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의 소멸과 예술의 미래
현대 시대에서 기술의 진보는 예술의 본질과 의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벤야민(1935)"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논의로부터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자동창작시대의 예술 작품'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 기술복제 시대를 거치며 미술관 속에 갇혀있던 예술은 이제 모두의 스마트폰으로 스며들었다. 이를 통해 경험했던 것이 예술 감상에서의 민주화라면, 예술을 창작하는 기계의 등장은 어느새 예술 창작에서의 민주화를 추구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실제로 예술을 창작하는 기계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이제 모두가 예술가가 될 것이다.
벤야민의 주요 분석 중 하나는 기술적 복제의 출현으로 인한 예술의 '아우라'에 대한 소멸이다.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리면, "아우라는 '공간과 시간에 의해 특별히 짜인 직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아무리 가까워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성 현상이다. 이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이 두 요소는 대중의 상호작용 및 대중 운동의 강도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사물을 자신에게 더 "가까이 끌어오려는" 것은 오늘날 대중의 열렬한 관심사이며, 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통해 극복하려는 경향이 그 관심을 나타낸다."
아우라는 예술 작품의 독특한 존재감과 해당 작품이 탄생한 특정한 맥락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예술 작품은 무한히 복제될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작품은 원래의 맥락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아우라는 점차 퇴색된다. 아우라는 사물의 독특한 존재나 시간과 공간에 국한된 진정한 성격을 나타낸다. 이는 관람자나 청중이 작품이나 사물과 깊은 직접적 관계를 맺을 때 느끼는 감각적이고 감정적 연결을 의미한다. 아우라는 작품이나 사물의 독특한 특성, 그것의 고유한 역사, 그리고 그것이 속한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벤야민의 아우라에 대한 이론은 단순히 예술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아우라의 소멸이 예술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우라의 퇴색은 예술의 민주화, 즉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예술을 단순한 소비 재화로 전환시킬 위험도 있다. 이는 예술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사회에서 예술이 어떻게 인식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아우라는 예술이나 사물이 개별적으로 가지는 독특한 '영혼'이나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것의 물리적 존재를 넘어서 그 안에 담겨있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 그리고 우리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와 감정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