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끓어오르는 사회 : 댓글, 시위, 카톡방

2장. 분노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by 제인 Jane




이제 조용히 분노하던 시대는 끝났다. 분노를 드러내는 방식에 이전보다 훨씬 더 익숙해졌고, 심지어 분노를 공유하고, 전염시키고, 또 조직하고 있기도 하다. 한밤중에 유튜브 댓글창에 달린 날카로운 글, 오전 출근길에 단톡방에 날아든 분노 섞인 기사 링크, 정오 무렵 서울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기,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쉽게 끓어오르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경 중 하나다.


가장 먼저, 댓글을 보자. 우리는 점점 더 짧은 문장으로 강한 감정을 쏟아내는 방법을 익혀왔다. '이게 나라냐', '제정신냐', '다 똑같은 것들이다'와 같은 짧은 말들은, 맥락을 생략하고 설명이나 해석을 덧붙일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또한, 그것들이 무례가 아니라 '정의'로 포장되고, 격렬함이 곧 '진정성'이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입장, 감정, 맥락을 읽는 대신, 내가 느낀 불쾌한 감정만을 기준으로 하여 옳고 그름을 결정해버린다.


또, 거친 감정이 담긴 시위는 또 다른 얼굴이 집단적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억눌린 말들이 표면으로 올라왔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이성적인 말로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그 대신, 거친 말이 적힌 피켓을 들고, 거친 말이 섞인 구호를 외친다.


물론, 시위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정당한 의사 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많은 시위는 '상대와의 대화'보다는, '편을 나누는 일'에 더 가까워진 듯하다. 함께 외치는 순간 우리는 더욱 연결되고 단단해지지만, 동시에 더 고립된 진영 안에 머물게 되기도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언어보다는, 같은 편에게 각인되는 구호가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사적인 공간처럼 보이는 카톡방에서도 우리는 쉽게 분노를 발견할 수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진심보다는 '감정의 요약본'을 주고받을 때가 많다. '아, 진짜 짜증나', '또 시작이네', '지겹다'와 같은 말들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감정은 종종 대화방 안에서 다른 방향으로 증폭되고, 한 사람의 분노는 곧 공동의 정서로 번지며, 그 안에서 생긴 편향된 일방향적 판단은 쉽게 현실을 왜곡하게 만든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표현함과 동시에 생각을 생략한다. 깊은 이해는 피곤하고, 분노는 즉각적인 힘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의 살마들은 더 쉽게 연결되지만, 더 얕은 곳에서 오해하고 더 자주 끊어지고 있다.


끓어오르기만 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그 뜨거움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식히지 못한다면 불타버린 관계들만 우리 주위에 남게 된다. 감정은 반드시 건강하게 해석되어야 하고 질문되어져야 한다. 그 중에서도 분노는, '무엇에 화가 났는지'가 아니라, '왜 그것에 그렇게까지 화가 나는지'를 물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식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이 끓어오른 뒤에서 충분히 식힐 수 있는 사회다. 결속력 있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함께 분노하되,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그런 사회. 그리고 활발하게 서로의 의견과 이야기를 나누되, 경청이 기본 전제가 되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감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관계들이 간절히 필요하다.