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지인의 소개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아주 차분하게 행동하셨고, 조용조용 말씀하셨지만, 맥을 잡아보니 속에서는 야단이 나있었습니다. 거의 폭발할 듯이 휘몰아치는 이런 에너지는 반드시 연료가 있어야 생길 수 있습니다. 보통은 외물(外物, 자신과 동떨어진 욕심의 대상)이 그 연료가 되는 듯이 생각하나, 사실은 몸 속에 있는 진액이 자신을 태우는 것이고, 그것을 옛날 말로 “화와 열火熱”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열받어
내가 그걸 못사서 열받어
내가 이런 상황 때문에 열받어
그러나 그 열은 모두 자신을 태우는 것입니다.
외물을 핑계로 자신의 몸을 태워서 열기를 발산하는 것입니다.
2.
처음에 병은 같이 옵니다. 무엇이 같냐면 안과 밖이 같습니다. 열병이면 열병이고, 찬병이면 찬병이고, 멍이 든 것은 멍이 든 거고, 뼈가 부러진 것은 뼈가 부러진 것입니다. 겉으로 보든 속으로 보든 처음에는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병이 오래되면 겉과 속이 달라집니다. 아주 마른 사람 몸속에 커다란 종양이 있을 수도 있고, 속에 폭탄이 터지고 있는 사람 피부가 차디찰 수 있습니다. 이러면 그것은 깊이 진행된 병일 수 있습니다.
이분도 그랬습니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겉은 더없이 편안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절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사코 모든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그보다는 진료 자체를 귀찮아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분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지인과 절친한 관계이므로 비싼 보약이나 한 제 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운 지인의 부탁이라 도통당해 낼 재간이 없어서, 결국엔 한약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게 이분과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이었습니다.
한편, 그분에게 꼭 필요해 보여서 한 제를 추가로 더 달여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약이 반송되어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수취인 불명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분이 모든 지인들과 연락두절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다음 해에 그분을 소개해준 지인이 식사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 투자 많이 했어. 나한테도 투자하라고 귀띔해 주고, 이거 이거 종목 사라고 알려줬다니까. (2021년 즈음에) 투자로 돈 많이 벌었을 거야. 아직 빌라 살긴 하는데 그것도 팔았든가 빌렸든가.... 하여튼 어떻게 최대한 끌어다가 더 큰돈 투자한다고 그러던데? 근데 우리한테도 갑자기 연락이 없더라.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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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의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所惡熱而所喜靜 衰則懶語錯言 이니,
소오열이소희정 쇠즉나어착언 이니,
血滯經閉可治 冷痰眞痛難授 라.
혈체경폐가치 냉담진통난수 라.
:심장이 싫어하는 것은 움직이지는 않고 생각만 열불 내는 것이고,
심장이 좋아하는 것은 움직임과 생각이 고요한 것이다.
생각의 근원인 혈이 막히고, 경맥이 막힌 것은 치료할 수 있으나,
냉담으로 몸이 마비되고 진통(세포 사멸 혹은 대동맥 박리로 인한 통증)이면 치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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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것은 조용한 것은 아니고,
몸과 마음이 도에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호흡으로부터 그 두 가지 고요한 것이 시작하고,
호흡으로 훈련되면 자연히 심장이 좋아져서,
천수를 모두 누릴 수 있습니다.
삶이란 이토록 고요하고 단순한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