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면접을 보다
2016년 3월
모든 일들은 결정하기 까지가 어렵다고 한다.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로 7년을 살아온 남편과 내가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걸 찾고자 시작한 생각과 고민이 결국 실행이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한 때, 2016년 5월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역시 쉬운 일은 없는 법. 면접의 기회는 우연히 갖게 됐지만 우리 부부는 하고 있던 의류 사업 때문에 청주 현대백화점에서 팝업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출장지 청주에서 달랑 노트북 하나만 갖고 있었던 남편은 포트폴리오 제출에, 면접 준비, 에세이 준비에 불가능한 듯 보이는 이 모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팝업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그는 면접을 보러 서울로 갔다. 공부하고 싶은 애니메이션과는 거리가 먼 이제껏 한국에서 해왔던 패션 일러스트 작업과 영화 콘셉트아트 작업물로 채워진 포트폴리오였다. 애니메이션과를 지원했으나 관련 작업을 전혀 그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에 결과는 덤덤히 받아들이자는 마음으로 면접을 기다렸다. 1차 면접이 끝나고 나온 그는 바로 자유 드로잉 테스트를 보게 되었다. 자유롭게 10-15분을 드로잉 하고 다시 면접을 보러 들어가면 나올 때 결과를 바로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그가 드로잉 테스트까지 마치고 다시 면접장으로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롤러코스터 타는 심정으로 위안을 했다가, 용기를 가졌다가, 합리화를 시켰다가 오만 가지 생각으로 마음을 조리며 기다렸다. 이건 자식을 면접장에 보낸 부모 마음도 아니고, 남편을 유학 갈 학교 면접장에 보낸 부인 마음이라 인생 처음 맞닥뜨린 생소한 심정이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쫀득 해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마음 한편에는 그를 믿는 마음이 컸기에 은근한 기대감 또한 가득했다. 그러 길 15-20분 뒤 그가 나왔다. 살짝 미소를 띤 채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 나 됐어.”
“엇! 진짜? 축하해! 심!!”
우리는 얼 떨떨해하며 간단한 대화를 마쳤고, 멍한 표정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어떡하지? 서로 집에 도착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토록 고민하고 갈망했던 일인데 막상 닥치니 멍해진 순간이었다. 딱 길 정중앙에 심이랑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가도 할 일이 많고 뒤로 가도 할 일이 많고 그런 상황.
그 순간 또 우선순위를 따지는 나의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 앞, 뒤 모두 일이 많고 책임이 무겁다면 뒤로 가는 것보다는 앞으로 전진이 낫지 않은가? 그래 가자. 어찌 보면 무지 단순하게 우리의 인생의 엄청난 결정을 내렸다. 사업을 하며 짧은 순간 속에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상황에서 다양한 선택을 필요로 하는 일 처리 습관들이, 5년을 해왔던 그 습관이 빛을 발한 것 같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주어져도 항상 어찌 보면 단순한 일들이 많더라. 내 안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습관은 30대까지 여전히 작용했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어느덧 시작의 문에 와 있었다.
illustration by Aiden Lee
달콤 살벌 심부부 미국 유학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