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살았다. 휴.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 나이가 되니 자꾸 비교가 된다.
물론, 3살 아가 때부터 비교는 시작된다. 오빠 떡이 큰지, 내 꺼가 큰지, 오빠가 사탕이 많은지, 내가 많은지. 예민한 십 대 땐 피부가 뽀얗고 예쁜, 메이커만 입던 부잣집 친구와 비교했다. 입시 때는 성적이 절대 잣대였고, 어느 대학을 들어갔는지 일부러 견주어 보지 않아도 무슨 문신처럼 새겨져 서열과 배경이 됐다.
요즘 대학 졸업생들이 그렇게 정신과를 찾는단다.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을, 갈수록 어린 나이부터 감당하고 산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공부 공부하면서 간신히 대학을 가고, 또 캠퍼스 낭만 같은 게 뭐냐며 눈에 불을 켜고 취업 준비를 한다. 그러면 분명히 성공한다 했다. 근데, 살아보니 아니다. 일자리는 못 구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뭔지도 모르고, 공부 바보가 돼서 생활력도 없는 상태로 사회에 내던져진다. 나는 그동안 뭐하고 산 거지? 내가 믿고 쫓아왔던 건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지선다를 벗어나, 정답 없는 질문이 빽빽한 시험지를 다시 받아 든다.
마흔, 성적표를 받았다. 대학을 나오고부터 내내 풀었던 삶의 결과가 지금의 나다. 이 나이 돼서 하는 비교는 단편적이지 않다. 명품 욕심, 가방 욕심 같은 거 없는데도 마음이 다소 쭈그러든다. 통틀어 쌓여온 삶, 라이프 스타일, 살아가는 모양새, 말하자면, 인생이 비교된다.
실은 올해, 뒤통수를 프라이팬으로 맞은 것처럼, 별이 번쩍한 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와의 비교 때문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내 나이보다도 어린, 아주 야무진 엄마였다. 부동산 투자를 스물여섯부터 했단다. 그것도 엄마의 곗돈에 몰래 손을 대 시작했다고. 싹이 남달랐다. 사람이 타고나는 천성이라는 게 있고 그건 쉽게 바꿀 수 없던데, 나의 천성은 돈 되는 것들과 거리가 멀었다. 친구의 어머님이 비자금으로 오피스텔을 한 채 장만했다고 했을 때, 비자금 한 푼 만들어 놓지 않은 나는, 훗날 개집 하나 마련할 수 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그런데, 이 엄마가 글쎄, 한 채도 아니요, 두 채도 아니요, 세 채도 아닌, 무려 스무 채의 건물주란다. 놀래 자빠졌다. 그렇다고 금수저도 아니다. 그저 일찍이 세상에 눈을 뜨고, 아끼고 모으고 투자하고를 십 년이나 해 온 결과물이란다.
돈 욕심내고, 돈돈 거리는 건 속된 거요, 세뱃돈을 받아도 그저 엄마한테 맡기라고만 교육받았던 내가 경제관념이 투철할 리 없다. 배불리 먹고, 읽고 싶은 책 사고, 아이들과 쾌적하게 지낼 공간이 있으면 충분히 만족하는 나의 성정엔 악착같음도 없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는 100만 원만 줘도, 하고 싶은 일을 시켜 주는 곳이라면 감사하게 취직해서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원했던 곳, 희망 연봉 란에 월 백만 원이라고 써서 회사 측에서 확인 전화까지 왔을 정도다. 그렇게 셈을 할 줄 몰랐다.
그랬던 내가, 요즘 좀 심란하다. 열정을 쏟았던 청춘의 결과물들을 수치화해 본다. 아니, 숫자 머리가 없으니 잘 되지는 않아서 노력해본다는 말이 맞겠다. 그간에 달려온 피땀은 돈이 되었는가, 뻘짓이었는가 따져 보게 되었단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돈에 관한 인생의 결과물들은 아주 선명하게 잘 보인다. 부린이, 주린이로 살아온 내게 묻는다. 노선을 변경할 것인가? 노선을 변경할 수는 있는가?
마흔 무렵의 여인들과 모여 ‘헛삶’에 관한 배틀을 했다. 그러니까 누가누가 더 헛살았는지, 더 바보 같은지, 더 실속 없는지, 대결하듯 자신의 넋두리를 했다. 커갈 때야 다 엎어지고 무릎 까지고의 날들이지만, 마흔의 중간 점검에서는 과정보다는 현재 손에 쥔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만지작거리게 되더라. 결국, 너나없이 위로를 해야 할 판이다.
