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도시
2016년 10월
목숨 걸고 공부하고 있는 기분을 준 허리케인을 우리는 7년 중 3,4번 만났다. 물론 매해 때가 되면 찾아오시는 허리케인이지만 강한 분들이 몇 있었다. 첫 허리케인은 Savannah였다.
학교에서 전체 이메일이 왔다.
‘헤리케인이 오고 있다. 업데이트를 계속해줄 테니 이메일과 날씨 속보를 항상 주시해라, 수업은 허리케인이 무사히 지나갈 때까지 휴강이다’
그리고 매시간마다 뉴스에서 허리케인 예상 경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장마 뉴스 보는 듯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또 하루, 혹은 2-3일 정도 지나고 학교에서 또 이메일이 왔다. ‘허리케인이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다. ㅇ일 ㅇ시쯤 Savannah가 영향권에 들 것이니 필수적으로 대피해라’ 즉 집을 떠나서 허리케인 경로가 지나가지 않는 마을로 빨리 이동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Savannah에 있는 카운티들에 전체적으로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뭐지? 진짜야? 가야 돼? 우리 위험해? 의무라고? 그런 게 어딨어?
반신반의 의구심을 품고 학교에서 오는 이메일을 주시하고 있는데, 다음에 온 내용이 현실을 즉시 하게 했다.
‘스쿨버스가 시청에서 몇 시에 애틀랜타 캠퍼스로 떠날 것이니 간단한 짐을 준비해서 타라’
애틀랜타 캠퍼스로 이동해서 학교에서 간이침대 쭉 깔아서 재워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차가 없거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많기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 주려는 것이었다.
그래도 못 믿겠는 이 긴박한 상황을 한번 더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Gary 할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내 지금 상황이 어떤지, 진짜 대피 야한지에 대해 여쭤보았다. Gary는 집에 발전기도 있고 하여 다른 지역으로 대피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전기가 끊기고 마트며 주유소며 다 운영을 하지 않을 것이니 생필품을 준비를 해 놓으라고 했다. 그래서 뒤늦게 마트에 가보니 물은 거의 동이 나 있었고 초도 구하기 어렵고 발전기는 비싸고, 차가 있지 않아 제약도 많았다. 결국 우리는 우선 음식, 전기, 인터넷 모두 해결이 될 애틀랜타 호텔에서 며칠 묵기로 정하고 바로 짐을 싸고, 유리창이 깨질 것을 대비해 유리창에서 벗어나게 짐들을 벽 쪽으로 다 쌓아두고, 귀중품과 간단한 짐을 챙겨 바로 하우스 메이트들과 애틀랜타로 이동했다.
우리는 차를 렌트해서 이동했지만 차가 없는 친구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애틀랜타 캠퍼스로 이동했다. 애틀랜타로 이동했던 친구가 보내준 스쿨버스 내부 사진을 보고 느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간식들이 들어 있는 누런 봉투가 버스 의자 위에 한 개씩 놓여 있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어딘가 예스러움도 묻어나는 참으로 미국 스러운 모습이었다.
일단 어리바리한 상태로 도로에 나왔는데 대피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안도와 신기함과 갑자기 여행이 시작됐다는 철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애틀랜타로 향했다. 허리케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대피하고 있는 이 기막힌 상황이 얼떨떨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현실을 즉시 하게 되었다. 도로 위 긴 대피 행렬뿐 아니라 묵을 숙소를 예약하려는데 우리만 대피하는 것이 아니니 당연히 거의 다 만실인 상황.
‘아 이거 진짜구나’ 당장 오늘 잘 곳을 찾다 보니 피부로 와닿았다.
다행히 다운타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외곽에 위치한 호텔로 예약을 하고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동안 하루를 지냈다. 이때 에어비앤비도 검색해 보았는데, 대피를 하고 있는 지역 사람들을 위해 개인의 집을 무료로 대피처로 제공해 주겠다는 집주인들이 많았다. 집들이 굉장히 커서 여유가 있어서 숙박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대피하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이었다. 베풀어야 하고 나눠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미국 사회에 지금까지도 가끔 놀라고 문득 존경스러움도 생기는 부분이다. 물론 이 점을 전체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7년 동안 변함없이 느끼고 있다.
그렇게 호텔에서 대피 첫날을 보내고 있는데 Gary 할아버지에게 문자가 왔다.
‘잘 도착했니? 사바나는 허리케인이 지나가며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고 전기가 끊겼는데 우리 집을 지나가다 확인해 보니 너희 집은 괜찮은 것 같아’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우리 집을 지나가며 확인해 주시다니. 역시 사람 인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Gary는 천사할아버지 였구나 역시. 그렇게 우리는 무탈하게 호텔에서 전기와 인터넷 모두 이용하며 하루를 보냈다.
요란하고 부산스럽게 대피하는 하루를 보내고 다행히 다음 날 아침, 허리케인이 무사히 애틀랜타를 지나 더 북쪽으로 올라간 것을 확인한 뒤 우리는 사바나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루 만에 다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대피 안 해도 됐었나?’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며 사바나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부터 허리케인의 위력은 곳곳에서 느껴졌다. 아주 오래된 울창했던 나무들이 꺾여 쓰러져 있었고 도로에는 나뭇잎과 모래, 잔가지 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기는 끊겨 신호등이 꺼져 있었고 물이 채 빠져나가지 못해 물웅덩이가 곳곳에 있었다. 대피한 사람들도 돌아오지 않아 인적도 없는 폐허가 된 유령 도시 같았다. 아찔했다.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하루 만에 이 많은 것들을 무너뜨리다니.
유령도시 같은 마을을 지나 집에 도착했다. 냉장고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가스레인지에 있는 전자시계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전기가 끊기긴 했었구나.’
침수가 된 집들도 많아 보였는데 우리 집은 좀 높이 위치해 있었고 집 앞 도로가 지하도 처럼 되어 있었기에 물이 다 그리로 빠져나가서 우리 집에는 영향이 없었던 것 같았다. 다행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방정리를 했다.
그렇게 허리케인이 지나갔고, 사람들이 다시 Savannah로 돌아왔다. 남편 학교 수업도 다시 시작되었고 그렇게 학생들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 복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날씨는 더없이 맑고 청명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어보니 학교에서 일하던 시큐어리티 가드였던 분이 허리케인으로 안타깝게 하늘나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다른 곳으로 대피를 하지 않고 Savannah 집에 있었는데 집 옆에 있던 커다란 나무가 허리케인이 지나가며 뽑혀서 그분 집으로 쓰러졌고, 마침 집에 있던 그분이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안타깝고 마음이 먹먹했다.
자연은 하루 만에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것들을 무너뜨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온했던 마을이 불과 하루 만에 유령도시가 되다니… 자연재해가 무서운 것은 그 파괴력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인데 경험하고 직접 눈으로 그 파괴력을 확인하니 너무 많은 발전이 달갑지 않아 졌다. 인간이 많은 것을 만들면 만들수록 생태계는 혼란이 생기고, 결국 자연은 화가 난 채 인간에게 경고를 주며 인간의 탐욕을 제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아찔하고 무서웠던 2016년 10월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 허리케인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또… 왔다… 다르게...
달콤 살벌 심부부 미국 유학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