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미친 짓이다

마흔의 글쓰기

by 김봉란

욕을 하지 않으려, 다른 방법의 카타르시스를 찾으려, 다시 글을 잡았다. (전편 글 '제목 : 십팔' 참고 ) 그러고 보니, 글을 써보겠다며 첫 발을 뗐던 ‘치유하는 글쓰기’가 생각났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전력이 있으신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미친 사람이 일반인과 다른 점은 아무에게나 경계 없이 모든 이야기를 다 까발린다는 점이라고.


보통의 사람은 누구에게는 날씨 얘기만, 어떤 이에게는 표면적인 근황을, 특별한 벗에게는 속 얘기까지, 구분 짓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한 존재에게만이라도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어야 미치지 않는다고.


언스플래쉬@tinaflour

사실, 어렸을 때 내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한 가지 있었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류의 것은 고민일 경우가 많은데,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니 속으로만 끙끙거렸다. 라떼는 검색엔진 같은 것도 없어서 익명으로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스무 살 무렵 K 언니를 만났다. 모든 걸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은, 무슨 얘길 해도 나를 괴물 취급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 너른 귀인이었다. 함께하던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하기에 딱 알맞은 분위기의 진중하고도 맑은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순간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깨문 채, 없는 용기를 냈다. 있는 뜸 없는 뜸을 다 들이다, 언니의 “괜찮아, 얘기해봐” 말 한마디 위로 도움닫기하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폴짝.




인생의 돌덩이를 폭로했다.

말을 하지 않고 평생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그랬나 생각해보면, 나는 자유롭고 싶었던 것 같다.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훨훨 날고 싶은데, 모래주머니 하나 가슴에 얹혀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꿉꿉한 이야기가 단단히 갇혀 있었다. 어서 햇볕에 꺼내 말려야 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고, 볕뉘라도 들게 해야 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손을 뻗을 수도, 영영 다가갈 수도 없는 탁 트인 하늘에, 흠뻑 젖고 싶었다.

언스플래쉬 @fuuj


언니는 체온 정도의 따뜻함과 미풍 부는 선선함으로 답했다. 울음을 충분히 도닥이되 한 편으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지구상의 누군가들도 나와 동일하게 힘들었을 거란 사실은 알지도 못하는 이와의 연대감을 갖게 하고 희한한 해방감을 선사했다.


나는 훨씬 행복해졌다. 내 일부가 아닌 온 존재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중요했다. 난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나로 살 수 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투명해서 탈이었다. 한동안은 누구에게든 내 참모습을 보여줘야 진실한 관계라고 생각하며 경계 없이 알맘을 내보였다.


그 때로부터 또다시 20년이 흘렀다. 두 번째 스무 살이 되어보니, 자라는 동안 내가 가감 없이 비쳤던 속 얘기들이 타인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고, 우비까지 입으며 자신을 보호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때로 누구들은, 내가 가면 벗지 말기를 바란다는 것도....... 적당히 서로의 이미지를 지키는 만남도 필요하고, 굳이 들추지 말아야 할 음지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언스플래쉬@alvaroserrano


다만, 언제부턴가, 내가, 누구에게든 날씨 얘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글에서도 그런 경향이 자주 나타난다. 글쓰기에는 여러 장르가 있고, 굳이 나를 드러내지 않은 채, 무엇을 설명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뛰어난 글도 있다. 실용적인 글로도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빨려 들어가듯 읽으며, 작가의 전존재에 대해 궁금해지고, 하나의 세계를 받아들이듯 따르게 되는 글은, 다름 아닌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글을 보진 않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끄적거리는 글쓰기야말로

미친 짓이다.


마흔에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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