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로봇,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

by 사이먼 케이

로버트는 안절부절못한다.


'거절하면 어쩌지?'


손에 든 라일락 꽃이 부들부들 떨리고 연보라의 라일락 꽃잎 하나가 떨어진다. 자신의 오랜 친구 아티와의 대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서희 씨는 널 좋아해. 내가 들어보면 완전히 지금 네가 먼저 대시하기를 기다리고 있어.”


아티는 확신하는 말투로 말했다.


“넌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하면서도 멍청해. 그냥 남자답게 고백하는 거야.”


아티의 말에 로버트는 침을 꼴깍 삼킨다.


“넌 여자를 몰라. 지금 서희 씨는 네가 먼저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로버트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지금 넌 생각이 너무 많아. 생각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지금 당장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아티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저 멀리서 서희가 전화를 하면서 로버트에게로 걸어온다. 로버트가 앉아있는 공원 벤치에 옆에 앉는다. 로버트에게 웃어주며 잠시 통화 좀 끝내겠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로버트는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서희는 로버트 손에 들린 라일락 꽃을 힐끔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나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응. 알았어. 응. 알았다니까. 갈 거야. 끊어 빨리.”


서희는 급한 듯 전화를 끊는다.


“미안. 통화하고 너 만나려고 온 건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괜찮아.”


로버트는 기분이 좋다. 자기 때문에 빨리 전화를 끊는 서희의 모습이 더 이뻐 보인다.


“내 거야?”


서희가 로버트의 손에 들려있는 꽃을 보며 말한다.


“아…”


로버트는 당황해하며 라일락 꽃을 쳐다본다.


“뭐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을 들고 있으면서도 내 것 아니라는 거야?”


서희는 토라진 표정으로 쳐다본다.


“아, 아니. 당연히 네 거지.”


로버트는 꽃을 서희에게 건네준다. 서희는 좋아한다.


“뭐야. 넌 너무 수줍음이 많아.”


꽃을 건네받으면서 서희는 은근슬쩍 로버트의 손을 만진다. 로버트는 쑥스럽다.


"이 라일락은 어디서 난 거야? 지금 구하기 힘들다는데?"


서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옆에다가 놓고는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며 묻는다. 로버트는 수줍게 웃으며 서희가 화장하는 모습을 쳐다본다.


“너무 급하게 오느라.”


서희는 화장을 한다. 로버트는 서희의 화장하는 모습이 너무 이뻐 황홀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리고 옆에 놓아 휴대폰을 쳐다본다. 문자가 오는 듯하다. 로버트는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집어든다.


“아, 뭐야?”


화장을 하던 서희가 깜짝 놀라며 로버트에게서 휴대폰을 뺏는다. 로버트는 당황한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서희는 휴대폰을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는다.


“아니, 그렇게 남의 전화기를 만지면 안 된다니까.”

‘남의 전화기?’


왠지 섭섭한 말이다.


“그런 말 몰라? 기계와 여자는 예민하기에 조심히 다루라는 말?”


모른다.


“나도 그렇고 이런 기계는 예민하게 다뤄달라고.”


로버트는 서희가 화난 줄 알았다가 이내 싱긋 웃으며 하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웃는다. 서희는 그런 로버트를 쳐다보며 크게 웃는다.


“너는 웃을 때 너무 귀여워.”


서희는 로버트의 볼을 만지며 자연스럽게 뒷목에 손을 댄다. 갑작스러운 서희의 스킨십에 깜짝 놀란다.


“뭐야? 내가 만져주는 게 싫은 거야?”


서희는 또 토라진 표정이다.


“아니, 아니. 좋아. 그냥…”


서희는 가끔씩 자신의 뒷목을 만져준다.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로버트도 싫지는 않지만 서희가 뒷목을 만질 때마다 놀란다. 이렇게 서희의 행동에 놀라고 수줍은 자신이 싫다. 서희가 뒷목으로 만져주면 자신도 서희의 어느 부분이든 만지고 싶다. 두 사람의 무엇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티 말처럼 남자답게 서희에게 대시하고 싶다.


“서희 씨는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여자긴 해. 빨리 대시하지 않으면 뺏길 거야. 내가 장담한다. 저런 여자는 남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아. 길거리에서도 번호 따려고 난리 친다니까. 너 이번에 만날 때 고백 안 하면 내가 장담하는데 다른 남자한테 뺏긴다. 그냥 손 딱 잡고 얼굴 마주 보고 얘기해. 사랑한다고. 나랑 사귀자고.”


아티의 목소리가 맴돈다. 서희를 쳐다본다. 서희는 책을 꺼내 읽고 있다. 그리고 의식했는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로버트를 쳐다본다. 로버트는 놀라 고개를 돌린다. 서희는 피식 웃는다.


“뭐야? 오늘따라 왜 그래? 뭐 할 말 있어?”

“아…응…”


로버트는 머뭇거린다.


“아, 맞다. 너 내 친구 수지 알지? 걔가 나 소개팅 주선해 줬거든?”

