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이루어 내는 것
책장에 빼곡히 채워져 있던 동화는 사람을 설레게 만든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부터 잠자리에서 엄마의 노곤한 목소리로 듣는 동화 속 주인공들은 항상 빛이 났고 그 기억은 평생 내게 녹여져 있기 때문이다. 꿈자리를 함께 하던 동화 속 주인공은 용을 용감히 무찌르는 용맹함을 갖췄고, 또 다른 주인공은 반짝반짝 빛나는 성에 살고 있었다. 그러한 동화 속 주인공들과 함께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동화를 꿈꾸며 커갔다.
책장에서 손이 닿지 않는 책이 없을 나이가 될 때쯤, 동화 속 신나는 세상들은 에디터에게 희미해졌다. 흐려진 기억이 되어가는 동화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현실에서 동화 같은 일은 존재하지 않는 꿈같은 것이라고 결론지어졌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도 자꾸만 동화 속 인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옛날의 동화와 같이 타고난 힘을 발휘하지도, 멋진 성이 배경이지도 않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동화를 써 내려가는 일들이 현실에서 시작되었다.
01. 동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만 사랑받을까? – ‘스트릿 우먼 파이터’
어린 시절 읽던 동화 속에서는 주인공의 이야기만 빼곡했다.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가려지는 일 또한 없었다. 신데렐라가 재투성이의 모습이더라도, 모든 사건의 중심은 신데렐라였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신데렐라의 행복을 위해 마련된 장치에 불과했다. 신데렐라의 청소를 도와주던 생쥐들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동화 속 페이지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페이지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에 관한 문장만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어느 곳에 서 있어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이야기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제작 의도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릿 댄스 크루를 찾기 위한 리얼리티 서바이벌’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등장하는 댄서들의 얼굴은 대중들에게 낯설었다. 댄서로서 화려한 경력을 가졌지만, 가수의 뒷면에 가려져 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댄서들의 등장에 열광했다. 그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알고, 그를 표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 누구보다 빛이 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챘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속에는 대중 투표라는 것이 존재했다. 사람들이 주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해야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팽배했다. 이때 홀리뱅의 수장이었던 허니제이는 "예상 아예 못 했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자고 준비했던 무대니까 멘탈을 잘 잡자. 이렇게 된 거 ‘너희는 못 따라 해. 우리는 진짜 멋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자. 멋있게 그냥 하면 된다”라는 말을 한다. 결국 홀리뱅은 우승팀이란 타이틀까지 갖게 된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주목받는 요소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들이 잘하는 것을 할수록, 사람들은 그들이 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이 과거에 출연했던 무대의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각 크루는 지향하는 댄스 스타일도, 외모도, 성격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줄수록 각자 다른 이유로 사랑받았다. 표현하는 메시지가 멋있어서, 또는 강한 박자감이 좋아서. 각 팀이 사랑받는 이유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았다. 현실의 동화는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살아가야 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 자체가 새로운 동화가 되는 것이다.
02. 선천적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할까? – ‘이슬아 작가’
아서왕의 신화를 생각해 보자. 어느 날 교회에 네모난 바위와 두꺼운 철판이 나타났다. 그 중앙에는 아름다운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그 검에는 '이 검을 뽑는 자야말로 브리튼의 왕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 검을 뽑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검을 뽑는 사람은 바로 선택받은 자였다. 그자가 더 큰 노력을 해서도,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선택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동화는 태생적으로 선택을 받아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새겨 주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도 기회를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기회를 만든 성공적인 동화가 존재했다. 바로 ‘이슬아 작가’의 이야기다. 이슬아 작가는 대한민국의 작가이며, 헤엄 출판사의 설립자이자 대표이다. 그녀의 동화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2018년에 학자금 대출의 상환과 함께 돈이 필요해졌다. 동료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녀는 ‘일간 이슬아’라는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서비스는 그녀의 글을 원하는 독자에게 본인이 쓴 글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형태였다. 지금까지의 글의 형태와는 다른 모양인 ‘에세이 구독 서비스’이었다. 출판사의 이름으로 책이 나온 것도,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에도 실리지 않은 글이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본인이 쓴 글을 이메일로 보내주고, 구독료를 받는 형태는 처음이었다. 기회를 부여받아야 세상에 자신의 글을 판매할 수 있던 과거를 뒤집었다. 작가 본인이 글을 쓰고 홍보하고 판매하였다. 서비스의 기간은 한 달, 구독료는 만 원. 신청하면 즉시 글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메일로 한 달에 20편의 글을 받아 보게 되는 창조된 서비스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매체에 의한 수정 없이 만난 그녀의 글은 솔직하고 새로웠다. 