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부부 Saai Jul 07. 2023

14. 꿈꾸려 왔어요

실패라 쓰고 경험이라 읽어보자

  31살, 34살에 7년간 함께 해오던 의류 사업을 접고 남편 유학을 정하게 된 이유는 꿈을 갖고 살고 싶어서였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실패가 있었는지 다 담을 수 없지만 그 수많은 실패들 중 몇 안되지만 힘이 되었던 값진 경험이 있었다.


  전 세계 애니메이션 공부를 하는 모든 학생들이 동경하듯 심도 애니메이션 공부를 시작한 2016년부터 매해 디즈니, 픽사에 인턴이나 트레이니 과정을 지원했었다. 인턴은 학생 때만 지원해 볼 수 있기에 2018,2019년 2번, 트레이니는 졸업 후 일을 하고 있는 3년 차 졸업생들까지 지원할 수 있어서 2020,2021년 2번 지원했었다. 남편은 매번 실패의 고배를 마셨지만 계속 실력을 채우고 꿈을 꾸고 도전해 왔다.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 뭐가 부족한지 어떻게 바꿀지 고민했다. 넘어질 듯 절대 안 넘어지는 오뚝이 같았다.


  2018년 디즈니 인턴을 배경, 콘셉트 등을 디자인하고 그려내는 아티스트 분야인 visual development artist 인턴으로 지원했을 당시에, 물론 최종 떨어지긴 했지만 자동 거절 이메일이 아닌 디즈니 리쿠르터에게 짧은 피드백이 담긴 이메일을 받았었다.


'너의 작업을 우리와 공유해 줘서 고마워. 이제 해당 직책이 종료되었음을 알려 주게 되어 유감이야. 피드백을 주면 너의 그림 실력과 조명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네가 계속해서 매력과 영화적 스토리텔링을 발전시켜 나가는 걸 보고 싶어.'


  물론 다른 지원자들에게도 이렇게 답을 해주는 경우가 있겠지만, 이 이메일을 받았을 때 우리가 느낀 설렘을 잊을 수가 없다. 분명 탈락인데 탈락보다는 응원을 받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있었을 텐데 굳이 시간을 내어 타이핑을 해서 이메일을 보내 주다니. 이렇게 피드백을 주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계속 꿈을 가져볼 수 있겠구나 하는 설렘과 또 한 번 힘내서 가보라는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 길 잘 시작했구나! 가보자! 30대 중반 심부부를 통째로 몽글몽글 설레게 한 날이었다.




  그렇게 또 3년이 흘렀고, 그림을 잘 그리는 심은 한국에서 했던 일러스트나 콘셉트디자인의 연장선으로 Visual Development를 계속 준비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새롭게 익힌 Animation 애니메이팅 기술을 발전시켜 가면서 결국 졸업 무렵에 3D 애니메이터로 방향을 잡아 준비했고. 졸업 후 게임회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21년 가을 디즈니 애니메이션 트레이니 공고가 떴다. 심은 항상 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공고가 뜨는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었고, 2021년은 애증의 미국 취업비자가 정해지는 시기 이기도 했기에 제대로 릴을 준비해서 지원할 여유가 없었다. 여기서 릴이란 애니메이터가 본인 애니메이팅 작업물을 모아둔 포트폴리오용 영상을 말한다.


  그렇게 6월 말 조금 더 다듬은 릴로 지원을 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8월이 되었다. 지원서 상태에 진전이 없이 언더 리뷰 상태로 1개월이 흘렀기에 심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역시 아직 부족하구나 생각하며 어떤 부분을 더 연습해야 할지 점검을 했다.


  그러면서 나의 오뚝이 같은 남편은 순간 디즈니 지원한 것을 잊어버리고는 무심결에 지원할 때 썼던 애니메이션 릴을 삭제해 버린 것이었다. 릴을 삭제하면 그 온라인 링크도 함께 사라지기에 다시 복원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릴을 지운 다음날 나는 문득 남편의 디즈니 지원서를 보다 애니메이션 릴 링크를 눌러보게 되었고 링크가 삭제된 것을 발견했다. 거실에서 일하고 있던 심에게 소리쳤다.


 “심 설마 지웠어? 릴?”

 “응, 마음에 안 들어서. 왜?”

