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잘못된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18은 목차의 번호이고, 12는 당화혈색소 수치를 뜻합니다.



당화혈색소가 12라는 건, 숫자 하나로 끝나는 얘기가 아닙니다. 몸이 오랫동안 높은 당 부담을 견뎌왔다는 흔적이고, 그만큼 여러 문제가 겹칠 가능성이 커집니다. 한의학적으로도 이런 상태는 열이 치솟거나(상역), 긴장이 과해지거나(과각성) 하는 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더 조심하게 됩니다.






“싫어, 안 해도 돼!”


“원장님 저 분 놔둬요. 말을 얼마나 안 듣고 고집이 센지 몰라요.”
“아니 그래도…”


저는 그래도 붙잡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님, 그러지 마시고 몸 관리하셔야 한다니까요.”
“제가 알아서 해요. 원장님은 걱정 마셔.”
(아내분이 걱정되는 눈빛으로) “으휴… 내가 저 고집 못 살아…”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70이 조금 안 되신 어느 아버님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는 바꿔 씁니다.)

그 분은 늘 이어폰을 끼고 다니셨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활발하고 단단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내원하셨을 때, 제가 당화혈색소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그거 이미 해봤어. 안 해도 돼. 뭐 12인가 그래서 의사가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상관없어. 죽는 것도 아니고.”


“네? 12가 나오셨다고요?”
“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게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당화혈색소는 쉽게 말해, 최근 몇 달 동안 혈당이 얼마나 높게 유지됐는지를 보는 지표입니다. 보통은 당뇨의 진단과 관리에 쓰이고요. 수치가 높을수록 합병증 위험과 연관될 수 있어서 임상의들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6.5% 이상이면 당뇨 진단 기준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 수치를 단순히 “당뇨 숫자”로만 보지 않습니다. 생활이 무너진 방향, 회복이 늦어지는 방향을 함께 보는 경고등처럼 봅니다. 물론 숫자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진 않지만, 숫자 하나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려줄 때가 있습니다.





제가 특히 조심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해에 당화혈색소가 아주 높았던 분들 중 일부가, 결국 큰 병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몇 차례 봤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고, 이 지표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불면과 우울감

피부 트러블

장시간 화면(유튜브/TV)

그리고 떡·과자 같은 자극적인 간식이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


그래서 12라는 숫자를 들었을 때, 저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끝까지 고집을 피우셨고, 그날은 혈액 채취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날도 못 하고, 그 다음도 못 했고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습니다.


다행히 그때까지는 예전처럼 사회활동도 하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 한켠에 “그래… 아직은 괜찮은가?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환자분이 오시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켠이 조용히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혹시 큰 병이 생겨서… 작별 인사를 하러 오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때가 있으니 말입니다.


“저기 원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얼굴 뵈니까 좋네요.”
“우리 애기아빠가요… 잠깐 들어가서 같이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원장실에서 그 두 분을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만히 듣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이미 항암 치료가 어려울 정도로 병이 퍼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병명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저처럼 가만히 앉아서, 아내분의 말을 듣고만 계셨습니다. 가끔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이거나, 눈짓으로 “알았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글쎄 이 사람이 이제 병이 다 퍼져서 어떻게 해보지 못하는 상태래요. 전이도 다 돼서 밥도 못 먹고… 여기도 안 온다는 거 억지로 데리고 왔어요. 요즘은 밖에도 안 나가고 그냥 집에서 누워만 있어요. 대학병원 선생님도 ‘집에 계시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요…”

“….”

“원장님… 우리 그냥 뜸이라도 좀 떠줄래요?”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람의 수명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을 하면서도,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조금 더 오래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뒤따라옵니다.


그날 이후로 3일 동안, 두 분은 함께 오셔서 뜸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을 침대에 눕히려면 부축이 필요했고, 다시 일어날 때도 누군가 거들어야 했습니다.

그 쌩쌩하고 단단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말씀할 힘도 없어서인지 말도 거의 없으셨고요. 그런데 아내분은 이상할 정도로 아버님의 신호를 알아듣는 듯했습니다.


“아, 이렇게 하라고?”
“원장님, 저 양반 어디 불편한가 봐요.”

“원장님 불 조금만 더 올려줘봐요.”


소리 하나 내지 않는 아버님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알아채나 신기했지만, 3일 뒤 마지막 뜸을 끝으로 두 분 모두 한동안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한 달쯤 뒤, 아내분만 내원하셨습니다.


마지막 뜸 이후 호스피스에 들어가셨고, 산소호흡기를 떼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다며 다시 오셨습니다.



“아이구… 살아생전에는 그렇게 고집불통이더니, 가고 나니까 얼마나 서운한지 몰라…”
“….”
“원장님, 어쨌든 고마워요.”
“제가 뭘요… 어머님이 힘드셨죠.”


그날도 뜸을 뜨고 싶다고 하셔서 자리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그 뒤로도 힘든 일이 있으시면 종종 오셔서 아버님 이야기를 하십니다. 평소 내성적이시던 어머님은 아직도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힘들 때는 얼마든지 오세요.
몸에도, 마음에도 따뜻함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숫자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이 무너지는 방향을 조용히 보여줍니다.

치료보다 먼저 해야 하는 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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