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다시 태어나면 나랑 또 결혼할 거야?”
남편이 대뜸 물었다. 어떻게 저렇게 엄청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순간적으로 벙어리가 됐다. 머릿속에서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느껴지는 듯했다. 지난 8년간 맞추어 오느라 참 애쓰긴 했는데...... 남편은 숨길 수 없었던 정적에 웃으며 왜 이렇게 심각하냐고 핀잔을 줬다. 서운하단다. 나는 진심 어린 미소로 남편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난 다시 태어나면 결혼은 안 할 거 같아서 그러지. 난 평생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어.”
어떤 부부는 이 질문으로 심각한 부부싸움을 했단다. 남편이 그런 걸 물으니 아내가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냐며 화를 냈다나? 믿거나 말거나.
백번 말해봐야 소용없다. 손을 꼭 데어봐야 불이 뜨겁다는 것을 아는 인간 부류가 있다. 내 배 아파 낳은 아들이 그렇다. “앗뜨!” 소리쳐도 들은 체 만 체 하던 녀석이 음식점 불판에 손을 뎄다. 아이의 고사리 손에 잡힌 물집이 가슴 아팠지만 그 난리 이후, 아이는 ‘앗뜨’ 한마디에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졌다. 데어봐서 잘 배웠다. 실수를 통해 확실하게 배웠다.
나는 재수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반수다. 처음 입학한 학교는 여대였는데 한 학기만 다녔다. 여대 앞에는 맛집, 옷집, 액세서리 집이 드글드글했다. 단 하루도 집에 그냥 들어간 날이 없다. 매일 그 앞을 쏘다니다 들어갔더니 고3 때 쪘던 살이 절로 빠졌다. 집이 학교 근처라 미팅에 인원이 모자라면 갑자기 불려 나가기도 하고 하루에 두 탕을 뛰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흥청망청 놀고 있기에는 등록금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악착같이 공부하는 여자들뿐이라 장학금 받기도 만만찮아 보였다. 게다가 1교시 시작이 8시였다. 이미 많은 8시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학점이 걱정됐다. 지금처럼 4년을 보내고 나면 내 인생은 답이 안 나올 것 같았다. 난 결국 재수를 했고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다. 새 출발 후에는 새 삶을 살았다. 미팅도 하지 않고 학교 앞에서 놀지도 않았다. 나름 학점관리에도 열을 올렸다. 모든 일에 이렇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생애 단 한 번뿐이었던 결혼식, 첫아이 출산이 떠오른다. 너무 중요한 일들인데 경험 없이 닥쳐야 해서 난감했던.
남편의 질문에 대해 이후에도 혼자 고민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저 사람과?
본의 아니게, 옛날 옛적, 그에게 반했던 날들을 회상했다. 여러 가지 상처로 고슴도치같이 굴던 시절이었다. 나는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많았다. 사람을 믿지 않았다. 외로움 속으로 더 깊이 다이빙하며, 심해로 들어가, 히키코모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만의 유쾌함과 단순함, 뚝심으로 햇살 비치는 세상에 나를 끌어냈다. 신뢰의 씨앗을 심어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 맺게 했다. 그러고 보니, 결혼할 만했다. 감사한 나의 사랑.
그건 그거고, 결혼생활은 괴로움이 동반되는 일이다. 마흔 무렵의 비혼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외롭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배우자 덕인지, 아이들 때문인지, 마그마가 솟구치는 화산처럼 폭발할듯한 괴로움은 충만했을지언정, 외로움을 느꼈던 건 언제인지 더듬거려야만 한다.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고독과 외로움이 그리울 지경이니까. 복잡한 인생살이 결혼해도 외로운 사람, 혼자 살아도 즐겁기만 사람 다양하겠지만, 단순하게 내가 아닌 타인과 동행하고 동거하는 복작복작한 일상을 떠올렸을 때 -
결혼을 하냐, 안 하냐, 는 외로움이냐 괴로움이냐의 문제다. 결혼을 해서 보니, 괴로움이 너무 커서 다시 외로움의 길을 택한 친구도 있다.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삶이 있다.
“당신은 다시 태어나면 나랑 또 결혼할 거야?”
남편이 언젠가 또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두 번째 기회였다.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조금의 뜸 들임도 없이,
군기 바짝 든 신병처럼 빠릿빠릿,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럼, 그럼. 언제나 당신뿐이지.
다시 태어나면 꼭 당신이랑 결혼할 거야.”
솔로몬의 지혜가 내게 오셨다. 윤회 사상을 믿지 않는다. 천국을 갔으면 갔지, 다시 태어날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을 가지고 나의 소중한 배우자 마음을 상하게 해서 이생을 망친단 말인가. 일어나지 않을 일은 고민도 말자.
남편이 웃는다. 영혼 좀 담아서 이야기하라고.
다음엔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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