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대해 잘 아는 편이다.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감정이 좋다거나 나쁘다 정도로 뭉뚱그려 말하지 않고, 제법 세세하게 파고들 줄 안다. 부끄럽다, 답답하다, 열등감이 느껴진다, 수치스럽다, 짜증이 난다. 화가 난다. 뚜껑이 열린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폭발할 것 같다. 등. 긍정 혹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낱낱이 회치고 느껴지는 강도의 데시벨을 가늠해본다. 대학생 시절부터 첫아이를 낳을 때까지 십여 년간 꼬박꼬박 싸이월드에 일기를 썼다. 당시에는 방황하는 마음을 어디에라도 쏟아내고자 무작정 썼는데, 돌아보니 그 작업은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내 생각을 명명하고 마음을 살피는 과정이었다.
자꾸자꾸 화가 나 / 큰 북 작은북
엄마가 되고는 하루의 마무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든다거나, 아이를 재우고선 육아 용품을 폭풍 검색했다. 극한 엄마 직업인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았더니, 일기는 없어지고 주기나 월기 정도를 썼다. 아예 글에 손 놓고 살기도...
한 1년 전부터인가, 화가 나면 나의 풍부한 어휘들은 모두 사라지고, 딱 한 단어가 떠올랐다. 아니 숫자라고 해 두겠다. 18. 평생 한 번도 뱉어보지 않았던 이 두 자릿수를 음소거한 채 입모양으로, 몰래, 흉내 내고 나면, 뭔가 응어리진 것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짓눌려 있던 불덩이 감정은 희한하게도 18! 이 한마디로, 한꺼번에 퉁칠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입 험한 청소년들이 시도 때도 XX거리며 속에 것을 화끈하게 쏟아내는구나, 바로 이 청량한 쾌감을 느끼려 하는 거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열여덟 때도 안 하던 욕을,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후 체득했다.
자꾸자꾸 화가 나 / 큰 북 작은북
강하고 쎈 말 한마디가 입 속에 입력되고 나니, 이놈의 혀는 자주 종종 되새김질을 하려 들었다. 인내천을 여러 번 쓴 후에야 간신히 터져 나오던 외침이 이제는 별것도 아닌 일에 불쑥불쑥 머리를 쳐들었다. 마음이 간장종지가 된 것 마냥, 조그마한 짜증에도 속된 단어가 공처럼 튀어올랐다. 집콕 코로나에 아이들과 함께 24시간을 함께 하고 있으니, 입의 수문을 딱 걸어 잠그고 이빨을 성벽 삼아 겨우 막아냈다.
날 잡아서, 어디 대나무 밭에 달려가 마음껏 십팔을 외치면 좀 나아질까. 산 정상에 올라 메아리가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은은히 울려 퍼지다가 돌아오도록 십팔, 십팔, 십팔...... 불러보면 치유가 될까. 하얀 설원에서 뽀얀 입김을 내뿜으며 두 손을 곱게 입에 대고, “오겡끼데스까” 대신 애절한 “시입파알”은 어떨까?
내 삶에는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6장 비극의 정의에 나오는 용어로 ‘정화’라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한편, 몸 안의 불순물을 배설한다는 의학적 술어로도 쓰인다. (두산백과)
쾌감, 희열, 전율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표현이다.
'억압받던 주인공이 명백한 악에게 대항하여 통렬한 복수에 성공한다'는 사이다 상황은 카타르시스와 별개의 개념이다. 카타르시스와 복수는 관계가 없다. 카타르시스는 '해방'이란 말과 더 관계가 있다. (나무위키)
정신 분석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 (네이버)
백과사전의 정의는 내 마음을 딱 떨어지게 정리해줬다. 스스로 어찌 처리할 줄 모르는 마음의 우울과 분노가 불순물처럼 마음에 쌓였다. 본능적으로 화의 파편들을 몸 밖으로 내보내려다 보니 적절한 환풍구를 찾다 입구멍으로 터져 나왔다. 이것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문제는 아니었다. 엄마는 사랑과 헌신으로 제자리를 지키면서도 한 편 해방을 원했다. 자유를 원했다. '엄마'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저 세상 언어들을 갈구했다.
어찌 보면 현대의 '비극'이라 볼 법한 드라마들이 생각났다. 아침 드라마, 일일 드라마, 점찍고 돌아와 기함할 복수를 보여주는 막장 드라마. 개중에는 많은 지탄을 받으면서도 최고의 시청률을 찍은 작품도 있었다. 욕하면서도 끊을 수 없다는 막장극. 생각보다 많은 현대인들이, 아줌마들이 나처럼 카타르시스를 찾아 헤맨 건 아닐까.
햇병아리 같은 욕설로 배설을 했다.
일시적으로 정화된 평온함을 힘입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일기나 다시 써봐야겠다.
한 때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 수호자,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꿈을 소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