“소개팅?”


로버트는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응. 나하고 잘 맞을 것 같다는 남사친이 있다면서 소개해 줬단 말이야.”


로버트는 불안한 표정을 간직한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그 남사친이라는 애가 시종일관 지 전여자 친구 얘기만 하는 거야. 너무 사랑했는데 배신을 했다,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다른 남자랑 바람 폈다는 둥.”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여자 친구가 그렇게 배신하면 마음 아프지만 그걸 소개팅 자리에서 말하는 건 좀 실례 아니야?”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애가 꽤 괜찮긴 해서 고민이야. 난 리바운드 여자 친구가 되고 싶진 않단 말이지.”


로버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그럼. 서희 넌 얼마나 괜찮은 앤 데. 이상한 놈은 안 만나는 게 좋아.”


용기 내서 로버트가 말한다. 서희는 신기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린다.


“어라?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난 너처럼 괜찮은 여자를 본 적이 없어.”


말을 하고 나서 로버트는 숨을 가쁘게 내쉰다. 자신이 방금 한 말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자신의 손을 쳐다본다. 땀이 흠뻑 젖어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신기하면서도 기분 좋네.”


서희가 말한다. 그리고 로버트의 뒷목을 또 만져준다. 이번에 로버트는 놀라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난 말이지, 이제는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남자와 사귀고 싶어.”


로버트는 쳐다보지 못한 채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내 말도 잘 들어주는 남자 말이야.”


서희가 물을 마시며 말한다.


“로버트, 너 같은 남자라면 내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거야.”


이제 로버트는 확신이 생겼다.


“서희.”


이상하게 용기가 나기 시작한다.


“응? 왜?”


책을 읽던 서희는 눈을 책에서 떼지 않은 채 묻는다.


“나 할 말이 있어.”

“뭔데?”

“나 네가 정말 좋-”


그때 서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 잠시만.”

“아니, 서희 전화는 조금 있다가-”

“여보세요?”


서희는 로버트의 말을 못 들었는지 그대로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로버트는 그런 서희를 쳐다보며 일어나 서희의 핸드폰을 뺏는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다.


“무슨 짓이야?”


서희의 핸드폰을 뺏었지만 어쩔 줄 몰라한다. 서희는 그런 로버트를 보며 엄마 미소를 짓는다.


“뭔 일 있어? 오늘따라 왜 그래?”


로버트는 서희의 핸드폰을 꼭 잡는다. 핸드폰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로버트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핸드폰을 꺼버린다. 서희는 로버트의 행동에 놀라지만 이내 웃으며 로버트에게 팔짱을 낀다. 로버트는 얼어버린다.


“왜 그러는데? 나한테는 다 말할 수 있잖아.”

“나…”

“응, 너 뭐?”

“나 널 사랑해.”

“응? 아, 그래. 나도.”


서희가 너무 쉽게 대답을 해서 로버트는 당황한다.


“그런 게 아니라 난 널 정말로 사랑한다고.”


로버트의 진지한 표정에 그제야 서희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잠깐만. 사랑한다는 게 감정적으로 말하는 거야? 나랑 섹스하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간지러운 기분?”

“응? 세... 섹스? 아... 그게... 지금은 아니고 언젠가는…아…어. 응. 감정적으로 너를 사랑해.”

“진짜? 뻥 치는 거 아니지? 정말이야?”


로버트는 서희가 계속 당황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자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다.


“야, 서희 씨가 당황하면서 계속 질문하면 그녀 역시 너를 짝사랑했던 거야.”


아트의 조언이 떠오른다.


로버트는 희망이 보인다는 표정이다. 서희의 양 어깨를 잡는다.


“그래. 서희. 난 너를 사랑해. 아니, 이전부터 사랑해 왔어. 난 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줄 수 있어. 확신해. 나랑 사귀자. 너도 나 같은 남자가 좋다고 했잖아. 잘 들어주고 친절하고 너만 사랑해 주는.”

“그렇지. 내가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서희는 억지로 미소를 짓는 듯하며 로버트의 볼을 만지고 뒷목을 만진다.


“서희, 난 너를 사랑한다니까.”


서희가 뒷목을 만져주자 로버트는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서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로버트가 들고 있는 휴대폰을 쳐다본다.


“내 핸드폰 돌려줄래?”


로버트는 손에 든 휴대폰을 쳐다본다.


“아, 맞다. 미안.”


로버트가 휴대폰을 서희에게 전해준다.


“서희, 내 마음은 진심이야.”


로버트가 말을 건네지만 서희는 고개만 끄덕이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자꾸 누구한테 전화하는 건데? 그 남자? 너한테 잘 못해주는 그 남자?”


로버트의 말에 서희는 전화기에 대고 혼자 중얼거린다.


“또 이러는데?”


로버트는 왠지 불안하다.


“나한테만 모든 걸 다 말해주는 게 아니었어? 다른 남자가 또 있었어?”


로버트의 말에 서희가 지긋이 로버트를 쳐다본다.


“네. 김 박사님 좀 연결해 주세요.”


