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20센티만 더 컸으면 세상이 바뀌었어 왜 그래
난 남자다. 신장은 163센티미터다. 20대 때는 말라서 더 작아 보였지만 지금은 살집도 생겨서 덜 작아 보인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나를 작다고 말한다. 조선 시대나 그전에 태어났으면, 아니면 다른 문화권의 세상이었으면 괜찮을지도 모를 키인데. 지금 문화권에서 나는 작은 키 때문에 멸시를 받는다. 그들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성이 나를 보면 그냥 지나쳐 버리거나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걸 보면 나를 무시하는 게 분명했다. 키가 작은 내가 할 수 있는 직업도 한정적이었다. 지면에서 높이가 겨우 몇 센티 차이인데 인생까지도 키처럼 낮아져 버린다.
"부자가 돼라. 그것 말고는 너에게 방법이 없어. 너 같이 키 작은 애가 무시당하지 않고 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을 거야."
나이 많은 형이 조언을 해 주었다. 그때부터 다니던 회계사무실을 그만두고 악착같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 회계사무실을 다니며 모아 놓은 돈으로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대부분 내가 산 주식은 망하기 일쑤였지만 몇몇 다른 우량주가 크게 뛰면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른 주식들도 뛰기 시작했고 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회계사무실에서 클라이언트들의 주식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나는 합법이고 뭐고 내가 살아야 했기에 모든 정보를 다 빼냈다. 그리고 주위에 아는 정보를 총 동원해 다른 주식들을 매각했다. 그리고 내가 번 주식을 유튜브에 공개하며 선물 강의를 하였다. 강의비도 비싸게 받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을 내고 내 강의를 들었다. 나는 졸지에 엄청난 돈을 만지게 되었다. 그렇게 모인 돈으로 처음에는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만족하지 않고 더 투자를 크게 하면서 이제는 상위 10% 안에 드는 부자가 되었다. 신장은 여전히 낮지만 말이다. 내 신장 때문에 미안해하고 걱정하시던 부모님도 한시름 놓았다고 한다. 그렇게도 여자에게 멸시받던 내가 돈이 생기자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하나둘 여자가 붙기 시작했다.
"네가 20센티만 더 컸으면 세상이 바뀌었을 텐데 말이야."
어느 날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키가 좀 큰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맞아. 이 오빠가 안 커서 다행이지. 키까지 컸으면 세상을 삼켜 버렸을 걸?"
키 큰 친구 옆에 있는 아가씨가 말했다. 이전 같으면 정색했겠지만 이제 돈도 생기고 나이도 먹은 데다 나 좋다는 여자친구도 있기에 여유를 가지고 대답했다.
"그랬겠지. 그래서 세상이 공평한 거야. 나같이 키 작은 사람이 부자가 되고 허우대 멀쩡한 너 같은 놈은 나보다 돈이 없고."
내 말에 모두가 웃었다. 그 친구 옆에 있던 아가씨도 '큭큭'대며 웃었다.
"잉? 이 오빠 아까 나한테 돈 많다고 2차 가자던데? 에르메스 버킨백도 선물해 주겠다면서?"
"그거 나 때문에 산 거야. 진짜는 하나고 가짜가 여러 개인데 너한테 주는 건 아마 가짜일걸?"
내 대답에 그 친구는 그제야 정색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무 대답도 못할 걸, 왜 저 친구는 쓸데없는 소리를 했는지.
나이가 들수록 외모보다는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흐뭇했다. 내 손가락에 10억짜리 반지와 7억짜리 손목시계, 내가 입은 양복만 하더라도 1억 가까이 되는 나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작은 키는 돈으로 얼마든지 메꿀 수 있다. 내 옆에 앉은 아가씨도 계속해서 내 반지에 관심을 보이며 쳐다보았다.
"엄청 비싼 반지네. 오빠 거는 진짜지? 이거 나 줄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나는 바람 좀 쐘 겸 밖에 나갔다. 밖에서 담배를 꺼내 피면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술집이 보였다. 그곳에는 책상을 닦는 직원이 보인다. 그 직원 역시 키가 별로 크지 않다. 나보다 1~2센티 더 큰 듯하지만 지금 난 키높이 신발을 신었기에 대략 178센티는 돼서 저 직원은 나보다 현저히 작다. 괜히 허리를 더 피면서 옷을 한 번 고쳐 본다. 키높이 신발 때문에 다리가 많이 아프긴 하다.
그때 다른 친구가 함께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나를 빤히 본다.
"야, 너 만약 지금 네 재산을 20센티미터 더 클 수 있는 걸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훅 들어오는 질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와 내 자존감 때문에 나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키 얘기만 나오면 내 속에서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유일하게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단어였다.
"미쳤냐? 돈이 최고인데. 저 새끼 봐봐. 키만 크고 별거 없잖아. 고등학생 때나 키가 중요하지. 다 늙어서 무슨 소용이야. 돈이 있는데"
나의 농담 섞인 대답에 그 친구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함께 술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친구라 부르며 한 번씩 만나 술을 마시지만 다 내 돈으로 엮여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날린 그 친구를 쳐다봤다. 뭔가 내가 아는 나의 속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리 중에 유일하게 내가 돈을 빌린 적도 있는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친구다. 키도 184센티로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겼다. 머리도 좋아서 돈을 쉽게 번다. 집안도 좋다고 들었고 학벌도 좋았다. 내가 정말로 부러워할 친구지만 절대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난 자존감은 약하지만 들키고 싶지 않았고 늘 자신감 있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테이블을 닦는 키 작은 직원을 쳐다봤다. 지금 세상에서 키 작은 남자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다. 결혼도 힘들다. 그래서 능력껏 돈이 많이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저렇게 식당 테이블이나 닦으며 살든지. 난 순간 두려웠다. 돈이라는 건 모래성과도 같다. 한순간 무너지면 다 없어질 수도 있는 게 돈이다. 그럴 때 키라도 크면 살아남지 않을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친구는 돈이 없어도 키가 크기 때문에 그 돈을 다시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오늘 왜 그렇게 키 얘기야?"
