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배고파, 밥 줘!

연희 엄마가 그분을 보더니 저희한테 귓속말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사람 이상한 사람이야. 집은 저 위에 사는데, 글쎄 우리 식당에 와서도 공짜로 밥을 달라고 그랬다니까. 음료수도 그냥 가져가려고 하고. 그런데 한의원에서까지 저러고 있네.”



그래서 일단 진료를 중지했습니다. 환자분들은 밀려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그분의 인적사항을 살펴보니 혼자 사시는 분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센터와 경찰에 전화를 했습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그런데 여기서 잠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진료도 내팽개치고 제가 그분의 정보를 찾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사실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습니다. 70대인 그분은 처음 한의원에 내원했을 때 신분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분증은 손에 쥐고 계셨습니다. 그리곤 공짜로 치료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남편분이 사별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혼자 살고 있다고 하셨지만 알고 보니 아드님이랑 같이 살고 있었고, 집은 남쪽 자유시장 근처에 있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북쪽 소림사 근처에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밥을 달라”라고 했습니다. 저를 바라보면서 “엄마. 엄마 밥 줘. 돈 없는데 밥 줘.”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http://m.bucheon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32



저희 한의원 앞에는 얼마 전 작고하신 정운경 화백의 왈순아지매 동상이 있는 자유시장이 있습니다. 지난주 언제인가 퇴근하고 8시 즈음, 왕복 8차선 대로변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있었습니다. 자유시장 횡단보도 근처였는데 바닥에는 오줌으로 보이는 물이 흥건했고,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다시 픽픽 쓰러졌습니다. 걱정되어 그곳으로 가자 저를 보며 웃기 시작하셨는데, 특히 제 강아지를 보시고는 그렇게 좋아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웰시코기 헬씨가 전편에 나왔었죠. ^^) 그런데 그럴 때마다 손짓이나 움직임이 불안정해서 금방이라도 엎어지거나 쓰러져서 다치실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경찰분이 빠르게 와주셨고, “XXX 님 이제 저희랑 집으로 가시죠”라고 하면서 집으로 안내해 줬습니다. (뒤에 언급하지만 치매 환자로 국가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은 신상정보가 관계기관에 공유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때 생각이 나서 환자를 안정시킨 후 경찰서와 치매안심센터에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살펴봐도 이 환자분은 치매로 등록되지 않은 환자였습니다. 한편 방법을 찾아보고 있는 사이에 그분은 한의원 밖으로 나갔습니다. 걱정이 돼서 저도 나가보니 바로 앞에 가게들의 문을 하나씩 열어보고 똑같이 밥을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부동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그 부동산 사장님은 저와 아는 분이었기 때문에, 혹시 모르는 상황이 있을까봐 얼른 따라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물어보니 정말 다행히도 두 분이 옛날부터 잘 알던 사이라고 했습니다. 집 주소도 아시고, 아드님 연락처도 아시고.... 그분도 부동산 사장님이 익숙했던지 평온해진 표정으로 밥 대신에 차를 한 잔 드시고 계셨고, 저는 치매 검사와 등록을 위해 가족들의 연락처를 받은 후 다시 진료를 보러 들어왔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 날이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일들이 많지 않았는데, 갈수록 어르신들의 뇌가 빠르게 노화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커졌습니다. 하루빨리 든든한 안전망이 구축되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지금껏 수고했던 만큼 더 안락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Tip.

길 잃은 것 같아 보이는 어르신을 보게 될 경우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관련 병명(노인성 치매 등)으로 등록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경찰관이 신원을 파악하는 즉시 가족에게도 연락이 가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십니다. 주의할 점은 이 과정에서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어르신들을 무리하게 이동시키거나 서게 하시면 도리어 넘어지실 수 있습니다(골절 주의!!). 이럴 땐 무리하게 일어나게 하지 말고 앉아있게 한 다음에 경찰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스스로 소지품 검사를 하거나 이런 환자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무리하게 대화하려다가는 다소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의료기관에 일 년에 1~2번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한)의사를 포함한 모든 의료인들은 치매나 우울증이 의심되는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입니다.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점은 치매 어르신은 보통 자기와 친숙한 사람들(가족, 친구)이 곁에 있을 때는 증상이 없다가, 낯선 상황에서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억력의 속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치매안심센터는 이미 치매로 판명되신 분들의 복지나 혹은 치매 진단 등의 역할을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치매 등록이 되면 보호자의 전화번호도 같이 등록이 되고, 그런 정보가 경찰서에서도 공유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심센터에는 구급차 같은 차량이나, 적절하게 신원을 조회할 수 있는 권한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원 조회나 이송을 원한다면 경찰서 등에 연락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전 03화복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