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옥 어머님은 90세인데 정신만큼은 또렷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은 건강원 옆에 있었는데요 (건강원이랑은 전혀 무관함), 아주 큰 개를 한 마리 키우고 계셨습니다. 그 개가 모르는 강아지들한테 얼마나 짖던지 강아지 헬씨를 데리고 갈 때면 그곳은 항상 피해서 갔습니다.
그 덩치 큰 강아지를 150cm도 안 돼 보이시는 이병옥 어머님이 어찌 돌보나 했는데, 다행히도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와서 돌봐주고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남편분이 도와주시는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70세쯤 돼 보이시는 그 할아버지는 사실 이병옥 어머님의 남편분이 아니라 첫째 아드님이셨습니다. 동네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주 오래된 검은색 자가용을 항상 끌고 다니셨기 때문에, 그 차를 보면 아드님이 와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병옥 할머님가 그날만큼은 꽃단장을 하고 한의원에 오셨습니다. 평소에는 소변 조절이 안 되시고, 빨래를 해줄 사람이 없으셔서 항상 시큼한 냄새가 심하게 나셨는데, 그날만큼은 옷에서 꽃냄새가 향긋하게 나셨습니다. 웬일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으셨던지, 할머니가 대기실에서도 뭐라고 하시고, 치료실에서도 간호사 선생님한테 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뭐라고 하셨는데, 계속 같은 말을 웃으면서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치료할 때가 되어서 가보니 할머니는 할머니보다 훨씬 어린 저에게 활짝 웃으며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고 늙은이가 죽지도 않고 또 원장 선생님께 폐를 끼치러 왔어요..”
(그러고는 할머니는 꼭 집에서 싸 오신 보리차를 한 모금 들이키십니다. 그걸 다시 꼭꼭 잘 싸서 가방에 넣을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 3분 정도 걸려요. ^^)
“원장 선생님 나 이제 유치원 가요. 너무 잘 됐지?”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습니다. 90세 할머니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니 걱정이 되어 치매 검사와 지남력 검사를 한 걸 보면 정말로 무슨 말인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테스트를 끝냈는데 역시나 정신은 멀쩡하십니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유치원 잘 갔다 올게요”라고 침놓는 내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냥 하는 말인가 보다 하고 다른 분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원장실에서 차트를 정리하고 다시 치료실에 가고 평상시처럼 반복해서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그런데 몇 분이나 지났을까요, 저 멀리서 갑자기 선생님들이 울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들 사이에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원장님 할머니 요양원(유치원) 가시는 거래요. 이제 가시면 못 오신대요.”
그 웃음 많던 할머니도 선생님들이 울자 서러우셨던지 눈물이 글썽거리셨습니다. 애써 참았던 울음이 터지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유치원 가기 싫은데 어쩔 수가 없어... 나 이제 내 집이 아니라 거기서 살아야 돼... 죽을 때도...”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병옥 할머니를 챙기던 첫째 아드님이 노환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그동안 있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은 베드에서 관리해 드리는 게 힘들 때도 있다고 이야기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할머니께서는 마지막으로 한의원을 들러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할머니께 언제든 다시 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오시면 택시비도 돌려드리고 더 잘해드리겠다고 손을 꼭 잡아드렸습니다.
ㅠㅠ
옛날 최고의 의사였던 손진인이 남긴 책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의업을 행하는 이에게는 큰 질병이 세 가지 있습니다. 자신의 의술이 최고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교만의 마음과, 돈을 섬기려는 사치의 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분을 섬기지 않는 나태의 마음이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