"아, 우리가 저번에 만난 여자들 때문에. 걔네들이 남자 키는 자기들보다 무조건 크거나 아무리 작아도 178센티는 돼야 한다고 했잖아. 그게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본 거지."
"그년들도 어차피 돈 앞에서는 다 무릎 꿇게 돼 있는데 뭘."
내 가시 섞인 말에 갑자기 그 친구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명함 하나를 내민다.
"요즘도 명함이 있냐?"
나는 명함을 보며 신기해했다.
속마음 속, 더 깊은 속마음에 들어 있는 당신의 소원을 들어준다.
이상한 문구다.
"뭔데 이게?"
"여기 가면 소원을 딱 하나, 그것도 너하고 관련된 소원만 하나 들어준대. 무조건 자신하고만 연관되어 있어야 해. 너의 신체적인 거나 너의 관점을 바꿔 준다거나 하는 그런 거. 한번 가보라고. 재밌잖아."
이런 걸 믿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날 밤 헤어진 기억도 없이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에서 깨어났다. 같이 온 술집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지만 내가 너무 취해 집에 함께 온 게 다라고 했다. 내가 그 아가씨에게 거액을 주고 가방을 사주기로 했다면서. 내가 그래 줄 리가 없다. 돈을 주고 아가씨를 보냈다. 그리고 마치 주술에 걸린 듯 나는 그 명함의 주소를 찾아갔다.
"20센티 정도 크고 싶은 거네. 183 센티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구먼."
초면에 한 노인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도, 오직 내 속마음에만 간직하고 있던 생각이었다. 돈을 많이 벌면서 잊혀 갔던 내 속마음을 이 노인이 다시 끄집어냈다.
"제 키는 178센티 정도 되는데요?"
나는 다시 허리를 피며 말했다. 키높이 신발도 신고 있기에 신발만 벗지 않으면 되었다.
"대신 자네가 가지고 있는 주식 몇 개만 팔아서 그 돈을 나 주면 돼."
내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아는 듯,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무슨 말인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지만 나는 그 노인이 말한 대로 내 우량주 몇 개를 팔아 노인에게 지불했다.
"내려오시면 돼요. 키가 생각보다 크시네요."
병원 간호사가 말한다. 나를 사심 있는 눈빛으로 흘깃 쳐다보면서 말이다. 지금, 내 키는 183센티가 되어 있다. 키높이 구두 없이 말이다. 20센티의 높이는 생각보다 차이가 컸다.
"키를 줄이고 다녔어? 키가 더 커진 것 같은데?"
"어? 신발도 달라졌네. 여태 왜 그렇게 갑갑한 부츠를 신고 다니나 했는데."
친구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여자에게 성형이 있다면 남자에게는 키높이 신발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치 원래 키가 큰 것처럼 나는 훤칠해졌다. 키가 커지니 돈 없이도 여자들이 많이 달라붙기도 하고 일도 더 잘 풀리는 듯했다. 키를 재려고 갔던 병원에서 한 번 본 간호사와 교제도 했다. 이전 여자친구도 만나면서 말이다. 어차피 이전 여자친구는 나를 돈만 보고 좋아했지만 이 간호사는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택한 여자와의 결혼 후, 이혼과 사기로 돈을 다 날렸다.
지금은 그냥 허우대 멀쩡한 테이블 닦는 직원이 되어 있다.
건너편 골목에서 내 친구들이 아가씨들과 함께 술집에 들어가는 게 보인다. 그때 나에게 명함을 준 친구를 찾아가 따지고 싶었지만 그 친구의 경호원에게 잡혀 추잡스럽게 끌려 나갔다. 키는 커졌지만 힘이 부족했다. 돈만 많았어도 나도 경호원과 함께 동행했을 텐데. 왜 그 명함을 받았을까? 그리고 왜 그 노인의 말대로 했을까?
"저 쪽도 닦아줘."
그때 만난 키 작은 직원은, 식당 주인의 아들이었고 그는 남는 시간에 아버지를 돕는 착한 아들이었을 뿐이었다. 근처에 술집이 그렇게 많아도, 술을 마시지 않았고 술집 아가씨를 만나는 일도 없었다.
"그런 곳에 돈 쓰는 것만큼 내 인생에 쓸데없는 소비가 없더라고."
가까이서 보니 이 친구의 키가 나보다 더 커 보였다. 많이 커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작아 보였는데. 아니면 내가 위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키 따위를 생각할 시간이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친구의 식당에서 다시 재기를 노리며 테이블을 닦는다. 키가 크고 멀쩡하니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식당에 여자들이 나를 쳐다본다. 저들 중 돈 많은 여자를 꼬셔 보자.
지금 내 세상만 바뀌었을 뿐, 내 주위의 다른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똑같이 돌아갈 뿐이었다. 키 큰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내 183센티의 신장만 가지고는 이전처럼 상위권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때 팔아버린 우량주들은 더 커졌고 가지고 있던 내 남은 주식들은 다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이전처럼 선물 강의도 사람들이 잘 듣지 않았다.
거울을 쳐다본다. 한 가지 놓친 게 있다. 키는 커졌는데 나이가 들어 버렸다. 내 얼굴이 내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 보톡스라도 맞고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아야 했다. 그것도 돈이 필요하다. 내 능력과 노력, 그리고 꾸준함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