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50대인 그분을 처음 봤을 때, 개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제가 했던 말은,
“복수(腹水: 배에 물이 차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가 심하면 함부로 약을 쓸 수 없습니다. 대신에 암에는 온열치료인 뜸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였습니다.
임산부만큼 부풀어있는 배에, 피부색은 활기 없는 노란빛을 띠었던 그분은 간이식을 안 할 경우 죽는다는 말과 함께 뜸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동네에 수많은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가보고, 좋다는 치료는 다 해봤지만, 아시겠지만 암은 암입니다. 저라고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식 순서는 잡히긴 했어요. 그런데 복수가 너무 차서 그거 때문에 이식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환자분은 그렇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한의원에서 뜨는 뜸이야 몇 천 원 정도밖에 들지 않고, 집도 가깝고, 한 번 치료를 해보니 환자분도 따뜻해서 좋다고 하셨기 때문에 뜸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집에 중병이 있는 환자분을 가족으로 두신 분이라면 알 것입니다. 어차피 완치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마음이 아파서 내버려 둘 수가 없습니다. 뭐라도 해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는데, 대개는 비싼 돈만 낭비하다가 마지막에 한의원으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곤 한의원 치료가 보험 적용이 되어 저렴한 것을 보면, 열에 아홉은 놀란 표정을 짓습니다. 많게는 그 비용의 50배 이상을 들여서 대체요법을 이용했던 분들도 계시니 말입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임산부보다 더 컸던 환자분의 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홀쭉해졌습니다. 뜸뜨기 시작한 지 1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아내분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9월 며칠 경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환자분의 지인분들은 완전히 잔치분위기였고, 아울러 제 진료실에 그분들이 올 때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넘쳐흘렀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러고 1개월 뒤에 얼굴이 반쪽이 된 아내분(집사님)이 내원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수술이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실은요... 그때 이식 수술받기 위해서 입원해야 했거든요. 근데 수술하기 바로 전날 애 아빠가 병원 식당에서 넘어졌어요. 근데 그게 좀 크게 넘어졌나 봐요. 그날로 애아빠 돌아가셨어요.”
좋은 일인 줄 알고 나가서 이야기했는데, 데스크에 있던 직원들 모두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식수술이 잡혀서 병원에 갔는데 그런 일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복수가 빠져서 다행이다 싶었고, 이제 아내분도 힘든 고생은 다 지나갔겠구나 모두들 응원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린 것입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차라리 그냥 집에서 지냈더라면 죽진 않았을 텐데....."
집사님은 펑펑 우시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 뒤로 집사님은 종종 한의원에 내원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정성껏 치료해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내원하지 않게 되었는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걱정 반 불안 반이었습니다.
종종 그분의 지인으로부터 소식이 들려오긴 했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일도 다 있냐며 우는 분도 계셨고, 어떤 분은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면서 괜찮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고, 어떤 분은 혼자 남아서 걱정된다는 분도 계셨고, 모두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을수록 어떻게 되셨을까 하는 걱정은 커져갔습니다.
그 뒤로 2년 정도 지났을까요? 그 집사님이 직접 내원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부분은 설명이 좀 필요한데, 저는 처음에는 그 집사님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차트를 한참 들여다보고야 몇 해 전에 안타깝게 돌아가신 환자분의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마터면 진료가 끝날 때 까지도 모를뻔했습니다.
“저요? 엄청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 처음에는 의기소침하고 그랬는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더 열심히 교회 다니고 더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렇죠? 제 얼굴 많이 좋아졌죠?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니까. 그래도 나이 드니까 아픈 데가 조금씩 생기긴 생겨요. 그래도 예전에 애기아빠 아팠을 때 고생하던 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했던 것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애기아빠는 저세상 가면 다시 만날 거니까 걱정 안 해요."
새옹지마:
옛날에 새옹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사람들이 위로했지만, 노인은 “이것이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답했습니다.
그 후에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한 필 끌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축하했으나, 노인은 “이것이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합니다.
환자분의 명복을 빌면서 동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행복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도 더 이상 집사님을 생각할 때 걱정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