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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 레게,
“집어서 읽어라”

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by 홍승완 심재


서로마제국이 쇠락해가던 시기(서기 386년경)를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의 나이 서른둘, 지금으로 치면 젊은이지만 평균 수명이 오십이 채 되지 않던 당시에는 중년을 넘긴 나이였다. 남자는 청년 시절 세속적 성공을 꿈꾸며 변론술과 철학을 배우고 마니교(Manichaeism)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기를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명예와 정욕에 집착하며 세속에 매인 채 번민을 거듭했다.


어느 여름날 뒤뜰을 산책하던 그는 그때까지도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게 절망하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신에게 기도했다.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아직도 회개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내일입니까? 또 내일입니까?
왜 지금은 안 됩니까?
왜 바로 지금 이 시간에 나의 더러움을 벗어 버릴 수 없나요?


그때 이웃집에서 들려온 아이의 목소리. “톨레 레게, 톨레 레게, 톨레 레게.” ‘톨레 레게(Tolle Lege)’는 라틴어로 “집어서 읽어라”라는 뜻이다. 불현듯 남자는 이를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여 곧장 집에 들어와 <성경>을 펼쳤다. 그의 눈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들어왔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장 13~14절, 그에게 딱 맞는 메시지였다. 그의 깊은 절망과 오랜 번뇌를 꿰뚫는 한 문장. 그는 완전히 각성하고 회심한다. 그토록 고대하던 확신의 빛으로 드디어 그에게서 절망과 의혹의 어둠이 사라졌다. 비로소 그는 아들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 이 사람이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대표적 교부로서 기독교사상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톨레 레게’ 사건 이후 극적으로 바뀌어서 10년 후 훗날 세계 3대 고백록으로 알려진 <고백록>을 쓰고, <신국론(神國論)>과 같은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저술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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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 표지 / 성 아우구스티누스 (출처: 알라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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