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보다는 조화와 질서 그래서 웨어울프
'판사가 저 모양 저 꼴이니까 판결을 그따위로 하지.'
'어디 판사 지네 가족들이 그렇게 당해 보라 그래. 그런 판결을 낼 수 있는지.'
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하다.
물론 어느 단체나 그러하듯 판사들 중에 저런 말을 들어도 마땅한 판사가 간혹 가다 존재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판사가 저런 소리를 듣기에는 조금 억울한 모양이 있긴 하다. 판사도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판결을 내릴 때만큼은 냉정하게 법대로 하기 때문에 실수라고 할 수는 없다. 법의 체계는 생각보다 냉정하고 질서가 있다. 마치 늑대 세상과 비슷하다.
고대 시절부터 판사라는 직업은 존재해 왔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지면서 마을의 수장이 그 역할을 했었고 그다음 시대에는 왕이 했다. 나라가 더 커지면서 판사라는 직업이 생겼다.
정의를 말하다
이것이 판사의 본래 뜻이다. 14세기 중반에 들어온 'judge'라는 단어. ius와 dicere라는 라틴어가 그 시작이다. 백성들을 잘 보살피기 위한 직업이 판사였다.
처음에는 왜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나 오래 살아 있는지 몰랐다. 이전 고대 시대 때 마을 수장이었던 나는 사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 왔다. 내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세상에 '나라'라는 개념이 세워졌을 때이고 그 당시에도 나는 왕이 되어 살다가 간신배들에게 배척당해 도망 다녔다. 그들은 나를 '죽였다'라고 판명 냈지만 실제로 나는 죽지 않았기에 다른 어느 나라에 위치한 조그만 지역 판관으로 살아갔다. 간신배들 중 한 명이 마음을 돌이키면서 나를 도울 조력자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나는 자연스레 법관의 길에 들어서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판사가 되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들키지 않았냐고? 아까 간신배 출신의 조력자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남들이 나의 생김새를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는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능력이었다.
내가 현대에서, 그것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판사가 되면서 법에 대해 재미난 사실을 깨달았다. 어찌 보면 고대 시대부터 변하지 않은 불변의 법칙이다.
정의? 아니다.
'판단할 판(判)'에 '일 사(事)'라는 단어처럼 일을 판단하는 것이지 영어의 judge처럼 정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국민들이 생각하는 그런 정의와는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 즉, 법대로 한다는 말이 반드시 정의를 실현한다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정의보다는 공동체의 조화와 질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설령 가해자에게 더 유리한 판결일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법이 대중들에게 맞지 않는다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기자들마저 멋대로 기사를 써버린다면 그 또한 방법이 없어진다. 정의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인간 사회를 하나로 묶기 위한 단어일 뿐이다.
정의와 질서 그리고 부조리. 이런 것들과 맞서 싸워야 하기도 하는 게 판사의 숙명이다. 물론 수많은 유혹도 존재한다. 내가 아는 많은 판사들의 아내의 집안이 다 빵빵한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돈만 많다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돈이 많으면 지켜야 할 게 더 많아질 뿐이다.
한 노인이 남의 집에 도둑질하러 들어갔다가 맞아 죽었다. 집주인은 노인을 향해 멈출 수 있었던 공격에 감정을 실어 그 도둑 노인을 죽여 버렸다고 한다. 행위만 본다면 노인은 죽을 수도 있다. 남의 집에 훔치러 들어갔으니 그 집주인이 어떻게 하든 그건 명백한 그 집 내부에서의 사정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행위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다. 여러 정황을 놓고 봐야 한다. 노인은 훔치기만 했을 뿐 집주인을 해칠 힘이 없었다는 게 변호사의 주장이다. 집주인은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다지 행실이 좋아 보이는 청년은 아니었다. 노인은 검찰이 그렇게나 단서를 잡으려 했던 한 조폭 조직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디테일을 국민들이 알리가 없다. 알려줘도 금방 묻혀 버린다. 국민들은 자극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그로를 끌 만한 기사를 쓰고 뉴스가 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그 조직은 여러 정치권까지 개입되어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끝내는 방법은 그 청년의 죄목을 만들고 언론이 들끓게 한 다음 판사가 욕먹는 것이다. 그게 가장 조용히 지나갈 시나리오였고 질서를 바로잡은 방법이었다. 몇몇 단체들이 판사를 바꾸라고 들고일어날 것이다. 감안해야 한다.
