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육아를 해라
아빠 1.
아빠가 아이의 허리띠를 고르려 하자 직원이 인상을 찌푸린다.
"손님, 그거 자꾸 만지면 안 되세요."
"아, 제가 한번 착용해 보려고..."
"저희한테 물어보시면 도와드릴게요."
"아, 제가 계속 불렀는데 대답도 없고 바빠 보이셔서..."
아빠의 말에 직원은 짜증이 가득 섞인 얼굴로 다가온다. 전시장에서 베이비 페어가 한창이다. 직원은 아빠에게 거의 던지다시피 아기 허리띠를 건네준다. 그리고 다른 엄마들에게는 미소로 제품에 대해 설명한다. 아빠는 뻘쭘하게 아기 허리띠를 착용하려고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도움을 청하고 싶어 주위를 둘러보지만 모든 직원이 바빠 보인다. 확실하게 살 듯한 엄마들에게 몰려 있다. 아빠는 뻘쭘한 듯 조심히 아기 허리띠를 가지고 직원에게 간다.
"저, 이거 착용은 어떻게..."
직원은 다른 엄마를 응대하느라 아빠의 소리를 무시한다. 다른 엄마는 이 허리띠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냥 간다. 직원은 그제야 아빠에게 고개를 돌린다.
"허리에 대보세요."
무심하다. 다른 제품을 사도 되는데 아내가 이 제품이 더 편할 거라고 했다. 이전에 사놔야 했는데 아빠는 괜히 돈 아낀다고, 그리고 자기가 힘이 세니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뒤늦게나마 산다. 아내가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 자기만 남겨 놓고 말이다. 아기는 힘이 그나마 더 센 아빠가 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기 허리띠는 아빠에게 편한 제품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닌 듯하다. 육아를 하라고 하지만 육아를 못하게 하는 듯하다. 세상을 떠난 아내가 생각이 난다. 죽을 때까지도 아빠를 걱정해 주었다. 그리고 육아에 필요한 리스트를 적어 주었다. 혼자 남은 아이를 아빠 혼자서 키워야 한다. 주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를 않는다.
아빠는 이런 무심한 직원에게라도 도움을 받고 싶은 심정이다. 아기 허리띠를 어느 정도 착용했을 때, 직원은 다른 엄마가 부스에 들어오자 아빠를 내버려 두고 가버린다. 아빠는 조용히 혼자 아기 허리띠를 착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
아빠 2.
오전 11시에 백화점에 들어가서 아기 대변을 갈고 싶지만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갈이대가 없다. 여자 화장실에는 있다고 한다. 우는 아기를 데리고 남자 화장실 세면대에 조그맣게 튀어나온 공간을 발견한다. 겨우 아기를 튀어나온 공간에 눕히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누가 들어와서 세면대를 쓸까 봐 조마조마하다. 나는 내 아내보다 아기를 더 잘 본다. 천부적인 재능이 육아로 가버렸다. 하지만 이 천부적인 재능은 집 안에서만이다. 집 밖을 나가면 육아하는 나의 천부적인 모습에 다들 한심하다는 표정을 보인다. 백화점에 가도 아이를 데려온 사람은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백화점 화장실마저 도와주질 않는다. 나는 재빨리 실력을 발휘해 기저귀를 갈고는 밖으로 나온다.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기는 무겁기에 아빠보다 힘이 약한 엄마보다는 아빠가 아기 기저귀 교체를 담당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너무 더워서 차가운 아이스 라떼가 생각난다.
커피숍이 보인다. 모두가 여성들이다. 아기를 데리고 돌아다니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가지각색의 표정이다.
"일도 안 하나 봐."
"무능력한 거지."
"엄마가 없을 수도 있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 시간에 여기를 왜 와?"
"왜? 요즘 아빠도 육아를 해야지. 라떼 대디 있잖아."
커피숍에 앉았다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집 밖에서는 아빠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시후 아빠.
유치원 간담회에 갔다. 시후 아빠를 제외한 모든 부모가 다 엄마였다. 아빠는 아무도 안 왔다. 선생님들은 엄마에게만 하는 설명을 아빠에게는 안 한다.
"시후 어머니는 안 오시는 거예요? 제가 나중에 시후 어머니께 문자 남겨 놓을게요."
