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화상 이야기

흉터도 상처도 모두 잊어버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침이구삼약

(一鍼二灸三藥)

혹자는 침이 제일 빠르니 일침이라 하고

혹자는 침은 급성에 써야 하니 일침이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침보다 뜸이 두 배 어렵고, 그보다 약이 세 배 어렵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약 달이기 어려우니 한의원에서 약을 달이는 곳이 점점 줄고 있고, 뜸 뜨기도 어려우니 이제는 침과 물리치료만 해주는 것이지요.



저는 한의원에서 화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하지는 않지만, 뜸으로 인해 화상을 입은 분들에 한해서는 치료해드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평생에 한 번도 화상치료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종종 겪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원장님 피부과에서 얕은 2도 화상이 아니라 3도 화상이라고, 부위가 굉장히 깊다고 그랬다니까요."


한참만에 내원하신 이성순님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럴 리가 없는데. 처음에 얕은 2도 화상이었는데...' 하고 생각하며 말없이 드레싱을 열고 상처를 살펴봤습니다.


'아뿔싸..'


상처에는 제가 도포하라고 말씀드린 연고 대신에 하얀색 연고가 발라져 있었습니다. 그 연고는 여러 합성물이 포함된 약물로 화상 치료에 간혹 쓰이지만 예후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드레싱은 습식이 아니라 건식이었습니다. 때문에 3주면 나을 수 있을 상처였는데 2달이 다 되어서 한참만에 찾아오신 환자분의 화상 상처는 더욱 심해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피가 너무 심하게 거즈에 들러붙어있었고, 화상 정도는 더 깊이 파고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며칠 전에 또 다른 곳에 내원했는데 피부 이식 수술밖에는 답이 없다고 소견서를 한 장 써줬다고 했습니다.



"아니 왜 저한테 오시질 않구...."



환자분은 서러웠는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가피를 벗겨내면서 하나씩 이야기를 해나갔습니다.








"우선은 아픈 편이 좋습니다."


통증이 있다는 것은 피부가 덜 손상되었다는 뜻입니다. 아직 신경 세포가 남아있는 것이지요. 여기 눌러보면 상처는 굉장히 심한 것 같지만 통증도 함께 있죠? 신경 쪽까지 완전히 손상된 것은 아니니까 보기보다 빠르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1번보다 2번이 심해보입니다. 그러나 1번 사진의 환자분은 복숭아뼈 얇은 피부였는데 통증이 없었습니다. 2번 사진의 환자분은 위에 부분을 긁어내니 통증을 느끼셨습니다. 실제로 2번 환자분이 훨씬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1번 사진
화면 캡처 2025-12-05 100143.png 2번 사진




"둘째로 아주 비싼 초고급 밴드보다 피부를 남겨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벗겨지셨다면 꼭 습식드레싱을 해줘야 합니다."


다만, 습식드레싱을 하는 것에도 때가 있습니다. 처음 화상을 입은 그 순간에는 환부를 차갑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드레싱을 도포하면 화기가 빠지지 않아 오히려 상처가 덧날 수 있으니, 다음에도 드레싱 혼자서 붙이지 마시고 꼭 상의하신 다음에 붙이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보시다시피 이렇게 잘 낫습니다.

화면 캡처 2025-12-05 100452.png 침치료를 병행하는 모습
화면 캡처 2025-12-05 100509.png 새 살이 올라온 1번 사진
화면 캡처 2025-12-05 100520.png 새 살이 올라온 2번 사진





다행히 몇 주 지나지 않아 환자분도 상처가 그런대로 회복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한시도 쉬지 못하고 일을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료실에 오지는 못하고 그렇게 임시방편으로 치료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치료가 거의 마무리된 날, 쭈뼛쭈뼛하면서 저에게 뭔가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 원장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이거 흉 지는 거죠?"


저는 차근차근 설명드렸습니다.


"조금 일찍 습식으로 드레싱을 했다면 흉이 덜 지긴 했을 건데 지나 봐야 알 거예요. 이거 주름 이런데가 약간 남을 수도 있어요."

"아 그거 말고..."

"네?"

"그거 말고 저기 상처 테두리에 검게 변한 부분은 안 없어지는 거죠? 그림처럼 보여서 보기가 그래가지고..."



사실 피부 테두리로 검게 된 부분은 면역반응 때문입니다. 그리고 6~12개월 정도 지나면 지금보다는 훨씬 옅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조금씩 좋아진다고 이야기하니 환자분은 또 울음을 터뜨리십니다.


"원장님 이제부터는 정말 꾸준히 잘 다닐게요.. 감사해요."







그 뒤로 몇 달이 지나기까지 이성순님은 한 번도 내원하지 않으셨습니다. ^^

아마 별 소식이 없는 것은 아프지도 않고, 색깔도 점점 옅어지고, 별 탈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죠?


한약을 지어가실 때도 상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신 것 같으니, 아마 깨끗하게 나으신 것 같습니다. ^^




이 글을 읽으시는 모두ㅡ

흉터도 상처도 깨끗하게 잊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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