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도 힘들 땐 도망칩니다, 뜸 냄새 나는 곳으로

화가 치솟는 시대, 한의사의 자가 처방전



멍멍이 '헬씨'도 지리산의 더위 앞에서는 어쩔 줄을 몰라 하네요. 뜸을 뜨기 전날, 열기를 식히러 잠시 들른 카페에서의 모습입니다.


























형체가 없는 것이 이토록 활활 타올랐던 적이 인류 역사상 또 있었을까요?


100년 전만 해도 듣도 보도 못했을 숫자들이 나열되고, 정보는 쓰나미처럼 밀어닥칩니다. 바야흐로 화기(火氣)가 치성한 진정한 '불의 문명'이 도래했습니다. 인류가 치열하게 사는 만큼 날씨도 점점 뜨거워집니다. 자연만 타오르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몸도, 마음도 함께 불타고 있습니다.



화기(火氣)는 묘한 특성이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아도 옆 사람이 불처럼 화를 내면 그 불길이 나에게도 옮겨붙습니다. 사회가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의 불똥이 나에게 튀고, 가만히 있다가도 어느새 그 불길에 휩싸여 몸과 마음이 재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 불을 의식적으로 꺼줘야 합니다. 양기가 치솟는 만큼 음기를 보충해 균형을 맞춰야 하지요.



현대 의학적으로 말하면, 과도하게 활성화된 '교감신경'을 알아차리고 '부교감신경'을 깨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난이도입니다. 화를 내고, 흥분하고, 싸우거나 도망가는 것(교감신경)은 본능이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흥분한 상태를 가라앉히고, 평온을 되찾는 것(부교감신경)은 별도의 훈련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불을 지르는 건 순식간이지만, 끄는 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존재니까요.



욕심과 집착이라는 불길은 특히 전염성이 강합니다. 겉으로는 '인류 봉사'나 '가족의 행복' 같은 선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바닥을 들춰보면 시커먼 욕심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씨앗은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걱정으로 지금 내 몸을 태우고, 나아가 내 곁의 가족들까지 태워버립니다. 이미 불길이 치솟은 뒤에는 산책이나 명상만으로 진화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우리 선조들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불을 껐습니다. 호흡법이 그렇고, 제가 선택한 '뜸'이 그렇습니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여름, 날씨만큼이나 제 안의 불길도 잡히질 않았습니다. 결국 틈을 내어 지리산 자락에 누워 배에 뜸을 떴습니다.(산에서 뜬 건 아니고, 친구 한의원에서 떴습니다 ^^) 타들어 가는 쑥 냄새와 함께 긴장되었던 손가락과 발가락 끝으로 찌릿한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이번에도 욕심과 집착으로 눈이 가려져 불 속으로 뛰어들었구나.'


뜸의 온기가 퍼지자 마음의 열기는 조금씩 가라앉았습니다.



물론, 한 차례 욕심을 비워내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마음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건 우리 가족을 위해 필요한 일이야." "미래를 위해 지금은 좀 불살라야 해."



산업화 시대가 심어놓은 "욕심이 곧 성공의 에너지"라는 망상이 고개를 듭니다. "그때 그 욕심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의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분명히 깨닫습니다. 욕심과 집착은 결국 더 큰 불편함과 미래의 화(禍)를 불러온다는 것을요. 형체 없는 욕심 대신, 지금 내 발밑의 현재에 몰두했다면 분명 더 건강한 성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제 안의 불씨를 들여다봅니다. 타오르지 않게, 은은하게 따뜻할 정도로만 남겨두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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