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하고 제일 후회하는 일 :

"원장님, 왜 문을 닫으셨어요?"

코로나가 세상을 집어삼키던 때였습니다. 백신조차 없던 시절, 부천에서도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의사로서, 또 과학자로서 이 재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습니다. 바이러스 연구에 몰두하고 싶었고, 혹시 모를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환자들이 밀집하는 한의원 문을 당분간 닫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공익을 위한 길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환자분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출입문에는 '잠시 쉬어갑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제 나름의 방역이자, 더 큰 의술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다시 문을 연 진료실로 누군가 찾아오셨습니다.


“원장님!! 왜 문 닫으셨어요?”


처음에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왜소한 체구의 환자분. 그런데 옆에 서 계신 남편분과 함께, 저를 보자마자 울분 섞인 목소리로 소리를 치시는 겁니다.



“원장님!! 그때 왜 문을 닫으셔가지고...!!”



가만히 얼굴을 뜯어보니, 최영선(가명) 님이었습니다. 1년 전만 해도 허리가 조금 뻐근하다며 걸어 들어오셨던 분. 통증 강도로 치면 '중간' 정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던 건강한 50대 여성이었습니다.



그랬던 분이 하반신이 마비되고, 음식을 삼킬 수 없어 콧줄(튜브)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중증 장애를 안고 나타나신 겁니다.



“최영선 어머님... 맞으세요?”

“네, 원장님... 이제 알아보시겠어요?”



사연은 기가 막혔습니다. 제가 문을 닫고 두어 달 뒤, 갑자기 허리 통증이 심해져 한의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고, 급한 마음에 새로 생긴 곳에서 치료도 하고 수술도 받았는데 예후가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원장님이 문만 열어놓으셨어도... 내가 원장님한테 치료받았을 건데...”

“......”

“왜 문을 닫으셔가지고... 아휴...”


어머님은 휠체어를 끌고 다짜고짜 제 앞으로 오시더니, 투박한 제 손을 덥석 잡으셨습니다. 원망 섞인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원장님. 나 약 좀 지어줘요... 그리고 침 맞으면 나을 수 있을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내가 문을 열어 놓았다면 정말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어차피 진행될 병이었을까? 수만 가지 '만약에'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제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저 거대한 무력감뿐이었습니다.


약값은 원가로, 침값도 최소한으로 받으며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이미 마비가 온 신경은 어떤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가족분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를 의지하셨습니다.


한 달 뒤, 어머님은 경제적인 사정으로 더 싼 요양병원을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약값이 문제였을까요. 그냥 돈을 받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 문을 닫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사를 가시고도 몇 번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모든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 상담해 드렸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소식은 점점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나는 거창한 연구자나 혁명가가 아니라, 동네 어귀에서 아픈 이들이 언제든 문 두드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여야 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면, 환자분들이 저 닫힌 문 앞에서 느꼈을 절망감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웬만해서는 한의원 문을 오래 닫지 않습니다. 연구도, 사업도 중요하지만, 제1순위는 언제나 진료실입니다. 저를 믿고 찾아주시는 환자분들이 계시는 한,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저의 가장 엄중한 의무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최영선 님. 언젠가, 반드시 신경을 되살릴 수 있는 좋은 치료법이 나올 것입니다. 제가 쉼 없이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디 그때까지, 무너지지 말고 잘 버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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