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뱃속부터 심플하게 채우면 생기는 일
내 뱃속을 내 의지대로 심플하게 채우는 일. 대단한 일 같지 않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자. "그거 뭐 하품하고 눈물 흘리는 수준 아냐?"라고 대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 먹자는 생각이 머릿속에 보글보글 올라오는데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아무 주전부리들을 입에 쑥 집어넣고는 오물오물했던 경험. 고된 하루를 버텨낸 장하고 기특한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며, 그냥 이대로 잘 순 없다며, 목구멍을 시원하게 기름칠해 주는 치맥을 선물한 경험. 그 결과 극심한 소화불량에 시달려 더 고생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나도 얼마 전까진 그렇게 살았다. 매일 하는 등원인데 어쩜 이리 매일 정신이 없는지. 아무튼 폭풍우 같은 두 아이의 등원시간이 지나면 잠시 식탁에 앉아 달콤한 커피와 과자를 먹었다. 이 시간은 나의 이너피스를 되찾게 하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힐링이 아니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물먹은 하마처럼 몸도 마음도 축축 처지는 것을 느꼈다.
먹는 것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이 아니다.
우리의 건강과 감정을 모두 아우르는 중요한 행위다.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내 뱃속을 심플하게 만드는 일. 언뜻 보면 대단하지 않아 보이지만, 이 일이야말로 인간이 자기 통제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바탕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나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내면에서 나오는 만족과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내 안에도 그런 평화가 있기는 한 건가. 나도 그런 평화를 느껴보고 싶은데. 그녀의 책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궁금하면 해봐야지.
음식재료에 대한 제한은 두지 않았다. 그저 먹는 것에 대한 나만의 심플한 기준을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다이어트보다는 임상 실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만의 심플하게 먹는 법>
1. 배고플 때만 먹는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에도 식사 때가 되었으니까, 입이 심심하니까 습관처럼 먹는 행동을 멈추었다. 이 간단해 보이는 게 사실 가장 어려웠다. 직접 해보시라. 한라산 등반만큼이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데 이제 진짜 살이 안 빠져. 이게 다 애 낳고 육아하면서 몸이 축나서 예전 같지 않아 그런가 봐."라고 핑계 댄 적이 있다. 근데 완전 헛다리를 짚었다. 양은 적지만 나는 하루에 수십 번은 먹는 사람이었다. 그건 많이 먹는 것이다. 소화가 안돼서 속이 자주 더부룩했던 게 아니라 많이 먹어서 더부룩했던 것이다. 심플하게 먹기 시작하면서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발견했다.
2. 꼭꼭 씹어먹는다.
우리의 뇌는 음식물이 뱃속에 들어오고 20분 정도는 지나야 포만감을 느낀다. 그리고 음식물이 물리적으로 더 잘게 분해되어야 영양소 흡수도 잘되고, 아밀라아제와 같은 소화효소도 잘 분비되어 소화를 촉진한다. 사람마다 씹는 횟수에 대한 기준이 다르긴 한데, 나는 워낙 꼭꼭 씹어먹지 않고 하마처럼 꿀꺽 삼키던 편이라 20~30번 정도 씹는 것도 도전적이었다. 확실히 식사시간이 길어지니 식사를 다 했을 때 뭔가 더 먹고 싶다는 느낌은 줄어들었다.
3. 접시에 담아 먹는다.
어떤 걸 먹을지 생각하고 접시에 담아 먹는 것. 굶주린 늑대처럼 과자봉지에서 손을 쑥 넣어 부스럭거리며 한 봉지를 금세 먹어치우곤 했었는데, 접시에 담아먹기 시작하니 내가 얼마나 먹는지 적나라하게 들통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군것질을 하는 양과 빈도가 줄었다. 그리고 실행하기 전엔 예상하지 못했던 좋았던 점이 또 하나 있다. 접시에 담아 음식을 먹으면 왠지 모르게 내가 나 스스로를 대접하는 기분이 든다. 예쁘게 플레이팅 하지 않아도 왠지 밖에서 사 먹는 느낌이 참 좋았다.
4. 해가 떠있을 때에만 먹는다.
아무래도 자기 전에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속이 더부룩해지기 쉽다. 그래서 타이트하게 시간을 정해두기보다는 밖이 깜깜하면 먹지 않는다는 기준을 정했다. 처음엔 자기 전에 무척 배고프고 침대에 누웠을 때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까지 들었는데 이것도 일주일 정도 지나니 해볼 만했다. 이렇게 배고픈 상태로 잠들기 시작하니 새벽에 일어날 때 몸이 굉장히 상쾌하고 가벼워짐을 느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여력이 된다면 심플하게 뱃속을 채우면서 주방도 심플하게 만들어보시는 걸 같이 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심플한 주방을 만들면 심플하게 먹는 것을 더욱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팁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심플한 주방 만드는 법>
1. 언제나 깨끗해야 한다. 서랍 구석구석 깨끗하게 하면 좋겠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버겁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딱 두 군데만 신경 썼다. 바로 싱크대와 식탁 위. 싱크대와 식탁 위에 아무것도 두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깨끗한 주방을 보고 있으면 내 뱃속도 깨끗하게 채우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내 뱃속처럼 식탁 위도 심플하게 만들자.
2.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요즘 온라인 장보기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나는 온라인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그때그때 필요한 먹거리를 조금씩 장 본다. 이렇게 하면 오랫동안 묵혀두는 식재료가 줄어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냉장고, 특히 냉동실 속의 오래된 식품은 버리도록 한다.
위에 설명한걸 한꺼번에 실천한 것은 아니고 지난 6개월간 하나씩 내 습관과 루틴으로 만들어갔다.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몸무게가 가장 궁금하시겠지만 그건 좀 있다가 알려드리겠다.
우선 주방이 심플해지니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 좋고, 오며 가며 주워 먹던 간식을 덜 먹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식사하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며 내 앞에 있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한입 한입 씹어먹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밤에는 음식을 먹지 않아 잠이 들 때 살짝 배가 고프긴 하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몸이 확실히 가볍고 속도 편하다. 특별히 다이어트 식단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3개월 정도 지나니 2킬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빠졌고 지금도 그대로 유지 중이다. 보통 체격인 나에게 2킬로그램의 체중변화는 크다.
심플하게 먹기 시작했더니 몸이 가벼워졌다. 몸이 가벼워지니 복잡했던 내 머릿속도 고요해졌다. 머릿속이 고요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조금은 명확해졌다.
여러분도 한번 꼭 해보셨으면 좋겠다. 뱃속을 심플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내 삶을 심플하고 충만하게 만들어주는지 경험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