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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부부 Saai Jun 24. 2023

4.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 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면접 기회가 오다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2016년, 7년 동안 의류 사업을 해나가던 우리에게 익숙함이 찾아왔고, 사업을 확장하던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해나갈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었다. 그 당시 우리는 꿈이 필요했다. 안일하게 생활하지 않고 활력을 가질 만한 진짜 우리가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즐길 꿈 말이다. 그게 사업이 됐던 다른 일이던 찾아서 목표를 갖고 싶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도전을 하고픈 열정이 생기는 일이 정말 필요했다.


여느 날처럼, 밤, 낮, 새벽 구분 없이 일을 하는 일상이었다. 일을 끝내고 마트에서 사 온 연어와 우리 부부가 애정하는 와인 Kendall Jackson 한 잔을 먹는 그 시간이 유일한 낙이었다. 나는 패션 회사를 1년간 다니고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온 이력이 있다. 그런 나에게 남편과 함께 하는 사업은 나에게 벅찬 보람을 주고 15시간을 종일 일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뿜 뿜 생길 만큼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분명 이 분야에 남들이 다 인정할 만한 재능과 감각을 가진 남편이었지만, 정작 내가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면 그는 일하는 내내 불행해 보였다. 재미없는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의욕이 크게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책임감이 큰 남편은 묵묵히 사업을 최선을 다해서 해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를 심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내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었다. 나는 어쩌면 결혼 후, 그와 사업을 하는 5년 동안 그가 다른 일을 하자고 제안할까 두려웠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는 힘들어도 계속해나가고 싶은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평범한 와인타임에 나는 문득 그에게 물었다. " 심 의상 말고 힘들어도 심이 즐겁게 하고 싶은 다른 게 있어?"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그는 말했다. " 음... 학생들 가르치는 일, 영화 만드는 거"


 사실 그는 가끔 문득문득 묻곤 했었다.

 "심 나 나중에 꼭 영화 한 편 만들고 싶어. 그래도 돼?"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당연히 되지!"라고 망설일 여지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사업을 하면서도 주말 이틀은 꼭 반나절 이상 시간을 내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심플하게 지금 남편이 하고 싶은 일은 영화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 남편에게 되물었다.

"그럼 심, 공부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담 없이 대답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그에게 너무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 너무 딱이다. 애니메이션!" 사실 이 짧은 대화가 그냥 지나칠 수 도 있는 평범한 대화였지만 내가 그에게 물었던 목적은 의미심장했기에, 그가 심플하지만 유일하게 대답한 그 애니메이션 공부가 나에게는 크게 와닿았다.

" 심 그럼 더 늦기 전에 공부해 볼래? 우리나라는 취업에 나이 제한이 많으니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공부해 보는 거 어때? 내가 학교 한번 찾아볼게!" 그가 편히 던진 말에, 내가 옳다쿠나 하고 달려드니 그는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또 '설마 가능하겠어.. 쉽지 않을 텐데'라는 속마음으로 "그래. 한번 찾아봐줘"라고 대답했다.


 모든 일들은 결정하기 까지가 어렵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한 그날, 2016년 1월 이후로 우리 부부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로  7년을 살아온 남편과 내가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걸 찾고자 시작한 생각과 고민이 결국 일을 저질러 버렸다. 남편 나이 34살, 내 나이 31살에 심부부는 꿈을 좇는 길고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날 이후, 꽂히면 가끔 로켓처럼 행동을 쏘아 올리는 나는, 수많은 정보를 검색한 뒤 남편이 갈만한 학교를 리스트업 하고 각 학교의 지원 날짜와 준비할 내용들을 표를 만들어 잘 보이는 냉장고 위에 붙여 두었다. 그리고 몇 주간 둘이 고민한 결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학교 한 군데를 정했다.


 그리고 3월, 꿈과 희망이 가득한 채로 기초 중에 기초인 영어를 공부하고 포트폴리오를 위한 드로잉 스케치북을 샀다. 사실 영어 실력은 기초 중에 기초였고, 여태껏 작업한 작업들은 애니메이션과 직접 관련된 것 들은 없었기에 유학, 우선적으로 학교 진학이 가능한 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불확실한 것은 사업을 하며 매일매일 느끼고 있었던 터라, 우리 부부에게 불확실성은 익숙한 감정이었다. 그런 불확실하지만 설레는 목표를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후, 인생에 전환점이 될 면접 기회를 잡았다. 인생 진짜 모를 일이다.


 꿈은 꿈이고 우리는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3월 어느 날, 우리는 청주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브랜드 팝업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나는 일을 하다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미국, 캐나다 학교들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리스트업 한 학교 중 1순위였던 SCAD에 많은 학생들을 진학시켰고, 학교 인터뷰 기회 정보도 많이 게재되어 있는 한 협회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남편 상황을 설명했더니 협회장이었던 분이 그럼 자기에게 간단한 몇 가지 작품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이메일로 보내봐 달라고 했다. '밑져야 본전인데 보내보지 뭐'라는 심산으로 남편은 그동안 작업했던 패션 일러스트 작업들과 영화 스토리보드, 콘셉트 아트 작업등을 모아 이메일을 보냈다.


 작업물을 확인하셨는지 협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다시 걸려왔고, 가능성이 있고 늦은 나이에 큰 결정 하는데 도와주고 싶다고 하시며, SCAD의 2016년 가을 학기 한국 오픈 면접날 면접을 볼 수 있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분이 재차 강조한 것은 정말 좋은 기회이고 드문 기회이니 꼭 잘 준비해서 오라는 것이었다. 감사한 분 덕분에 면접 기회까지 얻게 된 것이었다. 사실 문의 전화 한 통이 그 면접 기회를 연결해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쉬운 일은 없는 법. 기회는 우연히 갖게 됐지만 출장지 청주에서 달랑 노트북 하나만 갖고 있었던 그는 포트폴리오 제출에, 면접 준비, 에세이 준비에 불가능한 듯 보이는 이 모든 일을 3일 안에 해야만 했다.  
 

 무슨 일이든지 끝은 있고 그 끝을 만드는 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니까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남편은 청주와 안양을 밤낮으로 오가며 밤을 새워가며, 이제껏 해왔던 작업을 정리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나는 그가 쓴 에세이와 학업계획서 번역을 도왔다. 지인에게 1-2번 검수를 부탁했지만 완벽히 고치지는 않았다. 완벽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고, 언어에 완벽하지 않은 그가 에세이에 문법적으로 완벽한 척한다면 거짓 부렁이니까. 이만하면 오해 없이 생각을 전달했겠다 싶을 정도로만 작성했다.


 우리 부부는 사업 짝꿍으로 완벽한 한 팀으로 지내왔기에 모든 일을 분업해서 하는데 익숙해있었다. 하루 같이 느껴지던 짧은 준비시간 5일도 여지없이 우리는 완벽한 분업화였다. 판매 마감을 하고 남편이 안양에 있는 우리 집에 가서 새벽 내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나는 퇴근 후 청주 숙소에 혼자 돌아와 그가 쓴 에세이 번역 검수를 했다. 그리고 그가 밤을 새우고 아침에 청주로 돌아오면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오후에 다시 백화점에 출근해 같이 팝업 행사를 했다. 우리 부부는 5일 동안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초인적인 힘으로 휘몰아치던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무사히 행사도 마치고 학교 지원도 끝냈다.

그렇게 특별한 2016년의 한주가 지나갔다.




illustration by Aiden Lee

달콤 살벌 심부부 미국 유학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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