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르던 날, 크림빵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 저는 제 일이 "검사하고, 병명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환자분들을 만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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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양손에 크림빵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신 건, 회복의 기운이 막 올라오기 시작한 지 2주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날은 제가 잠깐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저는 그 장면을 '회복의 함정'으로 기억합니다. 회복은 늘 반갑습니다. 하지만 그 반가움이 때로는 사람을 방심하게도 만듭니다.





"오늘은 허리만 좀 봐주세요."



이지현(가명)님이 처음 오셨을 때,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누군가 부축해주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들어 보였고, 한쪽 다리는 체중을 실을 때마다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처음엔 ‘허리 문제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제가 보고 있는 것이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원장님, 큰 수술을 여러 번 겪었어요. 밤마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프고… 조금만 뭘 먹어도 혀가 화끈거려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이럴 때 저는 섣불리 “다 고쳐드릴게요”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그분이 오늘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묻는 편입니다.



“이지현 님, 혹시 수술 후유증까지 같이 다루길 원하세요? 아니면 오늘은 허리만 봐드릴까요?”

“아… 그건 아니고요. 오늘은 허리만 좀 봐주세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환자분은 ‘당연히 나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으셨고, 저 역시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물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 보였고, 혼자 걷는 것도 큰일이었으니까요.





매일, 정말 매일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환자분은 매일같이 한의원을 찾아오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가 텅 비었을 때조차 하루도 빠짐없이요.


정확히 1년쯤 지났을까요. 어느 날 진료 중에 무심코 밖을 내다봤는데, 난간을 잡지 않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오는 분이 보였습니다. 이지현 님이었습니다.


“어라… 이제 그냥 올라오실 수 있어요?”

“원장님, 그렇게 된 지 며칠 됐어요. 이제는 집에서 여기까지 30분 거리도 걸어서 와요.”


기적 같은 회복이었습니다.

환자분은 “원장님 덕분이에요”라고 웃으셨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침과 약만의 결과라고 말하기엔, 그 1년의 매일이 너무 컸습니다.


치료는 치료대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회복은 결국 환자의 삶 속 실천과 함께 만들어집니다. 그 꾸준함이 회복의 속도를 바꿉니다.




"모든 병은 좋아질 때 가장 위험합니다."



치료하다 보면 마음에 새겨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좋아지기 시작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예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집니다. 그게 ‘회복’이 아니라 ‘복귀’로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 크림빵 쇼핑백이 등장했습니다.





"부드러운 음식이요?.... 크림빵이요."



회복의 기세가 생긴 뒤 어느 순간부터, 허리는 괜찮은데 목의 통증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일시적인 반동인가’ 싶어 이것저것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음식 삼키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고, 체중은 30kg대로 떨어졌습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답답하던 어느 날, 저는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부드러운 음식 드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걸 드셨어요?”

“원장님, 밥이 잘 안 넘어가서요. 그래서 크림빵이나 비스킷을 우유에 녹여서 먹어요. 그거 아니면 못 먹겠어요.”


그 순간, 저는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습니다. 온몸에 털이 쭈뼛쭈뼛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부드러운 음식’이라는 말 아래에, 실제로는 가공식품과 단맛이 주식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게 잘못된 거예요?"


환자분은 정말 순진하게 물었습니다. 저는 그 눈빛을 보며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이 질문이 '의지가 약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분에게 단맛과 가공식품은 ‘기호’가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이었습니다. 씹고 삼키기 힘든 상황에서, 가장 쉽게 들어가는 것이 그것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회복기에 주식이 과자와 빵이 되면, 몸은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큰 치료와 수술을 겪은 몸은 영양 밀도가 회복력과 직결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지현 님, 이건 ‘나쁜 음식’이라서가 아니라, 지금 몸이 회복하려면 다른 재료가 필요해서 그래요. 지금은 빵과 과자가 ‘주식’이 되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달콤함은 위로가 되지만, 회복기엔 대가가 큽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금지’가 아니라 ‘대체’를 만들었습니다.


우선 삼키기 쉬운 좋은 지방과 부드러운 죽으로 식사를 먼저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달콤한 빵과 과자는 주식의 자리에서 내려와, 식사 후 가끔 즐기는 ‘간식’으로 위치를 바꿨습니다. 그렇게 가능한 범위에서, 매일 몸에 들어가는 음식들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물론 중간에 흔들림도 있었습니다. 뻥튀기나 옥수수 같은 ‘가벼운 단맛’으로 다시 넘어가려는 유혹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끈질기게 “지금은 주식을 지키는 게 먼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병원 치료의 경과도 안정적으로 이어졌고, 거짓말처럼 목 통증이 크게 줄었습니다. 누군가에겐 그 과정이 마치 한순간의 기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매일의 선택이 쌓인 결과였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


지현 님은 지금 먼 곳으로 이사 가셔서 더 이상 오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편의점에서 부드러운 빵이나 과자를 볼 때면 늘 그분이 생각납니다.


달콤함은 때로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바쁜 삶에서 가장 쉬운 ‘끼니’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회복이 필요한 몸, 혹은 이미 한 번 크게 흔들린 몸에게 달콤함이 주식이 되는 순간, 몸은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단 하나입니다.


“달콤함이 위로가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기에는 달콤함보다 '주식'을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때만큼은 달콤함을 주식에서 내려놓아 주세요.



이 글은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개인적 기록이며, 개인의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치료나 식이 변경은 주치의/전문가와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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