단한 사람이었다. 물론 실력도 학교 최고였고 음악적 중심이었다. 그의 열정이 우리를 다시 모이게 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펜더 또한 깁슨과 영혼의 단짝처럼 밴드부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기타맨이었다. 조용한데 할 말 다 하는 성격이었고 필요한 순간에 먼저 나서서 밴드부 일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었다. 펜더와 깁슨은 우리의 상징같은 존재였고 축제 때 교내 장기자랑에서도 오로지 기타 연주로 당당히 대상을 거머쥘 만큼 센스도 있고 연주 실력이 아주 출중했다.
드럼은 만능맨이었다. 교회 찬양팀을 하며 거의 모든 악기를 섭렵했고 순둥한 얼굴과 yes맨의 면모를 가졌으면서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반전 매력을 가졌다. 막내라인 중 한명이고 (∩_∩) 이 표정으로 항상 주변을 둘러본다.
베이스는 최고참 선배로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모두를 쫄게 했으나 사실은 무서우려는 의도가 1도 없었던 그저 T였던 사람이다. 밴드 붐이 오기 전, 특히 베이스 붐이 오기 전에 베이스를 치는 사람이 없어서 기타맨들이 땜빵을 해주곤 했는데 지난 날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아주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여컬은 나와 함께 밴드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던, 사실상 나의 징징거림을 받아주며 많이 도와준 아량 넓은 언니같은 동기였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쩌렁쩌렁한 성량을 가졌으나 공연 전에는 그 누구보다 걱정많고 떨려하는 작고 소중한 보컬이었다.
남컬은 당시 우리 밴드의 최고 가창력을 가진 선배였다. 이 선배 또한 날카로움의 대명사였으나 가창력과 음악, 노래에 대한 열정과 디테일이 좋았다. 공연을 할 때면 가창력으로 관심을 모았을 정도니 우리가 믿고 맡기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