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봉란 Dec 12. 2023

정리 안 된 집이 부끄러운가요?

짐정리 일지 D-23,22,21



우리 집에는 손님이 자주 드나든다.


남편이 극 E(외향적) 성향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대접하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요리도 뚝딱뚝딱 쉽게, 대충 했는데도 맛있게 하는 재주를 가져서 지인들을 불러 한 끼 밥 먹이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나도 그렇게 초대받은 사람 중에 하나로, 삼겹살 김치볶음밥을 얻어먹다가 결혼까지 했다.


여기까지만 읽고서, 남편이 요리를 해 준다는 이야기만 읽고 부러워하는 아내들이 혹시 있을까 봐 확실히 해 둘 말이 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한 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다 몰아주시지는 않는 것 같다고. 아니, 그것이 틀림없다고. 미각과 손맛을 타고난 그이가 거쳐간 부엌 바닥은 손걸레질을 꼭 해야 하고, 그가 쓴 냄비와 프라이팬은 꼭 뭔가 눌어붙는 그을음이 생겨 있고, 폭탄 맞은 주방 공간을 치우고 있으면, 내가 이걸 받아먹는 것이 시간과 에너지의 측면에서 과연 이익이 되는 행위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갸우뚱...



남편과 같은 성씨를 가진, 또한 같은 성별을 가진 아들놈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 고 싶어 한다. 엄마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문밖에 서너 명이 대기한 채 오늘 집에서 놀아도 되느냐고 묻는다. 1학년 때부터 시작된 일상이다. 고마운 코로나로 그 발길이 잠시 끊어졌으나, 요즘 다시 문전박대해야 할 상황이 늘었다.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나에게도 기쁨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집안에서 손님초대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나뿐인 듯하다. 아들은 초등학생이라 자기 검열이 없고, 너저분한 방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 학습되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성인인 남편 역시, 곧 당도할 손님이 오기 직전 하이퍼 히스테릭한 상태로 화장실을 치우고 있는 날 보고, "이만하면 됐다, 편하게 해도 된다, 사람들이 그런 거 보지도 않는다",라고 말할 때면 사람들이 다 당신 같지는 않다고 꼭 못 박아 줘야 한다.



애들 키우는 집은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이 없을 것 같지만, 정말 그렇지 않다. 초대를 받아 가본 집들 중 다수는 그 엄마의 평소 깔끔한 성격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곤 했다. (딱 두 집만, '당신이라면 우리 집에 와도 내가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집은 집안에 반려견들이 활보하는데, 개 생리대가 아무렇지 않게 펼쳐져 굴러 다니고 있었다. 내가 제일이라고 자부했는데 처음으로 누군가의 집에 가서 충격을 받았다. 한 집은 나처럼 아이들 즐거움 제일주의가 있어 관리인 없는 키즈카페에 온듯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집 공개에 영 자신 없는 나는 아들 친구 엄마들을 절대로 초대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몇 번 상대의 집에 갔으니 한 번은 오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암묵적인 질서 때문에 예의를 차리느라 "다음번엔 저희 집에서 봬요."라고 억지로 뱉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1주일 후에 약속을 잡았다. 168시간 정도는 정리를 해야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 면역력이 좋지만, 그 집 아이가 왔다가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 됐으니까. 한 번은 D day가 다가왔는데도 도무지 정돈이 안 되어서 돈을 주고 청소 도우미를 몇 시간 고용해 도움을 받은 후 초대했던 일까지 있었다.



손님은 사랑하지만 그날을 위한 청소는 정말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그래서, 내 돈 주고 참여한 온라인 정리정돈, 혹은 미니멀라이프 모임에서 나와 같은 엄마들을 만났다. 동지애를 느꼈다. 얼마나 절박하면 돈을 주고 정리를, 비움을 배우러 왔겠는가. 그 모임에서 우리의 꿈이자 목표 중 하나는, 언제 누가 온다고 해도 당황하지 않을 집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집 앞에서, "잠깐 들어왔다 갈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부럽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의 경우는, 나의 경우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현재의 나는 아직도 손님초대가 쉽지 않다. 그래도, 3년 전보다 많이 발전했다. 이제는 하루, 이틀 전에 고지하면 집안을 공개할 수 있는 레벨이 되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여전히 손님이 오시는 날이면, 어떤 방문은 굳게 잠가 놓기도 하지만 말이다.


48일간의 대장정이 끝나면 아들의 친구들을 좀 더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있기를!




D-23


아들의 방을 뒤집어엎었다. 서랍과 장롱 속의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며 책도 함께 정리 중이다. 굉장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그래도 아들은 자기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서 목적의식을 갖고 노력 중이다.

비포 애프터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비운 것들

D-22

장례식과 병문안 갈 일이 잦다. 건강 제일.

바빴던 날.


D-21


계획대로라면 팬트리를 완벽히 정리했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이라 다음 화까지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바닥이 드러나서 속은 좀 시원하다. 팬트리를 정리할 때 중요한 점은 멀쩡하다고 다 둘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이다. 예전에 1차로 한 번 정리를 했었는데, 더 적극적으로 비워야 한다. 집을 줄여 이사하느라 놓을 자리가 없어 현관 밖에 쌓아둔 짐을 들여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선물 받았는데 먹지 않는 홍삼이나 영양제, 과도하게 많은 장바구니,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한 케이블들, 놀지 않는 보드 게임, 등, 당근에 하루 하나씩 물건을 올려서 소소한 용돈을 벌어봐야겠다.


너희들을 어디에 둘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