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 세상에는 너 같은 사람은 차고 넘쳤다
자신이 세상 유일무이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마치 세상에 처음으로 나온 생각이라 말하는 사람도 만나봤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 자기와 같은 외모, 자기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자기가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세상은 비숫한 사람 천지다.
나를 노려보는 저 학생. 그의 눈빛은 심한 분노에 차올라보였다. 마치 세상을 향해 복수라도 하고 싶은,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과 같은 사람은 없으니 자신이 리더가 돼야 한다는 그런 눈빛이 교합되어 있다. 나는 늘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일을 성사시키려면 사람이 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 학생도 내가 늘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빡빡 깎은 머리,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체격. 자기 자신이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는 듯하다. 자신과 같은 사람은 또 없다는 것을. 그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 있는 아리따운 여학생들도 몇 명 보인다. 그녀들은 저 남학생을 좋아하면서 걱정스러운 눈치이다. 동시에 믿고 동경하고 있다.
"난 일진입니다. 이 근방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지요. 내 소문을 들으셨으니 나를 만나자 하셨겠지요. 나는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리더십도 있습니다.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큰 데다 공부도 잘합니다. 부모님 백도 있고요. 거기에 더해서 용기도 있고 비겁하지 않습니다. 이 친구들이 저를 따라온 걸 보시니 알 겁니다. 더 온다는 걸 제가 추린 겁니다.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고 합니다. 나는 당신도 잘 압니다. 젊은 인재를 찾아 잘 키워 조직원으로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요. 지금은 내가 당신보다 힘이 약하겠지요.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살려두면. 나중에 반드시 내가 당신을 찾아 죽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편이 된다면, 당신이 나를 걷어주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아실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은 전에도, 앞으로도 없다는 것을."
어디서 본 듯한 대사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 괜히 오글거리지만 저 학생은 진지하다. 나에 대한 조사도 철저히 한 듯하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지금 말에 감동받은 듯 소리를 지른다. 그들은 나에게 질 수 없다는 듯, 포효를 내질렀다. 저들의 수가 꽤 된다. 지금 막 군대에서 나온 사람도 보인다. 저 학생을 필두로 고등학생도 보이고 사회 초년생인 듯한 사람들도 보인다. 꽤나 저 학생의 카리스마에, 나이는 어려도 다들 따르는 듯하다. 저 학생은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아는 듯하다. 완벽한 인간이다.
내 뒤에서 지켜보는 내 부하들과 저 학생의 무리들이 붙으면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 차라리 저 학생과 저들을 잘 키우면 모두 나의 저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 무리들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여기서 널 죽이지 않으면 자네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건가?"
최대한 예의를 지켜 묻는다. 아무리 예사롭지 않고 강해 보여도 아직은 애들이다. 미래가 창창하다. 그는 노려보며 속마음을 말한다.
"반드시 당신을 왕으로 만들고 그다음에 내가 왕이 될 겁니다. 느끼셨을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은 앞으로 천년이 지나도 나오지 않을 것을."
꽤나 건방진 소리지만 자신감이 충만하다. 그런데 이런 말은 또 어디서 보고 배운 걸까? 요즘 애들이란. 뉴스나 영화에서 했던 대사를 하는 듯하다. 저 학생을 보니 이전에 내가 학생일 때와 비슷한 느낌이 풍겨진다. 내가 발을 디뎠던 이 세상으로 들어오려는 아이들의 말투와 생각은 다 비슷한가 보다. 아, 나의 세상을 이 학생이 알려나? 안다고 착각할 수는 있겠지. 분명 이 학생은 나보다 자기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싸움도 잘하지만 머리도 꽤 좋은 듯하다. 나보다 훨씬 낫기는 하다. 내가 권력에 욕심이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직 20대도 안된 게 눈치도 빠르다.
"그래. 자네 같은 학생이 나중에 자라면 큰 인물이 되겠지. 자네도 그걸 아는 듯하네.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남학생은 살짝 미소를 짓는다. 자신의 생각대로 된 듯하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무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마도 깡을 가지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벼보자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행동한다면 자신들의 용기를 높이 사서 받아 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세상은 용기를 낼 때가 있고, 겁을 내야 할 때가 있으며 강해질 때가 있고 약한 척 보여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때에 따라 결정되기에 인간은 늘 그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 난 그냥 죽이기로 한다.
"아, 안돼!"
아무리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가지고 무리들이 따르고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학생이어도 죽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진짜 죽일지 몰랐나 보다. 바로 이전에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면 참으로 인간이 신기하다. 보통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이가 들면 두려움이 더 커지는 법이다.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가족이 생기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이면서, 용기와 답답함, 무모함을 함께 가진 이 남학생이 죽음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 인간은 다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 살려주세요!"
비굴하게 울면서 손을 싹싹 빈다. 옆에 이 학생을 믿고 있던 무리들도 겁에 질린 표정이다. 여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이 남학생을 그대로 죽여버렸다. 이 학생 뒤에서 가오 잡고 있던 똘마니 무리들은 그제야 노려보던 눈빛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렇다. 지금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은 세상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실력 좋고 돈을 많이 벌어다 주고 주위에 사람들을 많이 끄는 사람도 아니다.
죽음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학생이 나에 대해 말한 대부분의 내용이 다 맞다. 딱 한 가지만 틀렸다. 난 사람이 아니다. 악마다.
이 학생이 어리던, 잠재력이나 가능성이 있든 간에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미래에 이런 학생이 어른이 되어 이끌어 간다는 것도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인간 세상은 별거 아니다. 그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들끼리 자화자찬하면서 강하다니, 잘한다니, 나쁘다니, 능력 없다니 하는 말뿐인 세상을 만들었다. 결국 서로 자기들끼리 비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