그 글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직접 작가에게 전달하였다. 칭찬을 전달할 수도, 유의미한 지적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한 칭찬과 지적을 담아 바뀌는 흐름을 독자는 매일매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슬아 작가는 글을 직접 발행하여 보낸다는 새로운 서비스를 구축해 냈다. 만약 기존의 동화처럼, 정해진 자만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구조라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현실의 동화에서는 자신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정형화되지 않은 방법으로 자신만의 성공을 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의 동화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03. 촌스러움은 덜어져야 하는 요소인가? – ‘아무개씨’
동화 속에서 투박함, 촌스러움은 주인공을 가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흙투성이의 주인공이 빛나기 위해서 흙을 털어내고 말끔히 씻어야 하곤 했다. ‘미운 오리 새끼’에서 다른 새끼 오리와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운 오리 새끼는 천대받는다. 미운 오리 새끼가 행복해지는 순간은 그 투박함에서 벗어나 백조가 되는 순간이다. 결국 투박함과 촌스러움은 덜어져야 하는 요소로만 작용한 것이다. 또한 ‘아무개’는 말 그대로 이름을 알 수 없거나, 공개되지 않은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이런 이름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동화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으로 지어지는 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백설 공주, 라푼젤, 미녀와 야수 등등. 지금 바로 생각나는 동화를 나열해 볼 때 모두가 그렇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름을 사용하고, 덜어져야 하는 촌스러움이 아이덴티티로 작용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아무개씨’이다. 아무개씨를 설명하는 말은 ‘촌스러워서 좋은 것들을 만듭니다’이다. 아무개씨가 만드는 문구 제품들은 이 문구를 오롯이 닮았다. 대표적으로 몇 번이나 재입고가 진행되고 있는 ‘벽걸이 왕달력’은 할머니 집에서 보던 달력 그 자체이다. 그 모양은 촌스럽지만, 오히려 그 점이 귀엽고 실용적이라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큼직하고 넓은 칸들로 채워진 달력은 집안 어디서도 잘 보이는 장점으로 여겨진다. 어떻게 이런 촌스러움이 사랑받는 것일까? 아무개씨의 시작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이해된다. 아무개씨의 시작은 ‘아무개 수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브랜드 제작자인 강세아는 한국만의 촌스러움과 B급 감성에 대해 연구했다
촌스러움이 기피해야 하는 요소가 아닌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트로 다가가게 된다. 촌스러워서 잊혀야 했던 것들과 달리 촌스러웠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다. 오히려 촌스럽다는 점을 더 부각하려는 노력이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냈다. 아무개씨의 문구 위에는 동화 속 기피되던 특징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현실의 동화 속에서는 촌스러움이 개성이란 단어로 바뀌었다. 그와 함께 남들과 다른 특별한 점으로 작용하고 사랑받는 모습이 되었다.
04. 특별한 계기와 극복하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을까? – ‘저스트 두 잇(JUST DO IT) 광고 캠페인’
https://youtu.be/0yO7xLAGugQ?si=R9v9nTRtrKjM5R2f
동화 속 주인공들은 항상 큰일이 닥쳐야 움직이곤 했다. 용이 나타나 왕국을 위협하거나, 주인공에게 나라를 구하라는 계시가 내려와야지만 사람들은 움직였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속에서도 마녀의 저주가 내려지고, 성에 장미 덩굴이 덮어진 후에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한 이 위기를 극복하는 사람은 젊고 용맹함을 갖춘 남자이곤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움직임은 나를 위해서도 일어난다. 나이키에서 저스트 두 잇(JUST DO IT) 광고 캠페인이 그러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1988년 광고 대행사 위든 앤 케네디(Wieden&Kennedy)가 제작한 이 캠페인은 나이와 성별, 건강 상태 등을 떠나 모든 사람과 스포츠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화하길 원했던 나이키의 의도를 반영했다. ‘저스트 두 잇’ 캠페인의 첫 광고는 여든 살의 할아버지 월트 스택(Walt Stack)이 출연한 영상이다. 짧은 30초 동안 이른 아침에 조깅을 즐기는 여든 살 할아버지의 건강함과 유머러스한 모습이 이어진다. 광고 끝에는 ‘저스트 두 잇’이라는 문구를 보여주면서, 나이를 넘어선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다. 광고 영상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우리 곁에는 많은 도전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넘어진다. 그들에게 동화처럼 특별한 계기는 없다. 오직 자신을 위해서라는 목표가 있는 것이다. 또한 젊을 필요도, 성별이 남성일 필요도 없다. 누구든 어떤 특징을 갖고 있든 원한다면 움직일 수 있고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어린 시절 속 꿈자리를 지켜 주던 동화와 현실의 동화는 분명 달랐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동화의 모양이 아니라 슬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힘든 시간 속 나를 일으켜 주는 건 현실의 동화였다. 앞서 쓰인 현실의 동화는 모두 주체적인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주목해 주지 않아도, 남들과 다르더라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덜어져야 하는 요소라고 손가락질받아도 모두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결국 현실 속 평범한 나도, 어려움에 쓰러져 지친 나도 노력을 통해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준다. 현실 속에서는 하나의 획일적인 모양의 동화가 정해져 있지 않다. 목표가 어떠한 것이든, 이루어진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충분히 해피엔딩을 맞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결국 해피엔딩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이루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양으로 세상에 내비쳐도, 스스로가 정의 내린 해피엔딩은 해피엔딩이라는 글자와 함께 마무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