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호기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은 항상 밤이다.
낮 동안 머리의 부장품들은 물과 파도로 된 파란 껍질에 덮여 있다.
빛은 낮에 프라이팬 위에 기름 튀듯 해면에서 반짝인다.
머릿속에 웅크리고 있는 밤의 심해,
보이지 않아 거대한 검은 정념,
머리의 둥근 바다 위 등대가 골똘히 들어다보는 것.
밤에 시인은 머릿속을 파헤친다.
바다 위에 떠도는 선박들을 불러들이는 등대,
빛은 밤에 머릿속을 파내는 곡괭이가 된다.
채호기, "검은 사슴은 이렇게 말했을 거다 (문학동네시인선 112)", 문학동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