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시집가지 마라

미저리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by 김봉란



남편과 투닥거리다 난데없이 딸의 이름을 들먹일 때가 있다. '뿌리(태명)'는 절대 시집 안 보낼 거야. 남자 시키 데려오기만 해 봐. 내가 아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 거야! 영문도 모르는 4살 아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보며, 내 다리에 매달린다. "엄마, 사랑해. 우리 행복하게 살자."

세상 모든 남자의 대변자로 지목된 남편은 능글능글 넘어간다. "왜. 뿌리도 아빠처럼 멋진 사람 만나야지."

나도 막힘없이 대꾸한다. "그러니까. 아빠 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으니 결혼하지 말라고."



강남 엄마 트렌드라 들었다. 딸 시집 안 보내고, 고생 안 시키고, 모녀가 재미지게 여행 다니면서 사는 것. 아직 아이가 어려서 상상이 안 되지만, 딸은 특히, 출가시키기 참으로 아깝고도 아까울 것 같다.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아도, 남편과 나는 가끔 상상한다. 우리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딸은 절대로 누구 주지 말고 데리고 살자고. 미저리 부모 같으니라고.



곧 새 학기가 시작된다. 작년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아들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몇 번 가보지 못한 채 2학년 형님이 되어버렸다. 올 해는 학교를 얼마나 갈 수 있으려나, 걱정하는데 반가운 문자를 받았다. 3월 2일부터 전면 등교란다! 같은 반 엄마들과 만세를 불렀다. 점심까지 먹고 온다니 이 얼마나 은혜로운 소식인가. 9시까지 등교했다가 피아노 학원을 들려 집에 돌아오면 1시 반쯤 된다. 수개월을 아이와 24시간 붙어 지냈는데, 이제 약간의 숨을 돌릴 수 있겠다.


아주 약간의 틈이 생겼다. 만약에 내가 일을 구하고자 한다면 아주 제약이 많은 조건이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쓴 팀 패리스는 그의 다른 저서 제목을 통해 『나는 4시간만 일한다』고 말했다. 그 정도 내공은 되어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건가 보다.


돌봄이라도 신청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자리가 워낙 한정적이라 자격 요건이 있다. 저소득층 가정,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맞벌이 가정. 그래, 나보다 더 어려운 여건의 가정들이 얼마나 많겠나. 방과 후 교실이라도 신청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코로나 때문에 외부 강사 출입이 예민한 시기이니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하늘에서 일이 뚝 떨어지거나, 생계의 위협을 받아 취업 전선에 몰리지 않는 이상, 전업 엄마가 일을 다시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저 위에 세워진 바를 뛰어넘는 것처럼 기예를 선보여야 하는 영역이다. 생계를 위해 뭐라도 해야 했던 한 엄마는 쿠팡 밤샘 일을 구했다. 그 시간이라 가능했다. 아침에 퇴근해서 아이 챙겨 학교 보내고 하교 후에 집에서 잠깐 봐주다가 야간조 출근하면서 아이를 아빠에게 바통 넘겨주듯 인계했다.


아는 사람만 안다. 일을 구하기 위한 면접을 보러 가는 그 순간부터 엄마들의 출발선은 다르다.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 정도의 불편이라면 가벼운 허들일 것 같다. 아이를 둔 엄마들은, 내 아이를 몇 시간 동안 믿을만한 누구에게 맡길까부터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화상 프로그램들이 흔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정말 듣고 싶었던 수업이었는데, 대개의 유명 강의가 그렇듯 서울에서 열렸다. 서울 시민이 아니었던 나는 일단 친정엄마께 양해를 구해 도움을 받기로 한 후, 경기도의 우리 집에서 출발해 1시간 걸려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다시 40분 걸려 수업을 들으러 가곤 했다. 한시적인 기간 동안만, 1주일에 한 번이라 가능했던 동선이었다. 내 돈 주고 내가 간절해서 듣는 강의는 이렇게라도 목마름을 해결했다.


돈을 받고, 아마도 더 자주, 어쩌면 매일, 계속해야 하는 일을 구하는 건,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봐도 답이 잘 안 나온다. 정책을 연구하고 나랏일 하시는 분들도 얼마나 어려운 문제였으면 수조 원을 쏟고도 저출산 문제만은 해결하지 못했을까? 희한한 건 아이 맡기는 문제로 발을 동동 구르는 아빠의 이야기는 잘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 딸이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고 하면, 힘껏 밀어주리라.

내 딸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할 수 있는 모든 지지를 보내리라.

내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가정을 먼저 꾸린다고 한다면,

아마 나는 미저리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온 마음을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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