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김지영
마흔, 청순했던 그녀의 욕 도전기
나는 욕 청정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욕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된소리 발음으로 ‘아이씨’ 하는 것조차 들은 적이 없다.
아버지 입에서 나온 가장 험한 말을 떠올려볼까?
집에 전화가 왔는데, 딸을 붙잡고 있으니 천만 원을 즉시 보내란다. "아빠~~ 살려줘~~!" 하는 애원까지 들렸다.
너무 놀란 아버지는 소리쳤다. "우리 애를 붙잡고 있다고요?!"
방에서 늦잠을 자던 나는 부스스 방문을 열고 나와 무슨 일이냐 물었다.
어이없게 안심한 아버지가 수화기에 대고 화를 내셨다.
"아저씨, 그렇게 살지 마세요!"
선비 같은 그에겐 최대한의 표현이었다.
다혈질인 데다 정치인 나무랄 때면 격하게 흥분하는 어머니도 욕은 자제하셨다. 공부 안 하면 당장 공장 취직해라 정도. 친구들도 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욕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교양 챙기는 여자로 자랐다. 평생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욕의 세계에 노출된 것은 회사에 들어가서였다. 공교롭게도 부서에는 남자들만 가득했는데, 사무실에서는 일상적으로 아재들의 정겨운 욕지거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엔 듣고 있기 거북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수박씨를 발라먹고, 개들이 자꾸 자손번식을 하고, 허구한 날 가족 깥았다. 나중에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가든 태연하게 자판을 두드리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아기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 여러 번 반복해서 단어들을 듣는데, 그러다 말문이 트인다. 어렸을 때부터 일상 속에서 영어 CD나 DVD를 틀어놓고 아이들에게 3시간씩(그 이상도) 외국어를 노출시키는 학습방법이 있다. 이걸 전문용어로 흘려듣기라고 한다. 말하자면 내게 이 시기는 욕의 흘려듣기 훈련 기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 특정 말들이 떠올랐다.
요 때는 요 단어가, 조 때는 조 단어가. 그럼에도 입 밖으로 내뱉는 건, 20년 성문 기초 영문법을 공부했어도 말 한마디 못하는 것과 비슷하게 어려웠다. 결국 나는 욕 실습은 못해 보고 퇴사를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먼저 이 길을 간 선배 맘들이 귀띔을 했다. 독박 육아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쌍소리가 나온다고. 그러나 욕 한마디 못하시는 아버지 천성을 물려받은 이유에서인지 난 차마 상스럽게 ‘씨’도 하지 못했다.
아들이 네 살 때쯤이었나, 중고나라에서 인기 있고 비싼 유아전집을 하나 구매했다. 책 상태가 좋고 가격은 반의 반값인 걸 보고, 다른 사람이 먼저 살까 봐 황급히 계좌이체를 했는데, 이런 씨!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처음으로 경찰서에 가서 신고도 하고, 고소장도 썼다. 경찰관은 이런 일은 심각한 축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듯, 대충 넘겼다. 그저 다음부터는 중고나라 거래하지 마세요, 타이르면서. 아무래도 범인이 쉽게 잡힐 것 같진 않고, 돈을 돌려받기는 더더욱 힘들 것 같았다. 애들 물건 가지고 장난질이라니, 이런 파렴치한이 있나!
돈을 보내기 전까지만 연락이 닿았던 그 번호로 욕을 한 바가지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말을 해야 상대가 제일로 기분 나빠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전송했다.
'이 나쁜 사기꾼아. 평생 돈 버는 족족 병원비로 날려라.'
생각해 보면 정말 무서운 말이다. 난 참신하게 상대를 저주했다며 뿌듯해했다.
그림책 : 친구가 욕을 해요/ 라임
내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둘째를 낳고서였다. 배로 늘어난 가사와 돌봄 시간에 지쳐갔다.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며 행복해하다가도 돌아서면 가슴이 답답했다. 소화가 안 되는 건가 싶어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마셔보고 얼음도 와작와작 씹어봤지만 명치에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는 날이 많았다. 그 열기는 어쩌다 지뢰를 밟아 터지듯 예고 없이 펑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첫째 아이가 반찬 투정을 한다거나, 첫째와 둘째가 장난감을 가지고 시끄럽게 싸워댈 때.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애들이 이 ‘화’의 원인이었을까? 아이들은 자신의 본성대로 재미있고 장난치고 자유로운 것뿐인데.
이 무렵 내겐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설거지를 할 때 물을 세게 틀어놓고 그릇들을 요란하게 부딪치며 입을 우물거렸다. 들릴 듯 말 듯, 주문을 외는 것처럼. 기독교 신자인 내가 혹시 방언을 받은 걸까. 표적을 딱히 찾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한 단어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아, 숫자. 컴퓨터 자판으로 치면 두 개만 열심히, 독수리 타법으로 쳐도 되는.
그림책 : 친구가 욕을 해요/ 라임
어느 날 아들이 불쑥 다가와 다리 가랑이를 잡았다. “엄마, 나 신발 빨아줘! 신발!”
흠칫 놀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둥아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행히도 이런 나의 상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지 않던 우리 남편 안공유 씨가 어느 날, “여보, 나 양말이 없어! 왜 자꾸 안 빨아?” 라며, 찾았다. 나는 분명히 어제도, 그끄저께도 빨래를 했건만. 흰 빨래 말고 색깔 빨래도 틀림없이 돌렸건만. 남편 서랍장에 수두룩한 양말들도 확인했건만. (짝이 맞지 않거나 스포츠 양말이거나 겨울 양말이라는 것이 안공유 씨의 설명이었다.)
원래 싸움거리도 아닌 것이 부부싸움의 불씨라는 건 만고의 진리라 했던가. 부부의 설전은 부지불식간에 산불로 번졌다. 나는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키고 돌리고 널고 개켰던 모든 세월을 떠올리듯 부들거렸다. 안공유 씨는 자신이 도박도 않고 바람도 안 피우며 월급도 착실하게 갖다 주고 때로는 요리까지 해내는 멋진 남편인데, 양말 하나에 과장되게 반응하는 아내가 우악스러워 보였다. 신혼 때였다면 나는 못하는 말싸움을 어눌하게 하다가 울어버렸을 것이다 . 하지만 8년차 아내, 자녀를 둘 키워낸 강한 어머니인 나는 이제야말로 때가 찼음을 직감했다. 난 낯빛을 바꾸지 않았다. 82년생 김지영씨처럼 낮은 목소리로 ‘안 서방’이나 ‘사부인’을 부르며 빙의가 되지도 않았다. 마침 아이들이 모두 자고 있다는 건 하늘의 싸인이었다.
두근두근 입을 열었다.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씨. 발.
안공유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쫓아다녔던 청순했던 여자는 어디 간 건가.
이 대체 무슨 단어란 말인가. 자신의 귀에 들린 소음을 해석하느라 동공이 흔들렸다.
안공유씨는 이어
말을 잇지 못하고...
.
.
.
.
박장대소했다.
뉘앙스를 살리지 못한 나의 불찰이다..
이로써 나이 마흔의 욕 도전기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묘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