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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Dec 19. 2023

짐정리와 다이어트의 공통 3단계

짐정리 일지 D-16,15,14

결혼식에 다녀왔다. 한 시절을 함께 하다 뿔뿔이 흩어진 옛사람들이 아름다운 커플의 혼인예식 덕에 총출동해 모인 자리였다. 나이 조금 먹은 우리들은 호들갑을 떨며, '어쩜 이렇게 그대로니?', ' 하나도 안 변했다.' '더 젊어진 거 같다.'라고 서로서로 마음의 보톡스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약간의 하얀 거짓말을 보탠 것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정말로 외모가 눈에 띄게 변한 형제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신부도 아니고 신랑도 아닌데, 과격한 다이어트를 하고서 호올쭉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8개월 만에 20킬로그램 넘게 뺐다는데, 그러니까 유치원생 하나가 몸에서 빠져나간 격이다.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터라, 나는 걱정이 앞섰다. 살은 빠졌지만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면 안 될 텐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고, 오히려 건강이 좋아졌다고 했다. 덕분에 고혈압도, 당뇨도, 고지혈증도 모두 호전되었다고. 먹던 약도 3개나 줄었다며 핸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일단 꽤 고가의 한약을 먹었다. 한의원에서 지정해 준 식단을 철저하게 지켰으며, 저녁 6시 이후에는 금식, 그리고 많이 걸었다. 3개월 동안 극강의 다이어트 스케줄을 따랐다. 초반에 이미 20 킬로그램을 다 뺐고 이후로는 현상 유지를 위해 애쓰거나 조금씩 더 빼는 중이다. 1년 정도 날씬해진 몸을 지켜낼 때, 신체도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인식한다고, 그가 알려줬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으나, 지금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담담히 말했다.



요즘의 내 생활이 날씬남의 다이어트 초창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에너지 중 대부분을 짐정리에 쓰고 있다. 연말이라 많은 행사들 때문에 착착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에러이지만, 꼭 해내야 하는 일들을 제외한다면 온 신경을 짐정리에 쏟고 있다. 집안에 붙은 군살을, 차근차근 1킬로씩 빼는 것이 아니다. 한꺼번에 확 줄여 놓아야 한다. 짐을 대량으로 방출하고 새로운 환경을 설정해야만 한다. 현재는 반드시 그런 '필사적인'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집안의 급진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고 생활의 동선과 편리한 정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세팅 기간을 거치고 나면 정리 정돈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씨드 머니를 만들 때까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듯,

구애하는 상대에게 매력을 어필할 때 지극 정성을 기울이듯.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을 때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야지!


짐정리와 다이어트의 공통 3단계

1단계 : 필사적인 노력 시기
2단계 : 유지어터로 살아가기
3단계 : 다른 영역의 확장




D-16


지난 화 <완벽주의와 대충주의의 콜라보>에서 시작한 쌓아두고 묵혀둔 이삿짐 정리를 이어가고 있다. 두 가방에 가득히 들어있던 책 중 집안에 들일 것과 버릴 것을 분류했다. 책장이 모자라 팬트리 공간에 어린이 전집을 가지런히 꽂았더니 둘째가 팬트리에 들어가 1시간 동안 책을 보다 나왔다. 정리는 내 아이를 독서하게 만드는구나.


여태껏 살아남은 테이프들을 버렸다. 태지 보이스와 승환 옹, 안녕. 핸드폰으로 들을게요. 티파니 언니도 머라이어 언니도, 사요나라.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던 시절이 생각 나 아쉬운 마음에, 언니들의 아름다운 재킷 사진은 기념으로 한 장씩 찍어 남겼다.





D-15


대형 박스에 담아 놓았던 아이 교구를 당근에 올렸는데  6개월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다. 아까워서 버티다가 과감하게 가격을 내렸다. 짐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신경을 쓰는 것보다 적은 돈을 받고 파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드디어 팔렸다! 새파랗게 젊은 부부가 BMW를 타고 와서 헐값에 내놓은 교구를 사갔다. 아하, BMW는 저래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구나.


다른 물건들도 가격을 낮춰서 빨리 치워버려야겠다.





D-14


현관 앞 짐을 거의 다 치워서 오늘은 완료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변수가 생겼다. 시원한 마무리는 대기시킨 채 이전에 정리했던 곳들을 유지 보수했다.



조금 어질러졌을 때 재빨리 회복시켜줘야 한다. 안 그러면 요요현상처럼 고생고생해서 치운 방들이 말짱 도루묵 되기 쉽다. 이런 곳곳만 정리해 줘도 한결 낫다.





온라인 운동, 다이어트 프로그램 '다노'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노의 이지수 대표는 [습관성형]이란 책을 냈는데,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습관들이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하다. 고칼로리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입맛을 담백하고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입맛으로 성형해야 한다. 움직이기 싫어하던 몸을 운동하고 틈틈이 스트레치 하는 몸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정리가 된 후 깨끗한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건을 무심코 테이플 위에, 화장대 위에 턱턱 올려놓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어린이 집에서 아이들에게 놀고 난 장난감을 제 자리에 두라고 훈련시키듯, 벗은 옷을 빨래 바구니에 바로바로 넣거나, 다시 입을 것은 지정된 자리에 놓아야 한다. 물건을 사용한 후 제자리에 복귀시켜 주면 따로 시간을 내어 크게 정리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우리 집은 온 식구의 정리정돈 습관을 다시 잡기 위해 단체로 어린이집을 다시 다녀야 하나. 48일간의 '필사적인 짐정리' 뒤에는 함께 생활습관을 잡아가는 프로젝트를 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면...



날씬남은 살을 뺀 후 자존감이 상승했다고 했다. 잠시 직장은 쉬어가는 중이었는데, 그럼에도 건강한 삶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렇게 힘들게 20 킬로그램도 뺐는데, 무슨 일인들 못할까! 그 집 아들도 아빠가 더 멋있어졌다며 좋아한다고 했다. 날씬남의 다이어트가 진로를 찾아가는 것에도 확장되어 가길 응원한다.



사람의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기에 나는 요즘 짐 정리 이외에 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도 뒷전이고 건강한 집밥 루틴도 못한다. 하지만 이 기간을 곧 끝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지.



다이어트가, 정리정돈이 목적 자체는 아니니까. 그로 인해 얻게 된 튼튼한 몸과 편안한 집을 디딤돌 삼으려 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삶 속에서 깨끗한 집이 주는 정돈된 힘으로 아이도 키우고 글도 쓰고, 커리어도 다시 시작할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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