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허리가 70도는 굽어있습니다. 앞으로만 굽은 것이 아니라 옆으로도 심하게 굽어졌기에 여쭤봤더니, 어렸을 때 척추에 무슨 병이 크게 걸려서 죽다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잘 걸어 다니긴 하시지만 그것 때문에 허리가 많이 굽어있습니다.
“할아버지 술만 먹지, 내가 그 인간 때문에 죽겠어. 그거 생각하면 허리는 아픈 것도 아니야. 그 인간이 문제지.”
할머니께 어디가 불편하냐고 여쭤보면 심하게 굽은 허리와는 달리 그렇게 많이 아픈 곳은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에 오실 때마다 할아버지가 속을 많이 썩인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가끔 할머니를 심하게 대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항상 표정이 우울해 보이는 것은 아마 그런 일들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언제나 나을랑가 모르겠다며 이제 가야 할 때가 된 거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묵묵히 혈자리마다 침을 놔드리며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갑자기 안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어르신이 갑자기 안 오시면 저는 괜히 걱정이 생깁니다. 안 낫는 것 같아서 안 오시면 상관이 없는데, 대부분은 너무 심해지셔서 큰 병원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시는 경우가 많고, 또 나이가 나이인지라 하늘나라로 가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한의원에 오시는 분들 중 95세가 넘으시는 분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게 소식이 없다가 한 6개월 정도 지났을까요?
할머니가 다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대담하게 침대로 바로 들어가서 “나 접수해 줘”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문을 열고 “나 들어가도 돼?”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해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품 안에 뭐가 꼬물 되는 것이 보입니다. 작고 하얀 그것은 바로 강아지였는데, 알고 보니까 자녀분들이 할머니가 외롭고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다 주셨다고 합니다. 할머니처럼 아주 작은 강아지였고, 다른 강아지에 비해서 겁도 많은 강아지였습니다.
꼭 이렇게 생겼는데, 사진보다는 털이 더 길게 나있었습니다. 미용은 안 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할머니의 손을 가끔 물 때도 예쁘다고만 하시니, 굳이 강아지가 싫어하는 일은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놈 때문에 내가 여기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어. 얘랑 같이 산책하고, 얘 음식도 주고 돌봐줘야 한단 말이야. 애들이 이거 하나 줬는데 누가 봐주는 사람 없으면 어디 나가지도 못해. 항상 붙어 다녀야 해. 오늘 혹시 얘랑 같이 치료받으러 들어갈 수 있을까?”
평소 같으면 강아지는 당연히 치료실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번만은 특별히 침대로 같이 들어가게 했습니다. 침대 커버는 새 걸로 갈아주면 되고, 마침 강아지도 할머니 뒤에 꼭 숨어서 지켜보고 가만히만 있었습니다. 가끔 제가 침을 놓을 때 할머니를 해치지는 않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말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할머니. 얘 되게 똑똑하네요.”
“그치? 얘 완전 사람이야. 내가 얘 때문에 산다니까? 어쩜 이렇게 이쁜지 모르겠어.”
다행히 자제분들이 많이 알아보고 강아지를 입양해 와서, 아주 조금만 산책을 해도 괜찮은 친구라고 했습니다. 가끔 제가 키우는 웰시코기 같은 강아지(아래 사진)를 할머니, 할아버지께 선물로 입양해 주시는 분도 있는데 큰일 납니다. 생긴 거는 아래처럼 귀엽지만 하루에 1~2시간은 꼬박 같이 걸어줘야 합니다. 털도 엄청나게 빠지고요.(어르신들 추천 강아지: 시추 // 피해야 하는 강아지: 웰시코기, 진돗개, 리트리버, ~~테리어 등)
이날 이후로 선생님들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져서 오실 때마다 복덩이 안부를 할머니께 물어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같이 와도 즐겁고, 혼자 와도 어떤지 물어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할머니가 당뇨 수치가 높아져서 (평소 빵을 즐겨드시기 때문에) 빵을 적게 드시라고 이야기할 때는 선생님들이 저를 슬쩍 찌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원장님. 할머니 어제도 복덩이 안고 빵집 들어가셨어요. 너무 자주 빵 먹지 말라고 이야기하시면 안 될 거 같아요.”
알고 보니 한의원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사셨기 때문에 빵집이건, 카페건, 시장이건 어디건 복덩이를 항상 데리고 다닌다고 하시네요. ^^
아마도 동네 사장님들 모두 할머니가 새 가족이 생겨서 잘 됐다고 여길 것 같습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