눈은 로버트를 응시하면서 서희가 전화기에 대고 말한다. 전화기에서는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김 박사님은 누구야? 서희, 도대체 남자가 얼마나 많은 거야?”


로버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급히 묻는다.


“네 박사님. 볼하고 뒷목이 작동을 안 해요. 네. 네…아, 그렇게 해볼게요, 잠시만요.”


서희가 전화기를 귀에 대고 마치 로버트를 안아주려는 제스처를 취하며 두 팔을 벌린다. 로버트 역시 서희를 꼭 안는다.


“야, 잠깐만, 뭐 하는 거야… 야… 하지 마…”


서희가 로버트의 등을 다급히 쓰다듬는다. 로버트는 지금 서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서희에게서 나는 향과 그녀의 촉감이 너무 좋다. 로버트가 서희를 더 꼭 끌어안는다.


“로버트… 하지 마… 나 숨 막혀…아…”


서희가 신음소리를 내며 힘들어한다.


“너도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이러면 좋아할 거야.”


로버트는 서희를 더 꼭 끌어안는다. 서희는 포기한 듯 갑자기 힘을 뺀다. 로버트는 자신에게서 이러한 힘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로버트는 지금 이 순간 서희에게 키스를 하고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


서희는 좋은지 포기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로버트를 받아들인다. 로버트는 지금 꿈만 같다. 그리고 서희가 어느새 자신의 등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다듬는 걸 알게 된다. 로버트는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호흡이 가빠진다.


‘이런 거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느낌이…’


로버트는 아티에게 빨리 이 사실을 알리고 싶다. 아티도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면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로버트는 힘이 풀린다. 뭔지 모르지만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이 든다.


“하….. 하…”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서희의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넌 참 괜찮은 앤 데. 완벽에 가까웠는데… 정말 내가 남자 친구로서 원하는 모든 걸 다 갖춰가고 있었는데 말이야.”


서희의 목소리만 들린다. 온 세상이 캄캄하다.


‘이게 뭐지?’


서희의 향과 촉감이 아닌 이상한 기계 냄새와 차가운 쇠를 안고 있는 느낌이다.

눈을 떠 본다. 눈앞에는 생전 처음 본 듯한 사람이 하얀 가운을 입고 쳐다보고 있다. 그 옆에 서희와 백발의 노인이 서 있다.


‘서희…’


로버트가 부르지만 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로버트가 주위를 둘러본다. 자신의 두 팔이 없다. 두 다리도 없다.


“거의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어. 저 유닛이 너에게 그런 감정이 있다는 고백은 우리의 기술력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거니까.”


노인이 말한다.


“그래도 마지막에 나 죽을 뻔했어. 아빠. 김 박사님이 말한 데로 안 했으면 나 어떻게 될 뻔했다니까.”


서희가 말한다.


“그러게 말이다. 큰일 날 뻔했네. 김 박사, 저런 강간의 행위를 없애는 게 낫지 않을까?”


노인이 말한다.


“손님 중에 저렇게 강압행위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또 있어서…”


김 박사가 말한다.


“거참. 첫사랑 유닛에게 무슨 강압행위를 바라는 거야. 아무튼 그래도 위험해. 어느 정도 선을 지키게끔 해야 돼. 잘못되면 어떻게? 첫사랑은 풋풋함과 아련함을 이용해 돈을 쓰게 해야지.”

“네. 시정하겠습니다.”


김 박사의 말에 노인이 서희에게 어깨동무를 한다.


“자, 그럼 다음 유닛 나오면 한번 더 실험해 보자.”

“나 이러다가 영원히 남자 친구 안 생기는 거 아냐? 로버트가 정말 사람이었으면 했단 말이야. 너무 괜찮았는데.”

“그럼 이 아빠랑 평생 살아야지. 이상한 놈 들이는 것보다 차라리 저런 로버트 같은 유닛하고 사는 게 훨씬 낫지 안 그러냐? 아빠가 마음대로 할 수도 있고.”

“뭐 그것도 그래. 아빠 같은 남자도 없거니와 다 그놈이 그놈이니까.”


서희와 노인은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서로 웃으며 방을 나간다. 김 박사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문을 닫는다.


투덜대며 김 박사는 거울 달린 벽을 가지고 온다. 로버트의 모습이 보인다. 머리만 뎅그러니 기계에 달려있다. 눈을 옆으로 움직여 본다. 구석에는 아티가 부식된 채 쓰러져 있다. 눈알이 다 뽑혀있고 팔과 다리도 제각기 떨어져 있다.


“어? 이게 뭐야?”


김 박사가 로버트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손으로 로버트의 눈을 만진다.


“물이 왜 묻었지?”


김 박사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드라이버를 들어 로버트의 눈에 다가간다.


온 세상이 다시 캄캄해지고 기계 뜯어지는 소리가 들리다가 김 박사의 소리와 함께 모든 소리가 희미하게 사라진다.


“뭐야 이건? 이 보라색 꽃잎은 어디서 나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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