S, 너는 가방끈이 길잖니.
K, 너는 커리어 우먼이잖아.
P, 너는 어렵사리 전공 바꾸어서 너만의 길을 찾았잖아.
벗들은 내게, 너는 애들이라도 키웠잖아, 말해줬다.
그렇다. 나는 애 둘을 낳고 몰입 육아만 했다. 8년간. 아이들이 가장 나를 필요로 하는 때를,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러운 시기를 아쉬움 하나 남지 않도록, 진득하게도 붙어살았다. 친정도 멀고, 시댁은 더 멀고, 남편은 3분 거리에 있는 직장에서 밤낮 없었다. 일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근데, 나...... 잘못 산건가?
평소, 엄마에게 속 얘기를 잘하지 않던 내가, 이런저런 일로 내상이 생겨 속 시끄럽던 찰나에 불쑥 내뱉었다. “엄마, 나 헛살은 거 같아.” 엄마는 뭘 그런 소리를 하냐며, 오늘따라 너답지 않다고, 살던 대로 살란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 시절 내내 세상 똑똑한 척은 다 했고, 사회의 공적 가치와 신앙을 쫓아 살겠노라고 호언했다. 그럼에도 내가 재차 헛살았다고 하니, 엄마는 엷게 웃으며 에두르지 않고 강속구를 날렸다. “그래, 너 헛살았어. 그래도 성공했다, 얘! 마흔에 그걸 깨닫고. 엄마는 환갑에 그걸 알았단다.”
나는 진짜로 어릴 적 만화에서나 봤던 피구왕 통키의 불꽃슛을 가슴 정면으로 맞은 듯 뜨끔뜨끔했다. 저 말의 팔 할은 내 책임인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젊은 시절, 나를 최고의 인재로 교육시키겠다는 열정 하나로 등골 빠지게 불구덩이도 건너고 사막도 횡단했으니까. 그렇게 하면, 딸은 우아하고 멋지게, 고생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엄마 자신처럼 힘들게 살지 않길 바라면서. 근데 결과는 ... ...
아, 정말 오늘 같은 날은, 분명히 저주가 아닌데, 등골이 오싹해지는 말이 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딱 너 같은 자식 하나 낳아서 키워봐라.
헛살은 게 아닌가, 회의와 냉소의 마음이 일렁이는 몇 달을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마흔의 생일을 맞았다. 남편과 아들, 딸,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의 손 여덟 개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사십 년 전 오늘, 태어났다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함께 기뻐하며, “사랑하는 우리 엄마~” 노래도 들었다.
8살 아들은 하루 종일 꼼지락 거리더니, 초가을 목련나무 수채화 작품 한 점과 오래도록 모아 온 세뱃돈 중의 노란 신사임당 종이를 꺼내 바쳤다. 와! 통 큰 녀석! 돈 받았다고만 좋아한 거 절대 아니다. 서툴렀을지언정 내가 완전히 틀려먹지는 않았다고 아들이 증명해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몽글거렸다. 덕분에 어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예를 들어 아이가 어릴 적에 함께 만든 추억이나 애착 관계 같은, 무형의 것들만 추구해온 인생이 여러 모로 위로를 받았다.
헛살았다는 마음, 그것은 나의 가장 좋은 힘과 능력을 다 바쳐 무엇인가를 추구했다는 뜻이다. 그 대상은 애인일 수도, 돈일 수도 있고, 배움이나 사회적인 성공이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어머니들은 자식에게 청춘을 바쳤던 것 같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결과들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헛살았다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께, 애쓰셨다고 큰 절 올린다.
그리고, 꼭, 내 인생은 나의 것,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라고 외치며
마이웨이 하시라고, 이제부터라도, 부디 그리하시라고 전하고 싶다.
한 때 내게 가장 소중했던, 희미해진 가치들을 복기해 본다. 언제부턴가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져서 어디다 던져 놓고 살아왔던 '사명'도 다시 찾아보고 주워, 먼지를 털고, 매만져 본다.
두 손을 모아 비나이다 비나이다.
영혼을 울리는 글과 음악을 짓는
영혼의 예술가가 되게 해 주소서.
...
그리고
나의 글이 읽히게 해 주소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게 해 주소서.
나의 글이 팔리게 해 주소서.
많이 팔리게 해 주소서.
이것이야 말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서생의 이상(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두루 갖춘 기도가 아닌가. 헛살지 않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다.
찬란한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