판사도 기간이 있다. 판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판사의 직분은 끝날 수 있어도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다. 가족도 잘 먹여 살려야 하고 은퇴해도 잘 살고 싶어 하는 판사가 많다. 돈 많은 사람들의 부탁을 한 번 들어준다고, 세상이 망하지 않을 거라 말한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한다 하더라도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도 않을 거라고 한다. 나 자신만 생각하고 챙기라고 조언한다. 돈만 많았더라면 이 선배들(선배라고 불러야 하나?) 역시 이런 말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잘못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걷잡을 수 없게 돼 버린다. 그리고 인간 세상은 결국 망하게 된다. 계속해서 고쳐 나가야 한다.
조력자들은 내 재산을 털래야 털 수 없게까지 다 조치해 놓았다. 나를 도와주는 조력자들, 일명 집사님들이라 불리는 그들과 은밀히 이야기를 하면서 나 역시 숨은 부자가 되었다. 굳이 죽지도 않는데 부자가 될 필요가 있냐고? 있다. 난 남들보다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잘 먹어야 한다. 먹지 않으면 힘이 빠진다. 고대 시대부터 살아온 나로서는 잘 먹어야 하는 게 머리에 박혀 있고 그것은 습관처럼 마치 dna가 계승되듯 내려왔다. 잘 먹으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 게다가 부자는 위험이 생길 때 대피가 가능하다.
조력자들은 내가 판사가 되기까지 성심성의껏 도와주셨다. 나를 도와주는 조력자들의 단체가 있다. 어패크. 영문으로 쓰자면 'A Pack'. 조력자들의 가장 우두머리를 알파라 부른다. 나를 이전에는 머트(Mutt)라고 불렀기에 오늘까지도 머트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나는 조직생활에 특화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여러 조직과의 인연도 깊었다. 내 생김새의 조절이 가능하기에 어패크의 조언으로 고등학교에 들어갔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일진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조직이라기보다는 잘난 척하려고 하는 아이들의 모임이었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붙여 조직처럼 행동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 뒤에는 꽤나 큰 조폭 조직이 껴 있었다. 그리고 그 조직 뒤에는 더 큰 조직들이 정치인들과 연관되어 있었다. 선브라이트 (sunbright)라고 불리는 거대 조직이다. 거대 조직이었기에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 그때 나를 괴롭히려는 일진에 의해 나의 신체적 남다름을 또다시 깨달았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깨달음은 언제나 존재한다.
고등학교 때 나를 때리려는 학생들에게는 방어만 했다. 맞아도 그다지 안 아팠지만 한 번 맞아 주면 계속 때릴까 봐 그들이 지칠 때까지 방어를 해 주었다. 밤이 되면 육체의 변화가 심했다. 그러니 내가 마음먹고 타격을 갈기면 웬만한 사람은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육체의 변화를 판사가 되어서는 하기 힘들 거라는 '정의 구현'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몇만 년 만에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달을 보면 모습이 변하는 웨어울프였던 것이다. 늑대인간이라고도 불리는 나는 어패크의 보호 아래 조심히 내가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밤중이다. 나는 유니폼과 마스크를 꺼낸다. 만일 늑대인간으로 변한다면 찢어지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졌기에 필요할 듯하다. 아마도 긴 저녁이 될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일진 조직을 맞닥뜨린 이후 판사가 되어서도 그들의 뒤를 봐주는 거대 조직들과의 조용히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낮에는 판사로서 다른 판사들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저녁은 다르다.
오늘 저녁이 지나면 내일부터 법정에서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노인이 왜 주거침입을 했는지를 파악한 나는 노인과 청년을 둘러싼 조직을 비롯한 모든 연관된 사람들을 모조리 파헤칠 것이다. 이것이 낮에는 판사로서, 저녁에는 무법의 판사로서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나의 헌신이다.
긴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눈을 떴다. 간밤에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지만 다행히 잘 처리했다. 아무도 안 다치고 피의자의 자백도 받았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나는 여러 조직원들을 공격하며 그들에게서 많은 자백을 받았고 법정에서 진술을 한다고도 하였다. 피해자를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하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그들 모두가 죽었다. 난 죽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가 떠난 자리에 나타난 다음에 그들을 모두 죽인 것이었다.
"머트 님도 아시다시피 정의는 승리하는 자의 것입니다. 이미 시작한 전쟁, 반드시 이겨 우리가 정의가 되어야 합니다."
조력자들이 말한다. 세상의 눈과 실체,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건 과정일 뿐 그러한 현실이 나타날 거라 믿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