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그분이 꿈속에서 가리킨 곳

"나 죽으면 원장님 한의원에서 갈 거야. 다른 진단은 몰라도 사망진단서는 꼭 원장님한테 끊을 거니까, 부탁해."


진료실에서 늘 하시던 그 말씀이 귓가에 생생한데, 꿈속의 최영희 어머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간절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계실 뿐이었습니다.


"저기 저 가게로..."















어머님의 주름진 손가락 끝이 향한 곳, 그곳은 어머님의 자제분들이 운영하는 가게였습니다.






잠에서 깬 후 기분이 묘했습니다. 평소 꿈을 깊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돌아가신 최영희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저는 홀린 듯 아침 일찍 그 가게로 향했습니다. 사실 단골 가게는 따로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꼭 거기서 물건을 팔아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최영희 님은 우리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집안에 의사도 많고, 자제분들은 서울 큰 병원을 운영할 정도로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이었지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대학병원보다 제 한의원을 더 편안해하셨습니다.



"암일 수도 있다고요? 그래, 알겠어. 그래도 난 병원 안 가. 내 마지막은 원장님이 봐줘."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오고, 검사 수치가 위험 신호를 보내도 어머님은 고집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억지로 종양표지자 검사를 하고, 친구 병원에 영상 의뢰를 부탁하며 애를 태울 때도 그분은 저를 믿고 의지하셨습니다. 그러다 소식이 끊기고 몇 년이 흐른 뒤, 이렇게 꿈에 나타나신 겁니다.






저는 오랜만에 들른 가게에서 꽤 비싼 물건을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포장을 뜯어보니 황당하게도 짝퉁 제품이더군요. 심지어 바로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사람 몸에 쓰는 물건을 이렇게 팔다니. 화가 났습니다. 항의 전화를 걸어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최영희 님의 자제분이셨죠.



그런데 막상 마주한 사장님의 얼굴은 흙빛이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 제게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데, 화보다는 묘한 연민이 일었습니다.




얼마 후, 사업차 만난 지인을 통해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원장님, 혹시 그 집 물건 쓰세요? 거기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빚더미에 앉아서, 지금 가짜 물건이라도 팔아서 막으려고 혈안이랍니다. 조심하세요."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습니다. 어머님이 꿈속에서 그토록 간절하게 손가락질을 하셨던 이유가 단순히 물건 하나 팔아달라는 뜻은 아니었을 겁니다.


돌아가셔서도 자식의 위기를 감지하고, 생전에 가장 신뢰하던 한의사에게 자식을 부탁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요. 비록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어머니의 그 애달픈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최영희 어머님, 너무 걱정 마세요. 그 마음이 닿아서 자제분들도 다시 일어설 겁니다."



저는 하늘을 올려다 봤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때로는 그 욕심이 부모님의 영혼마저 편히 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습니다. 부디 그 아드님이 어머니의 눈물 어린 방문을 깨닫고, 다시 정직한 삶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부디 저승에서는 자식 걱정 내려놓으시고 편안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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