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피가 맛이 없어지나 보다. 오른편에 8살 아들내미, 왼편엔 3살 딸내미를 두고 가운데에서 자면, 혼자만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 군데군데 빨갛게 부푼 딸의 오동통한 다리와, 벅벅 긁어 이미 피딱지가 앉은 아들의 팔을 대가로, 나는 방공호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잤다. 미안한 마음은 둘째에게만 가졌다. 왜냐하면 둘째는,
"우리 딸, 왜 이렇게 이쁜 거야?" 하니,
"엄마 닮아서 그렇지!"
라며 이 보다 더 정답일 수 없는 말로 똑똑하게 대답했다. 절대 주입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영재처럼 깨우쳤다. 반면 첫째는 어젯밤 잠들기 전에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엄마 콜라겐 좀 먹어" 란다.
(티브이 광고에서 김사랑의 “언니 뭐 믿고 콜라겐 안 먹어요?” 대사를 인상 깊게 본 모양이다.)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둘째가 끼어든다.
"나도. 나도! 콜라겐 먹을래!“
오빠는 우하하하 웃으며,
"넌 콜라겐 먹을 필요 없어. 그치 엄마?
뿌랭이(둘째 애칭)는 피부가 줄을 쫙 당긴 것처럼 팽팽한데,
엄마는 줄이 느슨해서 당겨 줘야 하는 거잖아?"
unsplash @wolfgang_hasselman
노화라는 것은 안팎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여덟 살만 돼도 노화를 눈치챌 수 있으며, 하찮은 미물도 기가 막히게 안다. 모기에게조차 외면되는 몸뚱어리일진대 일상에서는 얼마나 더 하랴.
얼마 전엔 동네 어르신이 대뜸
"에고... 애 둘 키우더니 별 수 없네. 예전에 참 고왔는데..."
라며 내게 필터 없는 안타까움을 표하셨다.
충격받은 마음을 숨기며 넉살 좋게
“제가 세월 맞았죠”라고 하니,
둘러앉은 할머니들이 너도 나도 끄덕이며 한 마디씩 거든다.
"여자는 다 그렇지. 애 키우다 보면 어쩔 수 없어. “
할머니들은 모두 자기의 처녀 때를 상상하는 듯, 눈길이 멀어졌다.
노화.
마흔이 되니 참 실감 난다.
예전에는 안 보이는 곳에만 뜨문뜨문 흰머리가 생기더니, 이제는 대놓고 오른쪽 옆머리에 하얀 둥지를 틀었다. 미용실 언니에게, 새치 염색을 시작해야 될까 보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요즘 따라 왜 이렇게 머리가 가늘어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언니는 웃으며, 나이 들면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위로 아닌 팩트를 전했다. 머리를 잡고 있는 모공들의 탄력이 없어지면서 쭈글쭈글해지는데, 그러면 영양 공급이 예전처럼 잘 되지 않는다. 머리카락은 자연히 힘이 없어지고 얇아진다. 심하면 탈모도 일어난다고 했다. 애들 키우는 동안 최대한 머리 감지 않고 버티거나, 최대한 빨리 씻거나, 제대로 말리지도 않고 누웠던 수많은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몇 달 전에 들렸던 치과에서는 제일 끝에 있는 어금니의 수명이 다 된 것 같다며 임플란트를 권했다. 의사는 전체적으로 잇몸이 좀 안 좋은 상태라고 주의를 주면서 엑스레이 사진으로 5개나 되는 요주의 어금니를 동그라미 쳐서 보여줬다. 하루 3번, 3분 안에, 3분 동안 이를 닦지 않았던 일상과, 수유하다 그냥 잠들기도 했던 밤들이 떠올랐다.
지금에야말로 숱하게 들었던 광고들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노화를 막을 순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는. 피부관리 일을 10년 넘게 했다던 브런치 작가, ‘킴샤샤’님의 조언도 지금 나를 향한 잠언이자 직언이다.
젊어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뭐라도 한 분들의
50대, 60대는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요.
그간의 애 키우는 일상이 늙은 엄마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관리의 습관을 쌓는다면 다음 십 년은 좀 달라질 수 있다니, 남다른 각오가 솟는다. 사실, 나이 든다는 것은 점점 손이 많이 가고, 돈도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게다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남자에겐 나이 들면서 오히려 중후한 멋이 든다고 얘기해주는 반면, 여러 모로 희생하고 애쓰며 돈도 시간도 에너지도 자신에게 쓸 수 없었던 엄마들에겐, 별 수 없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들이 억울한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