내가 온 것이 마치 잘못되었다는 듯 말하던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진다. 옆에 잘 생긴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
"아, 아버님 오셨어요?"
유치원 선생님들 대부분은 싱글이다. 잘생긴 아빠 주위로 다른 엄마들도 몰려들고 여 선생님들도 몰려든다. 시후 아빠는 구석으로 몰린다. 갑자기 시후 아빠의 모습이 초라해진다. 시후 아빠는 그냥 자신의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커가는지 궁금했을 뿐이어서 오늘 온 건데.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정이 아빠.
출산율이 세계 최저란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한다고,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한다. 뉴스와 댓글을 보면서 정이 아빠는 흐뭇하게 자신의 자녀들을 쳐다본다. 네 명의 자녀들이 잘 놀고 있다. 애국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다둥이 카드를 쳐다본다. 왠지 모르게 좋은 일을 한 듯하다. 일주일 내내 고생한 아내를 위해 정이 아빠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놀러 가기로 한다. 환경도 생각해서 차를 가지고 가는 대신 시내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다. 날씨가 화창하다.
정이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버스에 탔다. 앞에서 아이 한 명과 탑승한 부모는 아이의 돈을 내지 않았지만 정이네는 아이가 네 명이기에 한 명의 돈을 더 받았다.
"유아 3명 이상은 한 명의 돈을 더 내야 합니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더 많은 혜택이 있어야 아이를 많이 낳지 않을까? 정이 아빠는 생각을 했지만 시내버스이기에 이런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질서를 지켜야 하니까. 누군가가 이러한 법을 악용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이 아빠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정이 아빠는 해외에서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다둥이 카드가 있기에 공항 주차장에서 혜택을 받는다. 부모님을 차에 모시고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려 할 때 아무런 혜택이 추가되지 않았다. 이상해서 서비스 콜 버튼을 눌러 물어봤다.
"인터넷에 들어가셔서 신청하셔야 해요. 그러면 혜택이 적용됩니다."
"저 다둥이 카드 있는데요?"
"저희 시스템이 다둥이 카드를 읽지 못해서요. 인터넷에 들어가셔서 혜택을 적용하세요."
다둥이를 낳아 보지 못했나 보다. 다둥이 카드가 주어진 이유 중 하나는 바빠지는 부모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서다. 아이가 많다는 건 그만큼 바쁘고 할 일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지만 너무 복잡하다. 클릭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 많이 낳지 말라는 거야 뭐야!"
아내가 화를 버럭 낸다. 아내는 컴퓨터를 하다가 아이들의 식사를 만들기 위해 나가 버렸다. 정이 아빠는 복잡한 공항 주차장 시스템 사이트를 보다가 회사에 늦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한다.
사회가 조금은 더 함께하면 좋겠다.
지금 만드는 정책은 현재의 삶에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생물학적인 이유로 못 낳는 부모도 있고 불안감 때문에 못 낳는 부모도 있다. 아이를 낳으면 한 명당 몇억씩 들어간다고까지 말한다. 그러한 세상에 아이를 내놓으면 아이가 얼마나 불안해할까라고 말하기도 하고 내 삶의 질이 떨어질 거라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 당연한 소리다. 다양한 아이들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이러한 아이도 있고 저러한 아이도 있어야 한다. 당연히 남들보다 더 똑똑한 아이도 있고 더 튼튼한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걸 비교하면서 똑같아지라고 하면 안 된다.
지금 정책을 만드는 우리의 시대는 언젠가 저물어 갈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크면 우리의 다음 세대로서 이 사회의 일원이 된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아이들이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게 커야 하지 않을까? 서로 다양한 능력을 알아보고 도와가면서 사는 그러한 사회 말이다.
여러 연구에도 나와 있듯이 만 3세까지 아빠가 돌보는 아이들의 정서는 안 그러한 아이들보다 더 발달되고 안정되어 있다고 한다. 어휘력이 향상되지만 무엇보다 사회성과 정서 조절 능력이 발달한다고 한다. 심리적 안정을 주며 문제 행동이 감소한다고 하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엄마만이 아이를 돌보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아빠와 엄마가 함께 아이를 돌보는 시대이다. 아빠가 육아를 도우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아빠도 육아를 해야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함께 제대로 알아보고 도와야 한다. 라떼 대디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