 “그거 디즈니지원할 때 썼던 건데 어떡할 거야? 휴…”


  그렇게 남편은 스스로에게 너무 놀라고 나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래 어차피 지원자 많으니까 다 보지도 않을 거야..' 하며 마음을 다독이는 척했다.


  황당한 남편의 행동에 놀라고 허탈한 마음을 다독이며 우리 둘은 술 한잔 아니 한병의 힘을 빌려 긴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여기 온 목적이 디즈니를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꾸러 온 것이었다는 것이었다. 재미나게 할 수 있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을 하며 꿈을 꾸며 또 한 해를 살아가는 그런 인생을 바랐었다.


  죽기 전에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싶다던 남편의 꿈, 글 쓰는 것 좋아하는 나는 책 한편을 쓸 수 있을 만한 스토리 가득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꿈. 우리 둘 꿈을 함께 공유하며 같이 이뤄나갈 한 배를 탄 짝꿍이기에 그때 그 초심으로 우리 스토리를 담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꿈, 목표를 이야기하고 계획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애니메이션 계획을 얘기하며 주말이 지나갔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풍파에 맞서며 우리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이게 웬일인가… 디즈니 리쿠르터에게 이메일이 온 것이다. 제목은 your reel. 왓?


'Aug 2, 2021

헤이 에이든!


디즈니 애니메이션 연수생 프로그램에 지원해 줘서 고마워! 우리 애니메이션 팀은 아직 고려 대상 릴을 검토하는 과정에 있고 네가 고려 대상으로 제공한 이전 링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어. 네가 여전히 가을 연습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면 애니메이션 리더십과 다시 공유할 수 있는 업데이트된 링크를 전달해 줄래?'


  거절 이메일이 아니고 이전에 제출한 릴 링크가 작동을 안 하니, 없어진 릴 링크를 새 링크로 업데이트해 달라는 이메일이었다.


  이게 뭐지.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작동 안 한다고 그걸 다시 보려고 주소를 업데이트를 해달라니,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서 낙담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디즈니 지원에 큰 실수를 하고 자포자기하고 있었던 남편에게 이런 기회가 오다니. 믿기지 않았다.


  남편은 지체 없이 바로 그대로 업데이트 후 다시 링크를 보냈고, 리쿠르터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진짜 보긴 보는구나. 지원자 많아서 그냥 안 보고 넘어가거나 정말 괜찮은 릴이 아니면 보여줄 기회도 없을 꺼라 생각했는데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이 날부터 김칫국 마시기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 다니고 있던 회사와 H1B  미국 취업비자 승인이 되고 9월이 되었다. 9월 2일 디즈니 지원서 상태가 under review에서 in consideration  고려 중 상태로 바뀌었다. 김칫국 시원하게 두 사발 마셔 보자면 원래 언더 리뷰 상태에서 바로 no longer consideration ‘더 이상 고려하지 않음’으로 매번 바뀌었었기에 고려 중 상태로 바뀐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물론 다음에 interview 스텝으로 넘어가지 않고 바로 ‘더 이상 고려하지 않음’으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만 느낄 수 있는 쫀득함이니 김칫국은 많이 마셔두었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고려  상태이면 어떻게 다음 과정이 되는지, 언제쯤 결과가 나오는지 등등. 그런데 정말 정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해에 디즈니 트레이니를 한 파트에 3-5명 정도 뽑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3명이 리뷰를 쓰지 않는 이상 정보 찾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10년간 합격자를 모아도 30명 수준이니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또 기다리고 기다려보는 걸로.


  그렇게 쫀득한 시간이 흘렀고 마치 합격 수기인 듯 장황한 일기였지만 결론적으로는 합격하지 못했다. 실제 디즈니가 릴을 확인하고 떨어진 것이라 더 현실적이고 아픈 경험이었다. 그래도 값진 실패이고 남기고 싶은 감정과 이야기들이기에 가감 없이 기록해 두었다.

  

  실패는 성장의 발판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전해야 실패도 해보는 것인데 도전해보고 싶은일이 없다면 아무 쓸모없는 말이다. 최소한의 조건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실패, 좌절도 해볼 수 있고 다시 일어날 힘도 키워볼 수 있다. 다 해볼 수 있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이 아프고 값진 경험이 언젠가 또 다른 시작점의 발판이 되길 바라본다.




달콤 살벌 심부부 미국 유학 생활

illustration by Aiden Lee


매거진의 이전글 13. 허리케인 Matthew가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