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는 회사원 남편
미국 유학을 결정하고 시작할 당시에는 취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우리의 평생 운이 한 타이밍에 모아져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실력보다는 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공부는 논문이 없는 MA 대학원 과정이었고 실제 공부는 1.5년이었다. 영어를 사과 스펠링도 헷갈리는 상태에서 시작한 유학이기에 어학을 1년 했고 총 2.5년 만에 졸업을 하는 상황. 한국에서 하던 패션디자인 전공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으로 전공을 바꾸어 입학한 거라 짧은 그 2.5년 만에 실력도 채워야 하는 상황이니 머 어찌 보면 취업이 불가능하다 생각한 게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길에 들어설 용기가 있었다는 것이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심이 미국 대학원 최종 합격을 하고 나서 추천서가 1장은 필요하다고 하여 졸업한 학교 전공 교수님께 찾아가서 추천서를 부탁드렸더니 ‘가서 패션디자인 공부하고 와’ 이러시면서 추천서를 주셨다. 패션디자이너로 사업도 잘하고 있었던 에이스 제자가 갑자기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러 미국에 간다니 적잖이 당황하셨던 거다. 그렇게 받아온 추천서로 남편은 신나게 애니메이션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2.5년 동안 단기간에 남편이 실력을 만들려면 학교 공부로는 부족해 보였다. 한 쿼터에 2-3개 정도 수업뿐이고 그렇게 3 쿼터를 하면 과정이 끝이 나는 상황. 6개, 최대 9개의 수업으로 취업할 실력을 만든다는 것은 아무리 내가 1000% 믿는 책임감 왕 서방이지만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색에 들어갔다.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공모전, 인턴에 참여하는 것과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자체 검색, 분석이 끝났으니 심에게 브리핑을 했고 심도 격하게 공감하며 그 두 가지를 학교 수업과 병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공모전과 인턴을 검색해서 리스트업 해 놓으면 심이 골라서 작품을 준비하고 제출했고, 동시에 3D 애니메이션을 배우는 실시간 온라인 강의 AnimSchool을 찾아 시험을 보고 심 레벨에 맞는 반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온라인 스쿨도 최종 수료까지 1년 과정이었다. 그렇게 대학원 수업과 온라인 강의, 그리고 공모전, 인턴을 위한 작품까지 4가지를 동시에 하며 2.5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심은 정말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그림 그리고 애니메이션만 했다.
나의 역할은 이 스펙터클한 스케줄에 남편과 내가 아프면 안 되기에, 그리고 수입이 없는 상태니 돈도 아껴야 해서 최선을 다해 집밥을 해주고 영양제를 챙기는 것이었다. 심이 공부와 작품에 집중만 할 수 있게 나머지 집계약, 공과금, 차 관련 문제들, 비자, 세금 보고 등등 나머지 모두는 내 역할이었다.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올인하고 있는 남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나는 남편의 재능에 투자한 투자자이자 비서이자 매니저이기도 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매니저역할을 하고 매해 겨울 남편을 미국에 두고 나는 2-3달 정도 도라지청 같은 달면서도 쓴 한국 솔로 여행을 가졌다. 왜 달면서도 쓴 여행인지는 또 한 보따리 이야기가 나오기에 단독 이야기로 풀어야겠다.
그렇게 철저한 분업으로 2.5년을 보냈고 우주의 운이 심의 졸업 시기에 몰리며 천운으로 졸업 전에 취업 오퍼를 받고 기뻐 날아갈 듯한 짜릿한 마음으로 행복한 졸업 시기를 보냈다. 취업이 마치 한방에 된 것 같지만 그 이전에 70개 가까운 미국, 캐나다 회사에 지원을 했고 자동 거절 이메일을 수도 없이 받아봤다. 그런데 실제 취업이 된 경로가 희한했다. 절실함이 저 하늘에 닿아서 마치 기회를 턱 연결시켜 준 기분.
경로는 이러하다. 말했듯 우리는 절실했고, 남편은 더 절실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왔기에 사회가 얼마나 냉정한지 문턱이 높은지 알고 있어서 더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옆에서 부담스럽게 도와주고 있고 눈총을 매일 쏘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 절실함을 한태 모아 졸업 마지막 쿼터에 전공교수님과 매주 20분 미팅을 잡아 계속 개인적으로 애니메이팅 한 것을 피드백을 받고 고치고, 다시 찾아가고 고치고 다시 찾아가고 반복했다. 나중에 교수님이 다른 친구들도 미팅 신청할 수 있게 횟수를 조금 줄여 달라고 말씀하셨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남편은 절실했다.
그 과정에서 교수님이 애니메이터이자 한 게임회사의 오너였던 A의 박람회에서 했던 강의 링크를 알려 주셨고 남편은 집에 돌아와 그분 강의 영상을 보고 반하게 된다. 아바타 1을 리드 애니메이터로 작업했던 분이었고 그분의 실력과 카리스마 모든 것에 반한 심은 나에게도 강의를 보여 주었다. 나는 강의를 본 후 남편 Linkedin에서 그분을 찾아 커넥션 신청을 했고 며칠 후 그분이 커넥션을 받아주셨다.
그리고 바로 ‘띠링’ 메시지 팝업이 떴다. 그분 A의 메시지였다. 이게 모지…
“심.. 내가 심 Linkedin에서 A 한테 커넥션 요청했는데 받아주셨는데… 지금 메시지가 왔어 어뜩해?”
남편이 놀라면서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안녕 에이든! 나 너의 작업이 마음에 들어, 정말 멋지더라, 우리 회사를 위해 애니메이션 테스트를 하는 것에 관심 있니?’
와… 당연하지요.. 당연히 해야지요.. 아니 이게 웬일.. 심이 반한 A가 심 릴이 마음에 든다니.. 직접 메시지를 보내주다니. 심은 며칠을 불태우며 애니메이팅을 했고 마지막 제출 전 테스트 중간 점검 날짜에 작업물을 보냈다. 사실 며칠 남았기에 중간에 보내고 피드백을 한번 받고 최종 마무리해서 마지막에 제출하는 과정이었는데 심은 중간 피드백받는 날 통과해서 일찍 테스트가 끝났다. 그동안의 2.5년 간의 모든 노력이 엄청난 운을 만나 큰 산을 넘은 기분이었다. 그날 우리는 그동안 가고 싶지만 꾹꾹 눌러 참아왔던 비싸 보이는 동네 초밥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며칠 후 오너 A와 슈퍼바이저들과 화상 면접을 했고 최종 오퍼를 받았다. 전공 교수님한테도 심에게 온 이 엄청난 기회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 후 심은 교수님께 문의해 가며 연봉협상을 마쳤다. 그렇게 첫 취업 전쟁이 끝이 났고 남편이 드디어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는 회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난 드디어 결혼 8년 만에 회사원 남편을 둔 주부로써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모든 일이 처음이 지나면 익숙해지지만 미국에서 취업을 하고 나서는 쭉 매일이 전쟁이었다. 나는 조용히 내일 심이 잘려도 바로 지원할 수 있게 매일 구인 공고를 확인했고, 추 후 있을 취업비자 로또에 당첨이 안될 경우를 대비해 내가 지원할 캐나다 학교, 캐나다 영주권 서류를 다운로드하여 작성하며 3년을 보냈다.
그렇게 미국 첫 취업 전쟁이 끝난 듯했다.
자, 다음 전쟁 오너라!
달콤 살벌 심부부 미국 유학 생활
illustration by Aide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