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미수

by 김봉란

십 대 때 제법 모범적으로 살았다. 욕도 안 했고, 술 담배도 멀리했다. 일탈이라 할만한 것이라면, 학교에서 뚫지 말라는 귀를 뚫거나,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닌 정도. 그런데 글쎄 아기 엄마가 되고서, 비행 청소년처럼 자꾸 집을 나가고 싶어졌다.


첫 번째 시도는 완전한 실패였다. 칼로 물 베는 싸움을 하다 즉흥적으로 집을 나왔다. 운전도 못 하는 내가 야심한 밤에 갈 데가 없었다. 습관처럼 놀이터를 향했다. 아이가 없는데도 내 다리는 김유신의 말처럼 만날 향하던 그곳으로 걸음 한 것이다. 대학생 몇이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네에 앉았다. 항상 아이를 밀어주기만 했는데, 직접 앉아 흔들거려 보니 묘하게 이완이 됐다. 어른에게 높이가 맞지 않은 그네에서 발을 엉거주춤 들었다. 학생들을 의식해 너무 티 나진 않을 정도로만, 앞으로 다리를 뻗었다 뒤로 접었다, 반복했다. 어느새 몸은 공중 높이 솟았다. 학생들의 눈길은 잊었다. 몸을 앞뒤로 젖혀가며 하늘을 거꾸로 올려다봤다. 세상이 뒤집혀 보였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다. 조금 전 싸움 거리가 별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동심의 선물인지, 화가 슬 풀어졌다. 집에 돌아갔다. 가출이라기보다는 환기를 시키고 들어갔다고 해야겠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대가로 싱거운 결말을 맞이했다.

다음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동네를 조금 벗어났다. 풍경이 낯설어질 무렵 마음이 불안해져서 버스에서 내렸다. 건너편에서 도로 집에 돌아가려 했으나 길치, 방향치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끝에 아주 엉뚱한 곳에 도달했다. 걸을수록 미궁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 자존심을 부려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돈이 아까웠다.


세 번째엔 다소 진전이 있었다. 경기도를 벗어나 서울에 입성했다. 육아로 인해, 집안에서 꼼짝 마 생활을 하느라 한동안 가지 못했던 대형서점을 향했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나 실컷 읽으려 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지긋지긋한 육아서를 또 뒤적거리고 있을 무렵,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시아버지의 전화였다. 죄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받으면 분명 아이들을 바꿔보라 하실 게 뻔했다. 드르륵거리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조금 기다려 잠잠해진 핸드폰은, 안심할 새도 없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어머니다. 난감했다. 전화를 받았다. 시장을 보러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거리가 멀어 자주 뵙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첫마디부터 네가 고생이 많아 어쩌냐며 안쓰러워하셨다. 독감 앓는 남편 간호해 주느라 힘들겠다며 위로해 주시는 게 아닌가. 나중에 오라고, 맛있는 거, 해 주시겠다고.


별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약간, 이상하게 머쓱해졌다. 주섬주섬 보던 책들을 제자리에 꽂았다. 금세 지하철을 타고 귀갓길에 올랐다. 그 후 지하철 안에서는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그대로 펼쳐졌다. 남편이 전화를 했다. 굳이 영상통화로 온 걸 보니, 아이들을 내세우는 전략이 틀림없다. 그럴 줄 알았다. 아들이 엄마 언제 오느냐고 해맑게 물었다. 막내는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화면 너머의 눈물바다를 향해, 지하철 안에서 달리기라도 해야 하나.


이번에도 졌네. 졌어! 더 사랑하는 쪽의 호기로운 가출은 이토록 어렵다. 그렇다고 나의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재 진행형 삶이 to be continued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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