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은 호박나물에 대한 오해를 푸는 걸로

마흔의 신대륙 탐험

by 김봉란

나는 호박 나물을 싫어한다.

요리조리 손이 많이 가는 나물 종류를 집에서 잘해 먹지 못해서, 한정식 집에 가면 자연의 기운이 가득 담긴 나물들을 정신없이 흡입하곤 하는데, 딱 하나 젓가락이 가지 않는 접시가 있다. 호박 살짝 볶아 새우젓 쬐끔 넣고 자박자박하게 지진 푸릇 노릇 호박나물. 의문이었다. 된장찌개에 넣어도, 생선조림에 넣어도, 호박전을 해 먹어도 맛있는 이걸, 왜 하필 저렇게 맛없게 만들어서 먹을까?


그러던 어느 날, 획기적인 만남이 있었다. 마흔의 나에게, 우연한 기회라고 하지만 운명이라고 해야 할 역사적인 사건. 시골밥상의 식탁에 무심히 올라온 그분은 분명히 여러 번 뵈었던, 한결같이 실망을 안겨줬던, 식상한 모습 그대로였다. 약간 다르다면 좀 더 도톰하게 잘라 굵은 깍두기 모양을 하고 중심이 예쁜 노랑빛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신선해서 그런가? 잘 익은 건가? 호기심이랄 것 까진 아니고, 기대감 없이 한 젓갈 들었다.


인스타그램 @lesley_5252

입 안에 투하된 호박 쪼가리는 대개의 경우처럼 물컹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덜 익힌 단단함이 남아 있지도 않고. 딱이었다. 촉촉하면서도 파근살캉한 식감. 게다가 단조로운 짭짤함이 아닌, 달근하고도 간간하며 짭쪼름한 맛.

아니! 호박 나물이 이런 맛이었다니?


천지개벽을 일으킨 풍미에 입이 자꾸 벌어졌다.

리필까지 해 먹었다. 밥보다도 많이 먹었다.

나는 그간 오해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호박 나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진짜 맛있는 호박 나물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해, 몰랐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했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서른이 넘어 입문했던 곱창과 족발의 세계는 내 삶의 야심한 밤들을 더 맛있게, 쫄깃하게 양념해 주었다. 입에도 안 대던 것들이 줄었다. 혓바닥이 즐거울 거리는 늘었다.


삶은 내내 오해를 푸는 과정이라고 하더라. 잘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한 거리감은 종종 우리로 야박하게 외면하거나 홀대하고 무관심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난 진짜 운동 싫어, 하는 사람은 어쩌면 단 한 번도 기분 좋은 운동의 쾌감에 도달하지 못해 그런 걸 수 있다. 선보러 나가서 제대로 대화도 안 해 보고 3초 만에 내 스타일 아니라고 단정 짓는 짓을 평생 하고 있는 샘이다. 게다가 우리는 고정된 물체가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안 변한다면서도, 저이 변했다, 흘기는 걸 보면.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된 호박나물의 맛을, 나는 다른 영역으로도 확장해보기로 했다.

분명히 내가 차단한 수많은 신대륙들이 나의 탐험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해 아래 새 것은 없지만, 여지껏 눈 뜨지 못한 신세계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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